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제보를 받고① 통신사-오피스텔 계약 경쟁에 '2주째' 인터넷을 쓰지 못한다면?

특정 통신사 독점계약에 선택권 빼앗긴 오피스텔 입주자들

[취재파일] 제보를 받고① 통신사-오피스텔 계약 경쟁에 '2주째' 인터넷을 쓰지 못한다면?
<제보 내용>
2019년 12월 현재 입주가 진행 중인 경기도 하남시 미사신도시의 오피스텔 '○○○'에서 시행사의 갑질로 입주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시행사인 '○○○'가 입주민의 동의 없이 A통신사와 협약을 체결한 것인데, 문제는 입주민들이 A통신사 외 다른 유료방송 및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의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입주자들은 입주 후 원하는 인터넷 및 유료방송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어 불편을 겪고 있으며, 시행사와의 분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이러한 시행사의 행태는 입주자의 권리를 무단으로 강탈하고 있는 것으로 입주자들의 항의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신축 오피스텔에서 내가 원하는 통신사를 개통해주지 않아 2주째 인터넷을 못쓰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우리나라 통신강국 아니었던가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아 경기도 하남 미사강변도시를 찾았습니다.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오피스텔, 통신사 독점
● 2주째 '단절'을 겪고 있는 도심 속 오피스텔 입주자

오피스텔 입주민 이기수 씨의 집에서 가장 처음 눈에 들어온 건 바닥에 놓인 TV였습니다. TV 뒷면엔 오피스텔 위성 안테나와 연결한 케이블 선이 보였습니다. B통신사 셋톱박스 대신 말이죠. IPTV가 1500만 가입을 확보해 대세로 굳어진 지금 꽤나 오랜만에 케이블 선을 봤습니다. 이 씨는 B통신사 개통이 안돼 덕분에 2주째 지상파 방송사만 보고 있었습니다. 인터넷은 물론 와이파이도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집 계약 당시 이 씨는 A통신사만 사용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고 말합니다. 이전 집에서 B통신사를 월 9,900원에 1년가량 사용했는데 이사를 왔더니 관리사무소 1층엔 "A통신사 IPTV+인터넷+와이파이 15,000원"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습니다. 약정이 남은 B통신사를 굳이 바꿀 필요가 없어 B통신사 기사를 불러 인터넷 회선 개통을 부탁했는데, 웬걸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인터넷 단자함을 열어주지 않는 겁니다.

이때부터 이 씨의 통신사 사수를 위한 분투가 이어집니다. 하루에 수차례 관리사무소에 항의한 이 씨의 통화 내용 일부를 전합니다.

<이기수 씨-오피스텔 관리사무소 통화 녹취 中 재구성>

관리사무소) □□ 통신사나 △△ 를 쓰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분들이 쓰시다가 위약금 물고 해 가지고 관리실에 그 문의만 하루에도 막 50통 이상씩 전화 오거든요. 통신에 대해서 우리가 협약을 맺은 건 없거든요. 시행사 측에서 계약을 맺은 겁니다. 그 (통신) 신청하시는 거는 입주지원센터에 전화하셔서 신청하시면 매주 목요일날 ○○ 설치하는 기사가 와서 설치를 합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지금 명확하게 없어요. 왜냐면 이게 제가 관리실이라고 그래서 권한이 많은 줄 아시는데 그런 건 아니에요.

이기수 씨)그거를 왜 시행사 말을 들으시냐고요. 입주민을 위해서 계시는 분이잖아요.

관리사무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부분은 시행사가 어디 해줘라 ◇◇통신사도 해줘라 그럼 전 열어주는 거예요. 저한테 아무리 이런 얘기를 하셔도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정리하면 600여 세대가 입주하는 이 오피스텔 시행사 측에서 A통신사와 인터넷을 독점 개통하는 계약을 맺어 A 통신사 외 타 통신사 개통이 어렵다는 거였습니다. 관리사무소는 정 B통신사를 쓰고 싶으면 시행사의 '공문'을 가져와야 인터넷 통신함을 열어주겠다고 얘기합니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취재진에게도 이와 같은 이야길 반복했습니다.

