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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막무가내' 트럼프 인터뷰하는 법…트럼프 vs 월리스

김수형 기자 sean@sbs.co.kr

작성 2020.07.20 17:25 수정 2020.07.21 10:2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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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도 함부로 하기 어려운 폭스의 이단아 월리스

미국 일요일 오전 시간대는 주요 방송사의 주력 대담 프로그램이 포진해 있습니다. 지상파에서는 NBC Meet the Press, CBS Face the Nation, ABC This Week가 대표적이고, 뉴스 전문 채널에서는 Fox News Sunday, CNN State of the Union 등이 있습니다. 시사 언론 프로그램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미국인 만큼 일요일 오전 대담 프로그램에는 정부 당국자들이 라이브로 출연해 대담하면서 비판적이고 곤란한 질문까지도 답을 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TV 출연을 워낙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에게 적대적인 성향의 지상파 방송은 물론 케이블 채널까지 돌아가며 종횡무진 출연을 하는 편입니다. 

폭스 뉴스가 친트럼프 방송인 것은 분명하지만(숀 해너티나 터커 칼슨의 프로그램, 폭스 앤 프렌즈 등은 노골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편드는 방송을 하는 편입니다) 소수의 언론인들이 폭스 채널의 본래 성격과는 다른 뉴스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사들은 보도본부장을 정점으로 뉴스의 단일 철학과 방향을 가지고 움직인다면 미국은 진행자가 중심이 돼 프로그램별 색깔을 구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는 크리스 월리스와 닐 카부토 정도가 폭스 뉴스에서는 이단아적인 방송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이번에 대담한 크리스 월리스는 엄정한 중립성을 추구하는 베테랑 언론인입니다. 47년생으로 원로 언론인이지만 현안을 세세히 팔로우하면서 어떤 젊은 진행자보다 활발하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타 방송사 젊은 앵커들이 방향을 정해놓고 가끔은 무례해 보일 정도로 상대를 몰아가는 방송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평소 월리스는 몰아가기 보다는 필요한 질문을 준비하는 데 공을 많이 들인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씨름하듯 현장에서 질문만으로 기술을 넣어서 상대를 넘어뜨리는 방식으로 방송을 진행한다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그는 이미 NBC, ABC 등에서 여러 간판 프로그램을 맡았습니다. NBC의 경쟁 프로그램인 Meet the Press도 진행한 경력도 있습니다. 월리스의 친아버지는 60minutes를 진행했었고, 양아버지는 CBS 뉴스 대표를 지냈다고 합니다. 집안 자체가 미국 언론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80년대 백악관 출입 기자 생활도 굉장히 오래 해 정치 현장 감각도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자기 편을 잘 들어주지 않는 월리스를 트위터로 비난한 적이 있지만, 이번 인터뷰 중간에 그를 존중한다는 의사를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월리스가 트럼프 대통령도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중량감을 가지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 폭염에 땀까지 흘리며…전혀 안 봐주는 이종 격투기급 인터뷰

이번 인터뷰는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백악관 외부에서 진행됐는데, 최근 워싱턴DC 날씨가 섭씨 35도를 넘어갈 정도로 몹시 더웠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상당히 더워 보이는 양복을 입고 인터뷰를 하다 보니 두 사람 다 얼굴에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상태에서 대화하는 흔치 않은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특히 거구의 트럼프 대통령은 날이 더워지니 얼굴에 비 오듯 땀을 흘리는 게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질문과 답변의 합을 겨루는 모습은 더 치열했습니다. 마치 전혀 안 봐주는 이종 격투기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월리스는 시작부터 "대통령이 어떤 질문이든 받기로 동의했다"고 말을 꺼내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미국 코로나바이러스 상황부터 질문했습니다. 월리스는 들고 나온 차트를 보여주며 "4월에는 3만 6천 감염자가 나왔는데 지금은 7만 5천까지 올라갔다"고 지적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테스트를 많이 해서 그런 거고, 절반만 검사하면 감염자는 절반만 나올 것"이라고 응수했습니다.

크리스 월리스 폭스뉴스 앵커
월리스는 "미국의 코로나 상황은 숯불(burning embers)이 아니라 숲이 활활 타는(forest burning) 수준"이라고 맞받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미국의 치명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반박했습니다. 월리스는 존스홉킨스 대학 자료를 가지고 미국이 치명률이 전 세계에서 7번째로 높다는 걸 보여줬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CDC자료를 가지고 나와서 미국의 치명률이 낮은 편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유럽CDC 자료를 가지고 나오는 것도 이상하기는 했지만, 이 자료에는 러시아 등이 아예 빠져 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 늘 말하던 대로 "테스트를 너무 많이 해 세계의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고 자랑 퍼레이드를 이어갔습니다. 검사를 많이 해서 문제를 만든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We are creating trouble") 월리스는 "테스트는 37% 증가했는데 케이스는 194%나 증가했다"며 상황이 심각하다고 직격하기도 했습니다. 

