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34억 원' 전준우, 운명을 바꾼 2014년 4월 26일

유병민 기자 yuballs@sbs.co.kr

작성 2020.01.09 10:59 수정 2020.01.09 11:0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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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34억 원 전준우, 운명을 바꾼 2014년 4월 26일
FA 최대어 중 하나로 꼽힌 전준우가 롯데 잔류를 택했습니다.

롯데는 어제(8일) 전준우와 계약 기간 4년, 최대 34억 원에 FA 잔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세부 조건은 계약금 12억 원에 연봉 총액 20억 원, 옵션 2억 원입니다. 전준우는 2008년 롯데에 입단해 11시즌 동안 타율 0.294, 135홈런, 555타점을 기록한 프랜차이즈 스타입니다. 특히 올 시즌 '투고 타저'의 흐름에서도 타율 0.301, 22홈런, 83타점을 기록하며 기복 없는 공격력을 보여줬습니다.

그런 전준우의 '이름값'에 비하면 총액 34억 원은 요즘 말로 '착한 계약'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같은 팀, 같은 포지션의 손아섭(4년 총액 98억 원)과 민병헌(4년 총액 80억 원)의 계약 규모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FA 시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파'가 불어 닥쳤고, 그 여파는 전준우에게 직격탄이 됐습니다. 전준우에게 관심을 보이던 타 구단은 일찌감치 시장에서 철수했습니다. 전준우는 선택지가 좁아진 가운데 구단과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구단이 계약 기간 '4년 보장'을 제안하자 그는 고심 끝에 1루수 전향을 받아들이면서 사인을 했습니다.
롯데 전준우전준우의 계약 소식을 접한 한 에이전트는 "아무리 시장에 한파가 불었다 해도 전준우는 더 많은 금액을 받을 줄 알았다"며 놀라워 했습니다. 또 다른 에이전트는 "전준우가 FA 자격을 2년만 빨리 취득했어도 지금보다 상황이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년 전이면 롯데가 손아섭, 민병헌과 대형 계약을 맺은 2018년을 의미합니다.

만약이라는 가정이 붙지만, 전준우는 FA를 2년 빨리 취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시간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전준우는 병역을 해결하지 못한 상황으로 그해 열린 인천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승선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2010년부터 주전 외야수로 발돋움했고, 2013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국가대표에 뽑힌 만큼 기량을 발휘한다면 야구 대표팀에 승선할 가능성이 컸습니다. 당시 대표팀 사령탑이었던 류중일 감독도 전준우의 활약을 기대했었습니다.

전준우는 만반의 준비를 위해 2013시즌을 마친 뒤 자신을 괴롭히던 오른 발목 뼛조각을 제거했습니다. 그런데 재활을 끝내고 맞이한 2014시즌 초반, 전준우의 타격감은 생각만큼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타격폼을 바꿔보는 여러 대책을 강구했지만 컨디션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4월 22일~24일 열린 목동 넥센전에서 마침내 그의 방망이가 터졌습니다. 22일 경기에서 3타수 3안타 2타점 2득점을 올리더니 다음 날엔 4타수 2안타, 3타점 3득점을 쓸어 담았습니다. 3연전의 마지막 날에도 5타수 2안타로 멀티히트를 이어갔습니다. 전준우는 "타격감을 조금이나마 찾은 거 같다. 페이스를 더 끌어올리면 괜찮아질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롯데 히메네스그리고 장소를 옮겨 부산 사직구장에서 SK를 만났는데, 4월 26일 전준우는 불의의 부상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SK에 4대 3으로 뒤진 9회 말, 롯데는 만루 기회에서 외국인 타자 루이스 히메네스가 2타점 끝내기 적시타를 터뜨렸습니다. 짜릿한 역전승을 거둔 롯데 선수들은 모두 그라운드로 나가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나눴습니다. 관중에게 인사를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이때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사직구장은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려면 계단을 밟고 내려가야 합니다. 전준우가 먼저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끝내기 안타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히메네스가 전준우의 등을 밀쳤습니다. 스파이크를 신고 있던 전준우는 균형을 잃고 옆으로 떨어졌고, 수술을 받은 오른 발목을 접질렸습니다. 주루가 어려울 정도로 통증이 발생했습니다.

속상할 법했지만 전준우는 "조금 쉬면서 치료를 받으면 괜찮을 거 같다. 타격감이 올라온 상황에서 부상을 당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부상의 여파는 오래 갔습니다. 전준우는 4월(0.246)과 5월(0.273) 모두 2할대 타율에 머물렀고, 인천아시안게임 대표팀 승선에 실패했습니다. 당시 29살로 더는 군 입대를 미룰 수 없었던 전준우는 이듬해 경찰야구단에 입단했습니다.

물론 전준우가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해도 대표팀에 반드시 뽑힌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이라는 가정하에 전준우가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혜택을 받았다면, FA 자격 취득을 2년 앞당길 수 있었습니다. 2년 전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이번 34억 원은 분명 아쉬움이 남는 액수입니다. 예상치 못한 부상이 전준우의 운명을 바꿔놓은 셈입니다.

계약을 마친 뒤 연락이 닿은 전준우에겐 아쉬움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롯데에 남아서 너무 좋다"며 "팬분들이 남아달라고 너무 말씀하셔서 마음이 움직였던 거 같다. 개인적으로는 잘 계약한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6일 FA로 롯데에 합류한 경찰청 동기 안치홍을 반겼습니다. 전준우는 "안치홍과 친해서 자주 통화를 했다. 계약을 앞두고 연락이 왔길래 '롯데에서 같이 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며 "롯데가 올해 좋은 성적이 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올해 분명 달라진 모습을 보일 거라 생각한다"고 의지를 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