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젊은 가장들의 삶…그 뒤 줄줄이 '빨갱이 낙인'

아물지 않은 보도연맹 상흔

배여운 기자 woons@sbs.co.kr

작성 2020.06.23 20:59 수정 2020.06.23 21:29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앵커>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당시 민간인 학살에 대해 연속 보도를 전해 드리고 있습니다. 보도연맹 사건의 희생자 규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어제(22일) 전해 드렸는데 저희가 확인된 희생자들의 데이터를 입수해 분석해 봤습니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배여운 기자입니다.

<기자>

최대 30만 명이 넘는다는 주장도 있지만 10년 전 전국을 조사했던 진실화해위원회는 보도연맹 사건의 피해자를 10만 명 정도로 추산했습니다.

위원회가 직접 확인한 피해자는 4,934명,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이 이름 외에 나이, 성별, 지역 등 추가 정보가 있는 4,309명을 추려 따로 분석했습니다.

보도연맹 사건의 피해자
성별로는 95%가 남성, 여성은 1%, 나머지는 확인 불가였습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인 홀로코스트의 경우 40% 제주 4·3 사건 희생자의 25%가 여성인 데 비해 남성이 압도적입니다.

[김동춘/성공회대 NGO 대학원장 : 70% 이상은 자기가 이런 사회주의나 좌익 활동에 대한 경력도 물론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이장이 도장을 찍었거나….]

남성 피해자들 가운데는 10대도 있었지만 75%가 20에서 30대 남성이었고 이 가운데 절반은 가장이었습니다.

젊은 가장의 피해는 개인뿐 아닌 가정의 불행으로 이어졌고 특히 연좌제로 인한 후손들의 피해는 대를 이어서 전해졌습니다.

[소재성/공주 보도연맹 사건 피해자 유가족 : 그저 빨갱이라고 하면 기가 죽어 가지고서 숨죽이면서 살고 그런 것이 우선 살기 위한 환경을 극복하는 것이 더 힘들었어요.]

일가족이 함께 학살당한 경우도 최소 66명이나 됐는데 세 살 아이가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김종현/대전 보도연맹 사건 피해자 유가족 : 각 면으로 (보도연맹 가입자를)할당을 했어요. 몇 명씩 이렇게.]

보도연맹 사건의 피해자
명단이 확인된 피해자 가운데 시신이 당시 가족 품으로 돌아간 경우는 33%에 불과했습니다.

(영상취재 : 이병주, 영상편집 : 원형희, CG : 이예정·최재영)  

▶ 학살자 명부 품고 있던 경찰서…"더 남아 있을 수 있다"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