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딸의 '복직 축하' 목도리 맨 11년 만의 출근길…아버지가 돌아갈 부서는 없었다

'사회적 합의'가 깨지면 누가 책임지나

제희원 기자 jessy@sbs.co.kr

작성 2020.01.08 14:06 수정 2020.01.08 14:0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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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노사 갈등 / 해고자 복직 시위크리스마스 이브날 저녁 한 쌍용차 해고자는 복직을 앞두고 가족들과 삼겹살 파티를 하다가 '휴직 연장' 문자메시지를 확인했습니다. 가족과 인증샷을 찍으려던 찰나였습니다. 또 다른 해고자의 대학생 딸은 아버지가 다시 회사로 정상 출근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땀 한땀 하얀색 목도리를 떴습니다. 아버지는 그 목도리를 매고 회사 정문 앞에 섰지만, 고개를 떨궜습니다. 10년 7개월 동안 기다린 출근의 꿈이 좌절된 46명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또 한 번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쌍용차 노사 갈등 / 해고자 복직 시위재작년 9월 쌍용자동차와 쌍용자동차 노동조합(기업노조),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해고자 복직을 합의하고 합의서를 작성했습니다. 이른바 '노노사정 합의'입니다. 함께 아픔을 나눈 시민들을 비롯해 대통령과 국무총리까지 각계각층의 축하가 쏟아졌습니다. 2009년 대량 구조조정으로 시작된 쌍용차 사태가 9년 만에 사실상 마무리 됐기 때문입니다.

쌍용차 사태를 매듭지었다고 평가됐던 '노노사정 합의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1. 회사는 복직대상 해고자를 2018년 말까지 60%를 채용하고, 나머지 해고자를 2019년 상반기 말까지 단계적으로 채용한다.
2. 2019년 상반기 대상자중 부서배치를 받지 못한 복직 대상자에 대해 2019년 7월 1일부터 2019년 말까지 6개월간 무급휴직으로 전환 후 2019년 말까지 부서 배치를 완료한다.
3.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쌍용자동차 노노사가 어려운 경영 여건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의 사회적 갈등을 사회적 합의로 해결한 것에 존경을 표하며 관계부처와 협의하여 해고자 복직으로 생기는 회사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지원 방안과 경영 정상화를 위한 지원 방안을 마련한다.
4.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과 지속 성장을 위해 추가적 정부 지원방안 마련 및 본 합의서에 따른 세부 실행계획 점검을 노사정 대표가 참석하는 "쌍용차 상생 발전위원회"에서 논의한다.
2018년 9월 21일 서울 광화문 경제사회노동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쌍용차 노사 해고자 복직 잠정 합의 발표.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왼쪽부터), 최종식 쌍용자동차 사장, 홍봉석 쌍용자동차 노조위원장,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했다.이 합의에 따라 119명의 해고노동자 중 60%인 71명이 2019년 1월 1일 자로 복직했습니다. 문제는 남아있는 47명의 휴직자들입니다. 회사와 기업노조는 이들의 개별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무기한 휴직 연장' 통보했습니다. '노노사정 합의'는 이렇게 물거품이 됐습니다.

● '약속'을 깬 건 누구인가

이 합의는 그냥 탄생한 것이 아닙니다. 1,800여 명이 구조조정 된 2009년 쌍용차 대규모 해고 사태 이후, 9년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와 그 가족만 30명에 달할 정도로 갈등이 치닫자 노사정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중재에 나선 결과입니다. 중재에 나섰던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도 당시 해고자의 복직이 단순 복직에 그치는 게 아닌, 노사가 똘똘 뭉쳐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대전환의 계기로 삼겠다는 공통 인식이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쌍용차의 대주주인 마힌드라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에게 해고자 복직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촉구한 것도 경사노위가 중재하는 '노노사정 합의'의 불씨가 됐습니다.
(사진=연합뉴스)
● '사회적 대타협' 찬사받은 쌍용차 합의 파기, 경사노위 이제 와서 '나몰라라?'

쌍용차 노사 해고자 복직 잠정 합의 발표가 있었던 2018년 9월 21일, 4자 합의 주체들이 손을 맞잡고 합의문을 발표한 곳이 바로 대통령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입니다. 하지만 경사노위는 이제와서 '공식 활동이 아닌 문 위원장의 개인 활동'이라며 선을 긋고 있습니다. 당시 경사노위 내부에선 노총 단위가 아닌 개별 기업 노사관계에 참여 혹은 개입하는데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일부 있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합의서 문구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문 위원장이 개인이 아닌 경사노위로 명시돼있습니다. 당시 정부 대표 격으로 합의에 참여했던 경사노위가 이제 와서 '우리의 공식 의제가 아니고 위원장 개인활동이었다'고 말하는 겁니다.

쌍용차는 이 합의문에 따라 해고자 복직에 노력하는 조건으로 산업은행에서 1천억 원 규모의 대출 지원을 받기로 결정됐습니다. 이 지원 방안을 마련한 것이 바로 노노사정 합의 당사자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입니다. 문성현 위원장이 당시 합의를 주선했던 책임을 지고 조만간 노노사를 만나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 나설 거라고 했지만, 사회적 대화를 기구의 존재 목적으로 삼는 경사노위가 '이 일은 우리와 상관없다'는 말 역시 몹시 무책임합니다.

쌍용차 노사 갈등 / 해고자 복직 시위● '가장 혁신적이고 존경받는 대한민국 자동차 회사'

2019년 1월 3일 출근해 만 1년째 공장으로 돌아가 일하고 있는 한 복직자는 공장 정문을 지날 때마다 아직 복직하지 못한 동료들이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지난 11년 동안 수없이 지켜지지 않았던 약속들이 떠올라 슬펐다고도 했습니다. 광화문으로 달려갔던 이들이 이제는 이 문제를 사회가 해결해 달라고 외쳤고, 정부가 함께하는 노노사정 합의가 탄생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축하하고 이낙연 총리가 이들을 안아줬습니다. 여전히 유급 휴직 상태인 마지막 해고노동자 46명은 부서배치는 받지 못하지만 매일 현장에 출근합니다. 사회적 대타협으로 칭송받던 '노노사정 합의'가 그저 깨어지고 마는 옹졸한 약속이 될지는 나머지 합의 주체들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이들이 걸어갔던 정문 공장 벽에는 '가장 혁신적이고 존경받는 대한민국 자동차 회사'라는 걸개가 걸려있었습니다. 새봄이 오기 전, 이 말이 진정으로 실현되는 대답이 들려오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