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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감독이 된 '차미네이터'…"한국 축구 뿌리부터 튼튼히"

이정찬 기자 jaycee@sbs.co.kr

작성 2020.07.29 17:02 수정 2020.07.29 17:2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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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에 차두리(40)보다 뛰어난 선수는 더러 있었지만 그만큼 큰 사랑을 받으며 그라운드를 떠난 선수는 거의 없었다. 2015년 3월 31일 뉴질랜드전. 차두리가 76번째이자 마지막 A매치를 치르던 날. 전반이 끝난 뒤 그라운드를 빠져나가는 순간 서울월드컵경기장의 3만 3000여 팬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관중석엔 "차두리 고마워"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역대 최고 선수로 꼽히는 아버지, 차범근(67)도 누리지 못한 장면이다. '차붐'은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나 때는 은퇴식이란 게 없었어. 그리고 이렇게 박수받으면서 떠나니 얼마나 좋아." A매치 136경기에서 58골을 넣은 전설은 그렇게 아들을 꼭 안아줬다.

차두리 오산고 감독
개인적으로는 '감독 차두리'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날이기도 했다. "한 것 이상으로 너무 큰 사랑을 받았다"며 눈물을 흘린 그는 솔직하고 담담하게 대표팀 생활을 정리했다. 진지한 분위기를 스스로 바꾼 한 마디가 있었다. "얼마 전 댓글을 봤는데 공감하면 안 되는데 공감이 가더라고요. '피지컬은 아버지, 발은 어머니.'" 웃음소리가 기자회견장을 메웠다. "저는 분명히 기술이 뛰어나고 화려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다른 장점이 있었어요. 음... 그런 것 같아요. 유럽에선 선수 장점을 크게 봐요. 장점을 극대화해 팀에 맞춰 기용을 해요. 우리나라엔 완벽주의가 좀 있는 것 같아요. 단점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선수들이 위축되는 듯해요. 완벽한 선수는 없어요. 단점을 열심히 찾아내 평가하기보단 장점을 보면서 축구를 즐겼으면 좋겠어요." 이런 솔직함과 유쾌함 그리고 따뜻함. 차두리가 두루 사랑받은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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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5년. FC서울의 18세 이하(U-18) 팀인 오산고 사령탑에 오른 차두리 감독은 그때 그 말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듯했다. "상훈~ 굿!" "그렇지, 거기 봐야지." "오케이, 오케이." 부천 U-18팀과 경기에서 그는 90분 내내 선수들을 독려하고 칭찬했다. 한 순간도 의자에 앉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감독 데뷔 첫 해, 고등리그 6경기(저학년부 2경기 포함)에서 모두 승리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궁금했다.

-뜻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칭찬만 하기 답답하지 않나요?
"축구엔 정답이 없잖아요. 수학 공식처럼 정답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제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것도 모순이 있는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선택지를 선수들에게 얘기해줄 뿐, 결국 경기장 안에서 선택은 스스로 해야 해요.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되도록 아이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려고 합니다."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뒤 그는 독일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2018 러시아월드컵 대표팀엔 코치로 합류해 독일 전력분석을 맡아 '카잔의 기적'에 힘을 보탰다. 이후 그는 소셜미디어에 '#한국축구뿌리부터튼튼히'라는 글귀를 반복해 적고 있다.

- 지도자 연수 시절 독일에선 무엇을 느꼈나요.
"우리 선수들에게 많이 하는 얘기가 있어요. '너희들 전성기가 지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때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 갈수록 어려움을 겪으면서 원하는 곳까지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우리나라에선 참 많아요. 지금 이기고 지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과정일 뿐이에요. 고등학교 때 배워야 할 걸 잘 배워서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서 꽃을 피우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어요."

-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2010 남아공월드컵 첫 원정 16강, 또 코치로 2018 러시아월드컵에선 독일전 승리에 힘을 보탰죠. 월드컵 영광의 경험이 지도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나요?
"어쩌면 이 선수들이 가보고 싶은 곳이 월드컵이고, 유럽 무대이겠죠. 그곳에 가기 위한 길이 어떤 길인지, 그곳엔 어떤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다는 점이 도움이 돼요. 준비를 돕는 길잡이가 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 '#한국축구뿌리부터튼튼히'를 강조하는 이유는?
"축구 강국은 하나같이 유소년시스템에 굉장히 많은 투자와 정성을 쏟고 있어요. 그냥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그 나이에 꼭 배우고 넘어가야 할 것들을 지도하는 거죠. 때를 놓치면 결국 성인이 되어서 빠른 속도의 축구에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죠. 우리 유소년 선수들이 연령대에 맞는 훈련을 잘 받았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오산고 주장 이태석(18)은 "감독님 오신 뒤 많은 변화가 있었다"면서 "빠른 속도를 유지하는 가운데 더 세밀하고 정확한 판단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느끼는 차두리 감독의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은 역시 에너지다. 이태석은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시고, 운동장 안팎에서 많은 즐거움을 준다"며 웃었다.

차두리 오산고 감독 (이정찬 취파용)
- 감독으로 첫 해인데, 재밌나요?
"하하. 재미있어요. 매일 아침 아이들을 만나고 훈련 준비하고, 또 소리 지르고 웃고 때론 화도 내고요. 선수로 뛸 때보다 보람차고 즐거워요."

- 지도자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요?
"꿈은...모르겠어요. 훈련프로그램과 시스템에 변화를 주려고 하는데, 구단도 그걸 긍정적으로 생각해줘서 뜻을 모아 가고 있어요. 우리 FC서울이 앞장서서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죠. 우리 어른들이 잘 인도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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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준비한 마지막 질문이 있었다. '감독으로서 아버지를 넘어서고 싶지 않는지'였다. 2001년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되며 처음 태극마크를 단 차두리는 당시 "제가 못해서 아버지 얼굴에 먹칠을 하지 않을지 부담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14년 뒤 선수 인생을 이렇게 정리했다. "평생 아버지보다 잘하고 싶고, 그럴 수 있다고 믿으면서 그 명성에 도전했어요. 현실의 벽을 느끼면서 한편으론 조금 밉더라고요. 이놈의 축구를 아무리 잘해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도저히 그 근처도 못 가니까." 이번엔 아들 '차감독'에게 '아버지 '차감독'을 넘어서겠다'는 포부를 듣고 싶었다.

입을 떼려는 데, 문득 2014 브라질 월드컵 기념 다큐멘터리 속 차 감독 부자(父子)의 말이 차례로 떠올랐다. 먼저 아버지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워낙 아버지 그늘이 있으니까 아무리 해도 나하고 비교를 하니까 얼마나 피곤하겠어. 참 아빠로서 너무 마음이 아프지." 다른 공간에서 아들은 "제가 (박)지성이 만큼 축구를 잘했으면 손흥민만큼 축구를 잘했으면 아버지도 자랑스러우셨을 거고. 제가 거기까지 못 간 것에 대해서 굉장히 아버지께 죄송하죠"라며 말끝을 흐렸다.

마지막 질문을 삼켰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차두리 감독이 차범근 감독이 오르지 못한 곳까지 올라 환하게 웃는 모습을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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