시행사는 어떤 입장일까요? 이 씨는 시행사에 수차례 통화를 시도한 끝에 시행사 사원, 주임, 과장과 통화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온 답변은 '입주자들이 저렴한 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독점계약을 맺었다'는 설명입니다. 독자 여러분, 이런 상황에서 이 씨가 던질 질문은 무엇일까요? 또 시행사의 답은 무엇인지 직접 보시겠습니다.

<이기수 씨-시행사 통화 녹취 中 재구성>

시행사 측) 전체적으로 싸게 공급하기 위해서 기업형으로 들어온 인터넷이에요.

이 씨) 네 그건 알겠는데요. 근데 왜 그거랑 입주자들이 인터넷 사용하는 거랑 무슨 관련이 있는 거예요.

시행사 측) 근데 요즘에는 오피스텔 하나 지으면 요즘에는 통으로 다 쓰기 때문에

이 씨) 누가요.

시행사 측) 그렇게 많이들 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이 씨) 아니 많이들 들어가는 건 알겠는데, 여기 계약한 입주자들 동의도 없이 누구 마음대로 그렇게 입주자들 권리를 제한을 해요?

시행사 측) 어 아무래도 가격을 싸게 책정하기 위해서 한 것 같습니다.


수차례 통화 내내 이런 식의 대화가 계속 반복돼 더 이상 옮기지 않겠습니다. 시행사는 결국 이 씨에게 "마음대로 하시라"는 말을 하지만 이후 오피스텔에 "타 통신사 개통을 위해 통신 단자함을 열어줘라"는 공문은 보내지 않았습니다. 저희도 시행사 측에 최소 4차례 취재를 요청하고 번호를 남겼지만 '담당자들이 정신이 없다'는 이유로 끝내 답이 없었습니다.

오피스텔, 통신사 독점
● 정말 입주자만을 위한 '독점계약'일까

시행사나 오피스텔 측에서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말 '입주자들에게 저렴한 통신비 혜택을 주기 위해'서 특정 통신사에서 독점계약을 선택하게 된 건지 궁금해졌습니다.

우선 오피스텔과 통신사간 '독점계약' 자체는 불법은 아닙니다. 방송통신위원회도 케이블 TV에 이어 IPTV사업자까지 시장이 확대되면서 아파트와 오피스텔 같은 집합건물과 특정 통신사간 독점계약의 위법 소지를 검토했지만 현행법상 건물주의 재산권 행사로 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보자 이기수 씨가 택한 하남 미사강변도시는 2009년 보금자리주택 사업지로 선정돼 올해까지 아파트 외에도 오피스텔만 14,000여 세대가 들어설 정도로 규모가 제법 되는 신도시입니다. 특히 아파트와 달리 입주자 회의가 없는 경우가 많은 오피스텔은 적게는 수십 세대에서 많게는 수백 세대까지 입주하기 때문에 '독점 계약'을 노리는 통신사 입장에선 '노다지'라는 게 지역 통신사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 오피스텔 입주자 수백 명을 한 번에 고객으로 유치할 수 있는 만큼 '독점 계약'을 따내기 위한 경쟁은 치열합니다.

□□통신사 기사 A 씨

황당한 상황이 좀 많은데, 갑자기 □□통신사는 안된다고 나가라 그러고. 오피스텔에서 □□는 나가라는 데가 더 많아요. ◇◇하고 ○○가 다 독점해버렸어요. 저희는 어쩔 수가 없죠. 관리사무실에도 저희 통신사 쓰지 말라고 스티커 다 붙어있고. 저희는 그냥 상가만 개통하라 그래서 상가만 개통하고 그러거든요. 오늘도 통신사 바꾼다고 한 두세 집이 나왔어요. 걱정되는 게 많죠.

◇◇통신사 기사 B 씨

입주민이 새로 들어와도 (설치기사들이) 못 들어가는 거로 통신 그 뭐라 그러냐 통신 계약을 통으로 했다고 해요. (오피스텔 측) 걔네들이 열쇠 같은 것도 안 주고 또 이게 오피스텔이 주거형인지 그 상업용인지 그게 애매하더라고요. 민원을 걸어도. 민원을 걸어도 이게 관리소장이 나는 모른다 그리고 이게 주거용도 아닌데 그런 식으로 대답하는 경우가 많죠.


