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AI는 발명가가 될 수 있을까…거절된 앨런 튜링의 꿈

김용철 기자 yckim@sbs.co.kr

작성 2020.01.10 10:02 수정 2020.01.10 17:2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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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특허청 "AI는 발명가가 될 수 없다" 특허 신청 거절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영국은 독일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다. 부족한 식량을 미국이 배로 실어 영국으로 보내지만, 미국의 식량 수송선은 독일군 '유보트'의 공격에 대서양을 건너지 못하고 속속 바다에 수장된다. 영국군은 독일군의 무전 내용을 도청해 해독하려 하지만, '어니그마'라는 첨단 장비로 암호화된 전신을 좀처럼 풀지 못한다.

영국 정부의 부름을 받은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배우 베네딕트 컴버베치)은 10만 파운드를 받아 주변 사람들이 인정하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암호 해독기 '크리스토퍼'의 개발에 나선다. 그리고 결국 '크리스토퍼'를 이용해 '어니그마' 해독에 성공하고 독일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다.

2015년 영국에서 개봉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Imitation Game)'에서 앨런 튜링이 꿈꾸던 유니버설 머신(만능장치)은 이제 획기적인 컴퓨터 하드웨어 성능 향상과 소프트웨어 기술의 발달로 현실화하고 있다. 데이터를 넣으면 그것을 처리해 원하는 답을 내놓는 AI(인공지능)가 그것이다.

AI는 이제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는 수준까지 능력이 향상됐다. AI는 X레이나 MRI 영상을 판독하고 진단하는 분야에서 이미 전문의보다 정확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고, 투자 결정과 법률적인 판단까지 하고 있다. 음악을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며, 시와 소설을 쓰는 창의적인 분야에 까지 활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여러 가지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종합해 독자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내놓고, 새로운 발명품을 만드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AI가 발명한 음료수 용기와 비상 신호등 디자인지난 2018년 10월 영국 서리(Surrey) 대학의 라이언 애벗(Ryon Abbott) 교수팀은 인공지능 DABUS가 고안한 디자인 2건에 대해 영국과 미국, EU 특허청에 특허를 출원했다. DABUS(Device for the Autonomous Bootstrapping of Unified Sentience)는 스티븐 테일러(Stephen Thaler) 교수가 개발한 인공지능컴퓨터(AI)로 여러 개의 다중 신경망을 연결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고, 그 아이디어의 효과를 계산해 내는 시스템으로 알려져 있다.

AI가 만든 발명 2건은 프랙탈(Fractal Geometry)을 활용한 음료수 용기와 수색구조 상황에서 좀 더 눈에 잘 띌 수 있도록 하는 비상 신호등(Neural Flame) 디자인이다. 애벗 교수는 "AI가 발명자로서 자격이 충분할 정도의 일을 했다"면서, "AI가 발명자이고 AI를 소유한 사람이 특허권자 또는 특허권을 양도받은 사람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AI에 특허를 줘야 창의적인 AI 개발을 촉진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보상해서 발명을 육성한다는 특허법의 목적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상 처음으로 발명가가 되고 싶은 인공지능 DABUS의 꿈은 무산됐다. 유럽 특허청(EPO)은 지난해 12월 20일 DABUS를 발명자로 신청한 특허를 거절한다고 밝혔다. EPO는 "비공개로 이뤄진 공청회 결과 특허신청서에 기재된 발명자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어야 한다고 결론 지었다"면서 "자세한 판단 근거는 2020년 1월에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 AI에 특허 부여 놓고 미국도 검토 중

AI를 발명자로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미국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특허청(USPTO)은 AI가 발명에 기여하는 상황에 맞게 발명자의 정의를 바꾸어야 하는지를 놓고 본격 검토에 들어갔다. 지난해 초 공청회를 개최한 데 이어 지난해 10월 11일까지 AI에 특허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인가의 여부를 놓고 광범위한 의견 수렴을 벌였다.