월리스가 레드필드 CDC 국장이 2020년, 2021년 가을과 겨울이 보건 의료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가 될 거라고 말한 것에 대한 입장을 물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그는 잘 모른다"고 깎아내렸습니다. 열에 약한 코로나가 여름이 되면 잠잠해졌다가 가을이 되면서 더 심해질 거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틀린 얘기를 또 하는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월리스는 "과학을 따르는 게 아니라 보고 싶은 세상만 말하는 거 아니냐"며 파우치 국립 전염병 연구소장을 흠집 내는 이유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우치 소장이 중국발 입국 금지도 하지 말라고 했고, 마스크도 쓰지 말라고 했다는 예전 얘기를 다시 언급했습니다(대다수 큰 방향에 대해서 올바른 진단을 했던 파우치 소장의 사태 초기 발언 일부만 떼서 이렇게 말한 건데, 백악관TF에 있는 전문가들은 당시 파우치 소장과 모두 똑같은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파우치는 다소 불필요한 우려를 자아내는 사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월리스는 그 자리에서 "당신도 실언을 많이 했다"며 클립으로 만들어놓은 트럼프 대통령의 황당 발언 퍼레이드를 틀어줬습니다. 마지막 발언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질 것"이라는 연설 내용이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그걸 보고는 기죽기는커녕 "결국은 사라질 거라는 내 말이 맞을 거다"라고 우겼습니다. 한술 더 떠서 "내가 누구보다 더 옳았다"고 자화자찬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월리스는 폭스뉴스에서 한 여론조사를 대통령에게 처음 보여준다고 말을 꺼내며 결과를 말해줬는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크게 밀리는 수치였습니다(요즘 미국 내 대부분 대선 여론 조사 결과는 이렇게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여론조사 내용이 더 심각해졌는데, 심지어 이제는 경제 문제도 바이든이 더 잘할 거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월리스는 트럼프 대통령 면전에서 "당신이 지고 있다"고 대놓고 말해줬습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가짜 여론조사"라며 대응했습니다. 2016년 대선 때 폭스가 얼마나 틀렸냐며 그때는 여론 조사 결과가 더 엉터리였다고 공격했습니다. 자체 여론조사로는 자기가 경합주까지 다 이기는 결과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평가는 인격모독 수준이 된 지 오래입니다. 트럼프는 "바이든이 문장을 두 개 이상 말할 수 없다"며 비난을 했는데, 월리스는 "바이든이 노망이 들었다고 생각하냐"고 대놓고 물어봤습니다. 트럼프는 "그는 살아 있는 것조차 모른다"며 극단적인 비난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경제를 막고 있고, 학교가 수업을 하는 걸 못 하게 하고 있다고 음모론을 펼쳤습니다. 민주당이 주지사인 지역에서 자신의 유세도 못 하게 막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월리스가 "그건 코로나로 인한 건강 문제 때문 아니냐"고 되묻자 트럼프는 "어떤 사람들은 괜찮다고 한다"고 대응했습니다. 자기는 이렇게 민주당 쪽에 서 있는 당신과도 인터뷰를 하지만, 바이든은 이런 인터뷰도 못 하고는 엄마를 찾으며 울 거라고 비아냥댔습니다. 엄마한테 집에 데려가 달라고 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를 이런 식으로 비열하게 놀리는 발언을 하는 공인을 우리나라에서 찾기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저도 정당팀 출입할 때 우리 정치인들의 막말 보도를 여러 차례 했지만, 사실 트럼프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밖에 안 됩니다.

폭스 뉴스 - 트럼프 미 대통령, 크리스 월리스 앵커
● '막무가내 트럼프' 치열하게 인터뷰하던 월리스의 내공

기본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팩트는 그 자리에서 바로 신뢰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자기에게 유리한 내용이 있으면 내용을 완전히 바꿔서라도 일단 지르고 보는 스타일입니다. 한번 거짓말로 상대를 몰아세워 멘탈을 붕괴시키면 나중에 상대가 수백 가지 말을 해도 대중은 사실이 뭔지 알기 어려워집니다. 지난 대선의 필승 전략이었고, 미국 언론들이 수많은 팩트체크 기사를 쏟아내고도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걸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이 크게 아프고 죽는 상황을 겪으면서 미국인들이 현실의 부조리에 눈을 뜨고 있습니다. 공화당 지지자들조차 트럼프 대통령의 사술 가득한 발언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높아지는 건 분명합니다. 어물쩍 넘어가는 발언은 현장에서 데이터와 증거를 들이대면서 인터뷰를 해야 시청자들에게 실체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하려면 준비도 많이 해야 하지만 상대가 대통령이라면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게다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품격을 유지하면서 치열하게 방송하기는 더 쉽지 않은데, 오늘 인터뷰를 보면서 70대 방송인 월리스가 평생 쌓아온 내공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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