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월드리포트] 언론인 수색에 체포, 탈출까지…'악화일로' 중국-호주 갈등의 시작과 끝은

[월드리포트] 언론인 수색에 체포, 탈출까지…'악화일로' 중국-호주 갈등의 시작과 끝은

송욱 기자 songxu@sbs.co.kr

작성 2020.09.10 21:49 수정 2020.09.10 21:50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신화통신과 글로벌타임스 등 중국 관영매체들이 어제(9일) 일제히 호주의 언론 자유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이들 매체는 호주 정보기관 직원들이 지난 6월 호주에 있는 중국 매체 기자 4명의 숙소를 수색했고, 기자들의 휴대전화와 컴퓨터, USB를 압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중국 기자들에게 이 사안에 대해 비밀을 지키도록 요구했다고 전했습니다. 글로벌타임스는 "호주가 타국을 공격하고 가짜 정보를 퍼뜨릴 때는 언론의 자유를 내세우지만, 자신이 원하지 않는 정보에 대해서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탄압하려 한다"고 보도했습니다.

마이클 스미스·빌 버틀스 특파원
이 기사는 중국에 주재하는 호주 언론사 특파원 2명이 호주로 철수한 다음날 나왔습니다. 중국에 불리한 사건에 대해 맞대응 성격인 것이죠. 호주 공영 'ABC 방송'과 일간 '오스트레일리안 파이낸셜 리뷰'(AFR) 소속 빌 버틀스, 마이클 스미스 기자는 최근 호주 외교 당국으로부터 귀국 권고를 받고 출국을 준비했습니다. 이들은 중국 주재 마지막 호주 특파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들이 '국가 안보'에 관한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면 중국을 떠날 수 없다고 통보했습니다.

중국 당국에 체포된 CGTN의 중국계 호주인 앵커 청레이

버틀스 기자는 주중 호주 대사관 관계자 입회 하에 진행된 중국 경찰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관영매체인 CGTN 방송에서 앵커로 일했던 중국계 호주인 청레이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청레이는 지난달 14일 중국 당국에 체포됐는데, 중국 외교부는 그녀가 "국가안보를 해치는 범죄 활동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버틀스 기자는 또 홍콩의 국가보안법을 보도할 때 사용했던 소식통과 호주의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질문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 코로나19 기원 조사 요구에 사드식 보복.."호주는 신발 밑에 달라붙은 껌"

이번 사건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중국과 호주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1일 중국 해관총서는 호주 곡물 수출업체 CBH그레인으로부터의 보리 수입을 중단한다고 밝혔습니다. 유해 생물이 여러 차례 검출됐다는 이유였습니다. 지난 5월 호주산 보리에 80%가 넘는 고율의 반덤핑 및 반보조금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데 이어 아예 수입을 금지시킨 것입니다. 중국은 또 호주 대형 육류 업체 4곳의 소고기 수입을 중단했고 호주산 와인에 대한 상계관세 부과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중국 교육부와 문화관광부는 호주 여행과 유학 자제를 권고했습니다.

숭욱 취파용
소고기와 보리, 와인은 호주의 주요한 대중국 수출품입니다. 중국은 호주 수출액의 3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 호주 대학의 전체 학생 가운데 중국인 유학생이 10%에 이릅니다. 중국 정부가 호주의 급소를 찌른 셈인데, 중국이 사드 배치를 이유로 한국에 한 경제 보복을 떠올리게 합니다.

중국의 호주 때리기는 지난 4월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코로나19 기원 조사를 촉구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모리슨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기원을 밝히는) 그러한 (국제) 조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중국이 그간 내놓은 것과는 다른 시각을 가질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 정상들과 통화를 하며 코로나19 기원을 국제 조사하자는 방안을 지지했습니다. 코로나19에 대한 중국 책임론을 강하게 주장해온 미국의 편에 선 것입니다.

송욱 취파용
지난 5월 세계보건기구(WHO)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세계보건총회(WHA)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코로나19 기원 조사 요구 결의안이 통과됐고, 중국도 WHO 조사에 동의했지만 호주에 대한 압박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모리슨 총리의 발언 이후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 편집장은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웨이보를 통해 "호주는 늘 말썽을 일으킨다. 마치 중국 신발 밑에 달라붙어 있는 씹던 껌처럼 느껴진다. 가끔 돌을 찾아 문질러야 한다"는 발언까지 했습니다.