취재진이 확인한 하남 미사강변도시 일대 '독점계약' 오피스텔만 20곳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취재 도중 신축 오피스텔과 독점계약을 따내기 위해 이를 돕는 브로커가 있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통신사 기사 C 씨
통신사가 이제 고객한테 그 가끔씩 뭐 이렇게 합쳐서 가입을 하면은 (상품으로) 얼마 드리잖아요. 맨날 전단지에서 보듯이. 30만 원, 50만 원 이렇게 주잖아요. 독점계약을 브로커가 성사시키면 그 돈이 브로커한테 가죠. 고객은 선택권이 없고. 고객은 ○○밖에 안 깔려 있으니까 선택권이 없고.
그래서 (브로커) 걔네들이 관리사무실이랑 계약을 해요. 저희한테 "이번에 너네도 하고 싶으면 한 가입자당 얼마씩 내라" 이런 식으로 접근하더라고요. 얼핏 듣기로는 뭐 (통신사가 오피스텔 측에) 1억 주고 들어왔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거 보니까.


신도시 일대 이른바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며 오피스텔-통신사간 독점계약을 성사시키는 대가로 통신사로부터 세대당 수수료를 받고 또 오피스텔 측에 챙겨줄 돈까지 받는다는 겁니다. 통신사 기사 C 씨는 자신들에게도 브로커가 접근했다며 가격은 '세대당 30~50만 원'에 오피스텔 측에 들어가는 돈도 적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취재진은 '브로커'로 의심되는 전화번호를 확보해 관련 사실을 물었지만 '브로커'는 관련 의혹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기수 씨의 오피스텔을 포함해 하남 일대 오피스텔들이 입주자에게 더 저렴한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독점계약'을 체결했다는 취지와 설명은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만 일방적인 특정 통신사 선택으로 인해 입주자의 선택권이 과도하게 침해된다는 점, 통신사 이동으로 인해 가족 결합 할인 등 기타 할인율 감소와 같이 추가 금전적 손해가 예상된다는 점, 입주자에게 이를 사전고지 않았다는 점은 누가 보더라도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

오피스텔, 통신사 독점
● 과당 경쟁 벌이는 통신사들의 책임은?

통신사들에겐 책임은 없을까요? 계약상으론 '독점계약'은 통신사들과 해당 오피스텔 시행사나 건물주와 일대일 계약입니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집합건물과 통신사간 '독점계약'은 인정하니까요. 건물 전체에 특정 통신사 회선을 일괄 계약하는걸 '비즈 계약'이라 합니다. 이를테면 목동 SBS사옥과 같이 업무용 건물엔 통신사 한 곳의 회선만을 넣을 순 있겠습니다만, 오피스텔처럼 수백 명의 입주민 개개인이 각각 계약 주체가 될 수 있는 건물이라면 글쎄요. 통신사들이 '자신이 원하는 통신사를 선택할 수 있는' 오피스텔 속 입주민들을 배려할 순 없을까요.

국내 주요 통신사에 물었습니다. 한참 이야길 나누었지만 결국 A통신사는 B, C 통신사 탓을, B통신사는 C와 A통신사 탓을 하는 식이었습니다. "저쪽 통신사가 먼저 치고 들어와 우리도 경쟁을 하다 보니 그렇다. 적어도 실거주용 집합건물엔 독점 계약을 자제하는 방식은 함께 머리를 맞대도 어렵지 않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종국에는 통신사들 스스로가 충성 가입자를 잃는 구조를 만드는 셈이고 자사 직원마저 독점 계약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취재진의 지적엔 별다른 답이 없었습니다.

이 씨가 하남 미사강변도시에 온 지 벌써 2주가 지났습니다. 아직도 오피스텔이 통신 단자함을 열어줄 기미는 안보입니다. 한 변호사는 "이 씨 오피스텔처럼 특정 통신사만 요구할 경우 협박 정도에 따라 강요죄 성립이 가능하고 또 타 통신사 회선 설치를 방해했기에 업무방해 혐의도 적용 가능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입주민으로서 또 소비자로서 권리를 빼앗긴 이 씨는 이사 2주 만에 다른 집으로 가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입니다.

통신사 규제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집합건물과 통신사간 계약 유형과 상황이 모두 달라 일괄 입법은 힘들지만 독점계약 자체를 제한할 수 있는 법률안도 올해 안에 준비해보겠다"고 답했습니다. 부디 이 씨를 포함한 오피스텔 입주민들의 속을 긁어줄 묘안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