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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위험 짊어진 돌봄 노동, 너무 값싼 대우

[취재파일] 위험 짊어진 돌봄 노동, 너무 값싼 대우

생명과 안전 책임지는 돌봄 노동자, 감염·해고 위험 이중고

제희원 기자 jessy@sbs.co.kr

작성 2020.10.08 14:5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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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위험 짊어진 돌봄 노동, 너무 값싼 대우
열 달 가까이 움츠러든 일상이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덜 만나고 모임을 피하는 비대면 일상 속에서도 여전히 누군가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접촉 노동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돌봄 노동자들입니다.

코로나 시대 달라진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는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더 많이 일하고 있습니다. 특히 노인과 환자, 장애인과 아동처럼 누군가의 돌봄이 꼭 필요한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이들의 업무 강도는 한층 세졌습니다. 노동의 강도가 높아진 만큼 합당한 보상과 대책이 뒤따라야 하지만, 돌봄 노동자들은 예방과 방역 부담까지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고 말합니다.

● "땀에 젖어 하루 두 석 장씩 필요한 마스크, 햇볕에 말려서 이틀씩 써요"

돌봄 노동자들은 무엇보다 마스크 한 장 지원해주지 않는 현실에 분통을 터뜨립니다. 기본적인 방역 도구 지원마저도 정부와 시설이 손 놓고 있다는 겁니다. 마스크 대란이 한창이던 지난 2월에도 요양보호사들은 공적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했습니다. 고위험군을 보살피는 이들이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던 상황은 지금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대다수의 요양보호사들은 여전히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알아서' 구입해야 합니다.

쪽방촌 빨랫줄에 걸린 마스크 (사진=연합뉴스)
"어르신들 곁에서 하루 종일 식사 돕고 기저귀 갈아드리고, 목욕시켜 드리면 땀에 흠뻑 젖기 일쑤예요. 원래도 땀을 많이 흘려서 요양보호사들은 겨울에도 반팔 옷 입고 일하거든요. 마스크도 하루에 두 세장은 필요한데 하루에 몇 천 원 드는 걸 다 우리더러 부담하라고 하니까….햇볕에 말려 쓰기도 하고 천 마스크를 빨아서 쓰곤 해요." - 김미숙 전국요양보호사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

대부분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돌봄 노동자들에겐 하루 몇 천 원의 마스크 비용도 적지 않은 부담입니다. 약 45만 명에 달하는 요양보호사들의 월평균 세전 임금은 157만 원으로 나타났습니다. 돌봄 노동자의 94.7%는 여성, 평균 연령 58.7살로 고령에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도 많습니다. 문제는 원래도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이들이 코로나 확산 이후 안전은 방치된 채 방역 부담까지 떠안고 있다는 겁니다.

"제가 너무 화가 나는 게 (확진자가 나온 이후) 수도 없이 사람을 더 보내 달라고 얘기했는데도 무시하는 거예요. 저 혼자 어르신 열두 분을 4박 5일 동안 쉬지 않고 봐야 하는데, 정말 생사람을 갖다가 지옥에다가 집어던져놓은 꼴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요, 정말." - 경기 성남 A요양원 60대 요양보호사

돌봄 노동
● 요양시설 감염 느는데…방역은 오롯이 돌봄 노동자 책임?

고위험 시설인 요양병원과 요양원에서 집단감염 사례가 늘고 있지만, 제대로 된 현장 매뉴얼이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코호트 격리 시 평소보다 2~3배 많은 환자를 돌보고 24시간 14일간 요양시설에서 상주하며 일을 해도 제대로 된 수당조차 지급받지 못했다는 게 요양보호사들의 말입니다. 요양시설이 통째로 격리된 다음에도 방호복 착용 규정이나 세부적인 인력 운용 매뉴얼이 없어 사실상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감염 위험이 높은 곳에서 사명감을 갖고 일했던 이들이 자가 격리 등을 이유로 헌신짝처럼 해고 통보를 받는 일도 빈번합니다. 이들은 수년 동안 일한 곳이더라도 이용자가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면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비참하다고 말합니다.

● 비대면 일상 떠받치는 필수 노동, 우리들의 자세

우리 모두의 안전한 삶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위험한 노동에 빚을 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길어지는 코로나19 국면에서도 비대면 일상을 가능하게 하는 건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대면 노동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양보호사들은 기초적인 방역 도구 지원과 독감 예방 접종 지원, 코호트 격리 이후 충분한 휴식 보장 같은 기본적인 지원을 요구합니다. 많은 예산을 들이지 않아도 당장에 돌봄 노동자들에게 꼭 필요한 대책들입니다. 돌봄 노동자들의 헌신과 희생을 언제까지 말로만 치하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 요양보호사 관련 통계는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실 자료 및 보건복지부 2019 장기요양 실태조사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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