● "미국 동맹의 가장 약한 부분 공격"

중국과 호주는 1972년 수교를 맺었습니다. 중국과 미국이 수교하기 7년 전입니다. 호주는 급속하게 발전하는 중국에 석탄, 철광석, 천연가스, 농산물 등을 수출하면서 꾸준한 경제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또 2015년에는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습니다. 호주는 중국에 원자재와 농산품을 수출하고, 중국은 호주에 컴퓨터와 가구 등 공산품을 수출하는 '상호 이익이 되는 관계'를 만들어 왔습니다.

송욱 취파용
그런데 중국이 문제 삼은 코로나19 기원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 요구는 호주와 미국 외에도 영국과 독일, 유럽연합(EU) 등도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호주에 대해서만 경제 보복을 하는 건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크다는 점 외에도 호주가 미국의 동맹이자 가장 약한 부분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됩니다. 호주는 미국과 안보동맹을 맺고 있습니다. 미군과 함께 남중국해에 군함을 파견하고 있습니다. 또 미국,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와 함께 5개국 정보동맹체인 '파이브 아이스(Five Eyes)'의 멤버이기도 합니다.

송욱 취파용
호주가 2017년부터 중국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호주에서는 중국계 억만장자가 기부금을 미끼로 호주 정치인들과 접촉해 정보를 중국 공산당 조직에 빼돌렸다는 보도가 나왔고, 호주 제1야당인 노동당의 샘 대스티아리 상원 의원이 중국 공산당과 연계된 부동산 재벌로부터 뇌물을 받은 정황이 드러나면서 사임했습니다. 이 사건들로 호주는 외국의 간섭을 강력하게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리고 2018년에는 호주가 서방국가 중에서 가장 먼저 중국 이동통신회사 화웨이를 5G 사업에서 제외시켰습니다.

● "중국은 호주의 최고 교역 상대이자 국가 주권에 대한 위협"

호주는 코로나19 사태로 지난 2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에 비해 7% 줄었습니다. 통계 기록을 시작한 1959년 이래 가장 큰 폭의 축소입니다. 중국의 경제 보복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호주 정부는 그럼에도 외교와 안보, 국방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호주 정부는 주정부가 외국 정부와 독자적으로 맺은 계약에 대해 연방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무효로 할 수 있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2019년 호주 빅토리아주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에 참여하기로 하고 중국과 1조400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했는데, 법안이 통과되면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호주 정부는 또 중국 유제품 제조업체인 멍뉴(蒙牛)의 호주 유제품 업체 '라이언 데어리 앤드 드링크' 인수에 대해 '국익에 반한다'며 승인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홍콩인들이 홍콩보안법의 위험을 피해 호주에 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중국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외국인 투자에 대한 국가 안보 시험 도입과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한 국방비 증액을 발표했습니다.

로이터 통신은 "호주 모리슨 정부가 중국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 중국은 호주의 최고 교역 상대일 뿐만 아니라 국가 주권에 대한 위협이라는 인식이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모리슨 내각 내 중국에 대한 논의는 주권을 보존하고 호주 정치를 흔들려는 중국의 노력을 막아야 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전했습니다.

● "중국과 호주의 갈등은 앞으로 나타날 일들의 전조"

그러나 호주 정부 관계자들은 "상호 이익이 되는 관계는 위험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는데, 그 근거로 철광석을 들었습니다. 호주는 중국의 철광석 수입의 60%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이 코로나19 타격에서 벗어나 정상 경제로 돌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중국은 철광석을 잠재적 보복 대상으로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호주 내에서는 중국이 철광석 대체 수입국을 찾을 가능성, 다른 제품들의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송욱 취파용
로이터는 철광석이라는 다른 나라와 다른 특수한 지렛대가 있지만 '중국과 호주의 갈등은 세계의 각 나라들이 갈수록 강압적인 아시아의 경제 초강대국에 대응하면서 나타날 일들의 전조일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중국은 자신들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호주에 더 거센 압박을 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호주 정부는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이어가면서 중국 경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다변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외교와 안보에서는 미국과 발을 맞춰 중국과 계속 대립 각을 세울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인 우리나라도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 받고 있습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노력에 동맹들이 합류하고 있다며 한국도 해당 국가 사례로 잇따라 거론했습니다. 반중 전선 구축에 동맹인 한국도 동참 대상이라는 인식을 내비친 것입니다. 중국은 이웃이자 코로나19 방역 모범 국가인 한국이 '중요한 경제 파트너'라며 우군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고민이 깊을 수 밖에 없습니다. 국익을 고려한 영리한 외교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