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연말마다 '트렌드' 책 열풍…나만의 경쟁력 갖추려면

이혜진 | 해냄출판사 편집주간

SBS 뉴스

작성 2019.11.27 11:00 수정 2019.11.27 18:5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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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낮 시간인데도 서울 시내 대규모 강연장을 메운 인파가 어마어마하다. 2020년 트렌드를 정리하는 자리였고, '밀레니얼들을 이해하자'는 목적이 덧붙여지니 사람들의 관심이 더 높아진 듯했다. 컨퍼런스 시간이 다섯 시간이나 되었지만 자리를 뜨는 이가 거의 없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알리고 설득하고 팔아야 하는 이들의 고뇌가 한자리에 모여 팽팽한 긴장감마저 뿜어내고 있었다.

11월은 트렌드를 다룬 강연과 도서들의 각축장이다. 거의 10월 말부터 시작되긴 하지만 한 해의 끝자락이 가까워지는 11월에 정점을 찍는다. 최근 몇 년 사이엔 세대와 취향, 진화하는 디지털 미디어, 글로벌 현상까지 가세하여 그 종류도 가짓수도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그만큼 세상의 변화가 광대한 동시에 촘촘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징표이다. 게다가 빠른 속도의 인구 변화는 기존의 판을 흔들어놓기도 한다.

개인들에게도 이맘때쯤 '자동적으로' 트렌드에 대한 도서를 구입하고, 강연에 참석하는 것이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리추얼이 되다시피 했다. 전통적으로 트렌드에 민감했던 유통, 마케팅, 콘텐츠 같은 업계는 물론 이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의 흐름, 세상 변화의 맥락을 읽어야 한다는 절실함은 분야를 막론한다.

대한민국 소비 트렌드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김난도 교수는 해마다 그의 책에서 그 해의 띠인 동물명과 주요 트렌드 키워드를 결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쥐띠의 해인 2020년의 트렌드 키워드는 MIGHTY MICE라는 말로 탄생했다. 어두운 정치경제 상황 속에 위기감이 고조되지만, 작고 민첩한 '쥐'처럼 난국을 헤쳐갈 작은 영웅들이 등장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멀티 페르소나, 라스트핏 이코노미, 페어플레이, 스트리밍 라이프, 초개인화 기술, 팬슈머, 특화생존, 오팔세대, 편리미엄, 업글인간이란 10가지 키워드를 들여다보면 더욱더 '개인의 욕망'과 '경험의 공유'가 중요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이 중에서도 특히 나의 관심을 끈 키워드는 '팬슈머'의 부상이었다. 이미 몇 해 전부터 '팬덤'의 중요성이 강조되곤 했지만 팬슈머는 기존의 팬덤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육성과 견제에까지 나서기도 한다. 산업이 그들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다. 비단 BTS와 같은 유명 연예인뿐 아니라, 자신들이 좋아하는 브랜드, 상품, 캠페인까지 전방위적이다.

어린 시절에도 누군가의 팬이 되는 데 무심했던 나는, '팬덤을 만들어야 한다'는 명제는 비즈니스의 목표로서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를 온몸으로 체험한 일이 있었다. 얼마 전 정말 좋아했던 뮤지션의 콘서트가 10년 만에 열렸다. 틈틈이 콘서트를 챙겨볼 정도의 열성파도 아니고, 부담스러운 표 값 앞에선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던 편이었다. 그런데 10년의 기다림이 위력적이었는지, 이번엔 1초의 고민도 없이 덥석 결제를 해버렸다. 봉인이 풀린 나의 손은 한 달 뒤에나 있을 또 다른 콘서트도 예약하고 있었다. 돌아와선 열혈 홍보요원이 되어 잘 하지도 않던 인스타그램에 공연에 관한 온갖 정보와 사진들을 올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몇 개월 전부터 소셜미디어와 영상 등을 통해 내 나름의 팬심을 차곡차곡 쌓아온 결과였다.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시대, 넘쳐나는 정보 속에 '예상문제'와 1타 강사를 기다리는 불안한 수험생의 심정으로, 트렌드 컨텐츠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높아지는 것 같다. 트렌드를 파악해 가는 일이란 결국 내가, 혹은 나의 조직이 남다른 경쟁력을 갖추고 시장을 선점하거나 뒤처지지 않기 위한 일일 터.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주어진' 트렌드를 똑같이 사유하고 대응한다면 결국 내놓는 것들이 다 비슷해지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동시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생생하게 체험하고 맥락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트렌드 키워드들은 그저 연말의 불안을 잠재우는 도구가 될 뿐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고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을 축적해 가는 일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트렌드는 숨을 멈춘 글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흐름이니까 말이다.

뒤질세라 구입한 트렌드 서적들을 책장에 꽂아두려는 순간, '2019'로 시작하는 책 서너 권이 그 옆에 얌전히 놓여 있다. 무척 낯선 책을 펼쳐 드니, 인간의 손길은 서문까지만 닿은 듯. 올해는 다짐한다, 끝까지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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