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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최윤희가 부르면 기업 총수들이 가야 하나?

[취재파일] 최윤희가 부르면 기업 총수들이 가야 하나?

권종오 기자 kjo@sbs.co.kr

작성 2020.09.14 11:15 수정 2020.09.14 13:5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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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가 부르면 최태원이 가야 하나?"

요즘 국내 체육계에서 나도는 말입니다. 여기서 최윤희는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고 최태원은 SK그룹 회장이자 현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을 뜻합니다.

이 말이 나온 것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지난주 느닷없이 대한체육회 산하 전 경기단체에 다음과 같은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기 때문입니다.

문체부 체육정책과 000입니다. 문체부 2차관님 주재 종목단체 회장님 간담회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ㅇ일시: 20.9.14(월) 14:00~15:30
ㅇ장소: 문체부 스마트워크센터 제1회의실(서울시 용산구 청파로 373)
ㅇ참석자: 문체부 제2차관(주재), 회원종목단체 회장 1인
ㅇ 내용 : 스포츠분야 인권보호 대책 안내 및 의견수렴

* 회장만 참석 가능하며, 대참 불가능합니다.
* 공문은 내일 중 송부될 예정이며, 참석여부를 바로 회신 부탁드립니다.
(00연맹, 참석, 불참으로 회신)


최윤희 차관은 오늘(14일) 오후부터 17일까지 종목 단체 회장들과 간담회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어떤 회장은 14일에 오라고 불렀고 어떤 회장은 15일과 17일에 참석하라고 통보했습니다. 즉 간담회에 참석하는 날짜가 서로 다른 것입니다. 회장이 불참할 경우 부회장의 대리 참석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에 대해 문체부 관계자는 "코로나19 때문에 한꺼번에 50명 이상이 모이기 어려운 데다 최윤희 차관이 지난 7월에 부회장단을 이미 만났기 때문에 이번엔 회장을 오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대한체육회 산하 62개 정가맹 단체들은 이 문자를 보고 당혹감과 함께 불쾌감을 갖게 됐습니다. 예를 들어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은 현대산업개발 회장입니다. 이렇듯 대한민국 경기단체 회장 가운데 협회 일에만 전념하는 상근 회장은 많지 않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체부는 사전에 각 종목 단체와 아무 상의 없이 날짜를 지정한 뒤 오직 회장만 그 날짜에 오라고 통보한 것입니다. 어떤 회장은 14일 참석은 가능하지만 15일은 불가능할 수 있는데 문체부는 각 종목 회장의 일정은 물어보지도 않은 채 62개 단체를 몇 그룹으로 나뉘어 간담회 일정을 임의로 잡은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한 경기 단체 관계자는 "간담회 며칠 전에야 문자를 받았는데 우리 회장님은 그날 갈 수가 없다. 다른 날짜는 안 된다고 하고 또 부회장의 대리 출석도 안 된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불참해야 할 것 같다. 문체부가 날짜를 정한 뒤 참석, 불참만 결정하라고 하니 너무 일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상당수 경기 단체들은 이번 간담회 불참을 문체부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체부가 갑자기 준비한 간담회의 의미와 효과마저 퇴색하게 된 것입니다.

대한체육회 로고 (사진=연합뉴스)
최근 문체부와 날카롭게 각을 세우고 있는 대한체육회도 문체부의 처사가 불쾌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62개 단체를 관리 감독하는 상급 기관이 엄연히 대한체육회인데도 문체부가 체육회에는 일번반구 얘기도 없이 종목 단체장 소집을 통보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대한체육회 패싱' 논란입니다.

또 겉으로는 간담회에서 스포츠분야 인권보호 대책 안내 및 의견수렴을 한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뜨거운 감자'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분리와 5개월째 끌고 있는 대한체육회 정관 개정에 대한 문체부의 입장을 종목 단체장에게 내놓을 것이란 의심의 눈초리도 보내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문체부가 대한체육회를 제쳐놓은 상태에서 각 종목 단체를 문체부의 '우군'(友軍)으로 만들지 않을까라는 걱정입니다.

비극적인 고 최숙현 선수 사건 이후에도 한국 스포츠계는 별로 달라진 게 없습니다. 모두 힘을 합쳐도 난제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단합은커녕 도처에서 파열음만 들리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 스포츠행정을 총괄하는 정부 부처입니다. 하지만 책임감과 소명의식, 열정과 전문성에서 합격점을 받기가 어렵다는 게 국내 체육인들의 중론입니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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