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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버틴 것만 해도 신기하다"…멧돼지 ASF에 포위됐던 화천 농가

[취재파일] "버틴 것만 해도 신기하다"…멧돼지 ASF에 포위됐던 화천 농가

박찬범 기자 cbcb@sbs.co.kr

작성 2020.10.12 09:5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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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틴 것만 해도 신기하다"

지난해 9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국내 사육농가에서 처음으로 발생했습니다. 그 후 1년, 강원도 화천의 한 농가에서 다시 바이러스가 검출됐습니다. 돼지 농장주들이 모인 한 커뮤니티에서는 한 장의 사진이 게시됐습니다.

[취재파일]? '버틴 것만 해도 신기하다
보라색 점은 ASF에 걸린 멧돼지 또는 멧돼지 폐사체 발견지점입니다. 이 사진을 보고 댓글에는 "1년여 동안 버틴 것만 해도 신기하다"라는 말이 달렸습니다. 그만큼 주변에 멧돼지 ASF 바이러스가 도사리는 가운데 고군분투했다는 의미입니다.

● "지붕 위까지 청소했어"…끝까지 버텨낸 농장주

화천 첫 번째 ASF 발생 농장주는 이미 언론에도 나왔던 분입니다. 한 방송사 다큐멘터리에 출현해 농장 방역 실태를 인터뷰하곤 했습니다. 한돈협회 춘천‧화천 지부에서는 이 농장주를 '에이스'라고 칭할 정도로 신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부 사무국장까지 맡아가며 ASF 방역에 앞장섰다고 합니다.

조우형 한돈협회 춘천‧화천 지부장과 통화했습니다. 이번에 ASF가 발생한 농장이(現 사무국장) 방역에 허술했던 점이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조우형 지부장은 "농장주가 지붕 위까지 소독할 정도로 꼼꼼히 했다"고 말합니다. 농림축산식품부도 해당 농장이 방역 수칙을 위반한 것은 없었다고 합니다.

● 모범 농장은 어떻게 강원도 첫 ASF 발생 농가로 전락했을까?

해당 농장은 앞서 보여준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농장 주변 멧돼지 폐사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됐습니다. 발견 지점 가운데 최단 거리는 반경 250m였습니다. 아무리 모범 농장이라고 한들 ASF 바이러스 유입을 막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멧돼지가 ASF 바이러스를 해당 농장에 최종적으로 옮긴 '매개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멧돼지가 하나의 '매개체' 역할을 했다는 게 중론입니다. 이미 경기 북부와 강원 일대 농가들은 멧돼지가 ASF를 옮기고 다닌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사비 수천만 원을 들려 사람 키보다 높은 울타리를 설치하고 멧돼지 차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인 농장주가 멧돼지가 ASF 바이러스를 옮기고 다니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 멧돼지 개체수 조절은 환경부 담당…멧돼지 ASF 바이러스 758건 발견

농장주들이 아무리 방역에 노력을 해도 화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계가 있습니다. 유력한 감염 매개체인 멧돼지 개체수를 줄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멧돼지 개체수 조절은 공적인 영역입니다. 개인 농장주들이 ASF 바이러스를 차단하겠다고 멧돼지를 쫓아다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환경부가 개체수 조절을 담당합니다. 환경부는 지금까지 멧돼지에서 ASF 바이러스 758건(10월 7일 기준)을 검출했습니다.

[취재파일]? '버틴 것만 해도 신기하다
정작 경기 북부와 강원 일대 농장주들은 환경부를 불신합니다. 기자 본인과 만나거나 통화하는 농장주들은 모두 환경부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합니다. 이들은 환경부가 멧돼지 개체수 조절을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해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환경부 움직임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말합니다. 환경부가 멧돼지 생명을 너무 소중히 여기다 돼지 사육농가가 다 죽겠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옵니다.

물론 환경부가 일을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ASF 발생 전보다 멧돼지 포획 현황이 늘었고, 포획장을 확대해 개체수 조절 작업에 나섰습니다. 다만, 환경부는 과도한 총기 포획에 대해선 염려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멧돼지가 위협을 느껴 사방으로 도망가면서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총기 포획보다는 포획 틀 설치와 같은 조치가 더 필요하다고 여깁니다.