AI 특허와 관련한 이슈는 첫째 AI를 만들거나 관리하는 사람이 아닌 AI 스스로가 얼마나 창의적이어야 발명자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 마련이다. 그리고 이 기준을 만족할 정도로 창의적인 비지도 학습이 가능한 AI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새로운 문제를 유발하지는 않을 것인가 이다.

AI의 발전속도가 빠른 상황에서 일부 AI 소유자에게 너무 많은 발명이 너무 빨리 집중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크다. AI가 특허 절차와 소송 과정에서 의무화된 증거 제출과 증언, 선서 등을 어떻게 할 것이며, 문제가 생겼을 경우 책임을 누구에게 어떻게 부과할 것인지도 고민이다.

AI에 발명자의 지위가 부여되고, AI를 보유한 사람이 특허권을 갖게 될 경우 AI 개발에 따른 경제적 이득이 커지고 AI 개발 경쟁은 가속화할 것이다. 반면 AI에 발명자의 자격이 부여되지 않을 경우 사람들은 AI가 생성한 아이디어에 대해 발명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개입을 하게 될 것이다.
유럽 특허청의 AI 특허 신청에 대한 결정문, 2019. 12. 20● AI에 발명가 지위 부여될까…강한 AI에 의한 독점 우려

갓 출발한 2020년대는 AI시대로 불린다. AI는 자아를 가진 독립적인 개체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특정 분야에서 지정한 업무를 수행하는 약한 AI를 넘어, 예기치 못한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강한 AI의 출현 가능성을 놓고 과학계는 논란이 거세다.

운전자는 물론 운전석 자체를 없앤 자율주행자동차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경우 AI가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도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낭떠러지가 있는 커브 길에서 여러 명의 등산객들이 길을 건너고 있을 때, 차량의 진행방향을 바꿔 계곡 아래로 추락하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등산객들을 치고 그냥 갈 것인 지 같은 논란이다. 차량의 소유자 내지는 차량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하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 결정이 설계자가 아닌 AI가 스스로 내린 것이라면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불명확하다.

AI가 한 발명을 특허의 보호대상으로 할 것이냐의 최종 종착점은 AI를 경제적 권리와 의무를 가진 독립된 주체로 인정할 것인 가이며, 헌법상 인간이 가지는 권리를 AI와 공유할 수 있는지가 될 것이다.

AI에게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허락한다면 AI를 개발한 특정인이나 특정 회사에게 권리를 독점시키는 것으로 이것이 공정한 지에 대한 질문도 따른다. AI는 어마어마한 빅데이터를 기반하고 하고 있고, 이러한 빅데이터는 일반 개인이 수집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어서 특정 개인이나 기업에 의한 독점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바이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신약 탐색 기술이 쏟아져 나오면 그 기술의 권리를 특정 회사가 독점하도록 허락할 것인가도 문제다. 최강의 AI를 보유한 주체가 기술과 부를 독점하는 데 따른 사회적 문제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슈퍼컴퓨터 5호기유럽특허청은 전자적 개체(Electronic Personality)를 특허를 받을 수 있는 '자연인' 또는 '법적 주체'로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150명의 AI와 로봇, 지식재산, 그리고 윤리 전문가들의 강한 반대의견에 따라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이미테이션게임에서 주인공 앨런 튜링은 당시 영국에서 처벌 대상이었던 '게이'임이 발각되면서 화학적 거세를 당하게 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감옥에 가는 대신 화학적 거세를 택했지만, 화학적 거세를 위한 호르몬 투입에 따른 부작용으로 우울증에 빠져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성적소수자로 표현되는 LGBT는 대부분 선진국에서 법적으로 허용된다. 동성간 결혼도 허용되는 곳이 많다. AI가 스스로 생각하고 제품까지 만들어내는 시대, AI에 어떤 정도까지 자율성을 부여하고 어떤 법적 지위를 부여할 것인지, 과학적 혁신과 종교, 윤리적 가치를 어떻게 조화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