이처럼 농장주와 환경부 사이 의견이 다릅니다. 농장주는 노심초사하는 마음에 환경부가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멧돼지 총기 포획에 나서 주기를 바랍니다. 반면에 환경부는 총기 포획 확대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입니다.

● 설악산 국립공원 뚫리면, 충북‧경북도 위험…"멧돼지 개체수 더 줄여야"

강원대학교 수의학과 박선일 교수는 화천 ASF 발생을 두고 예견된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걱정은 설악산 국립공원이 뚫리는 경우라고 지적합니다. 박선일 교수는 지난 멧돼지 ASF 발견 장소를 분석했더니 빠르면 11월쯤 설악산 국립공원 내 멧돼지 폐사체에서도 바이러스가 검출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취재파일]? '버틴 것만 해도 신기하다
이미 지난 8월부터 최근까지 설악산 국립공원과 인접한 강원 인제에서만 바이러스 13건이 검출됐습니다. 설악산 국립공원과 가장 가까운 발견 지점은 직선거리로 약 5km 떨어진 지점입니다.

박 교수가 설악산 국립공원 내 멧돼지 ASF 감염을 걱정하는 건 경북과 충북으로 확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악산은 국립공원으로 법적으로 포획이 금지된 지역입니다. 그만큼 멧돼지 개체수 조절이 이뤄진 바 없습니다. 바이러스가 국립공원을 들어가면 빠른 속도로 백두대간을 타고 남하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박 교수는 설악산 국립공원 일대 3m 이상의 울타리를 추가 설치하고, 주변 일대 멧돼지 포획을 더 늘려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하지만, 환경부가 멧돼지 개체수 조절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 피눈물 흘리는 농장주들…살처분하면 2~3년 수입 0원

코로나19 장기화로 자영업자들의 생활고가 심합니다. 11일 일부 완화되긴 했으나 그동안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노래방, 유흥주점 등 고위험시설에 대한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업주들은 긴급지난재원금을 일부 받았지만, 몇 달 동안 수입 한 푼 없이 월세를 내야만 했습니다.

살처분 농장주들의 상황도 피차일반입니다. 오히려 고통받는 시간은 훨씬 깁니다. 앞서 전량 살처분이 진행됐던 농가는 1년째 돼지를 키우지 못했습니다. 그리다 지난달(9월) 9일 농림축산식품부가 재입식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해서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이번 추가 발생으로 돼지를 다시 들이는 재입식 절차는 무산됐습니다.

[취재파일]? '버틴 것만 해도 신기하다
돼지를 다시 키운다고 해도, 새끼 돼지를 들여와 키워내고 농장이 정상화되려면 1년 이상이 더 소요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장기간 수입 없이 축사 시설 유지 비용을 감당해야 합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주는 생계안전지원금도 사육 두수가 1,700마리가 넘으면 월 67만 원에 불과합니다. 국내 돼지농가 평균 사육두수는 1,900마리 정도입니다.

● "살처분 희생 강요 말고, 사전 예방부터 잘해 달라"

ASF로부터 살아남은 농가들은 축사 방역은 밤낮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농장주끼리 만남도 자제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건 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다만, 농장 밖 감염 매개체는 농장주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만큼 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가 조금 더 힘써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있습니다. 특히, 멧돼지 ASF와 관련해서 포획을 강화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단순히 폐사체를 수거한 뒤 주변 소독에 그치지 않고 포획을 더 많이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ASF 바이러스 감염 매개체는 아직 특정할 수 없습니다. 멧돼지, 하천, 새, 흡혈파리, 진드기가 거론됩니다. 그래도 멧돼지 개체수를 줄인다면, ASF에 걸린 멧돼지 폐사체 발견 건수도 비례해 줄어들 것입니다. 또 ASF에 걸린 폐사체에 다른 새, 진드기 등 다른 매개체의 접근 가능성 낮출 수 있습니다.

방역 당국은 수매 또는 예방적 살처분을 통해 ASF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도 방역 성과라고 착각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저 농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해서 일궈낸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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