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AI가 법안 통과 여부를 예측한다고?

美 예비 유니콘 '피스컬노트' 공동창업자 제럴드 야오 인터뷰

노동규 기자 laborstar@sbs.co.kr

작성 2019.11.05 09:11 수정 2019.11.06 15:0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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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법안의 통과 여부를 AI가 분석해 답을 내려준다면? 피스컬노트는 이 아이디어를 실현한 스타트업이다. (사진: 피스컬노트 홈페이지)
미국 수도 워싱턴 DC는 정치가 곧 산업인 도시다. 세계 각국과 외교를 벌이는 부서를 그저 '국무부'라 일컫는 슈퍼파워 미국의 정책이 영그는 곳, 권력의 중심이자 IMF·세계은행 등 국제기구까지 몰려 있는 이 현대의 로마에 7천 곳 가까운 각종 이익단체와 협회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을 위해 일하는 등록된 로비스트만 줄잡아 1만 2천 명에 달한다.

피스컬노트(FiscalNote)는 이런 환경을 이용해 뜬 기업이다. 특정 법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 인공지능(AI)이 분석해 답을 내준다면? 한국계 미국인 팀 황(27)이 이 아이디어를 구현해 DC의 수많은 로비스트 이목을 사로잡았다. 미 프로농구 매버릭스 구단주로도 유명한 투자가 마크 큐번과 야후 창업자 제리 양 등으로부터 지금까지 2억 3천만 달러를 투자받으며 이제 미 동부를 대표하는 스타트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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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가 산업인 도시에서 AI로 법안 통과 예측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잇는 펜실베이니아 에비뉴의 오피스 빌딩 6층에 피스컬노트 본사가 있다. 3개 층 1천 평 넘는 사무실은 투명한 창으로 구획돼 있어 탁 트인 느낌을 준다. 전체 450명 직원 가운데 내근하는 150여 명이 칸막이 없는 책상에 각자 랩톱을 펼치고 일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자유로운 스타트업 분위기다.
피스컬노트 공동창업자 제럴드 야오(27)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엔지니어를 구하면 되지만 엔지니어는 기획을 못 한다"며 참신한 기획의 가치를 높이 샀다.
대만계 미국인 공동 창업자 제럴드 야오(27)가 자신의 계정으로 피스컬노트 유료 앱을 구동해 보여줬다. 검색창에 공화당 중도성향 상원의원 수전 콜린스 이름을 쳐 넣자 각종 데이터가 일목요연하게 나타났다. 콜린스 의원을 "(법안 통과율) 상위 6% 연방 의원"이라고 분석한 앱은 그녀가 법안 별로 어떤 투표를 해왔는지부터 민주당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과 노동·농업 분야에서 비슷한 투표 행태를 보여 왔다고까지 안내했다. 로비스트들에게 "서로 다른 정당의 두 명을 묶어 공략하라"는 전술을 제공하는 셈이다. 야오는 "분석 속도를 빠르게 해 생산성을 높여주는 게 관건"이라며 "95% 확률로 법안 통과 여부를 예측한다"고 말했다.
 
피스컬노트를 통해 의원들이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났는지, 모든 등록 로비스트들과의 접촉 내용도 확인할 수 있다. 로비를 합법화 해 정보를 공개하는 미국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 피스컬노트는 국회뿐 아니라 50개 주와 각 주별 카운티 단위에서 쏟아지고 있는 공공 행정 빅데이터까지 실시간으로 수집해 가공하고 있다. 이렇게 분석한 정보를 4천5백 개 기업에 전달한다. 크리스 루 피스컬노트 선임 전략 고문은 "현재의 60개국을 넘어 전 세계 200여 국가의 모든 법과 규정을 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피스컬노트 유료 앱에서 미국 상원의원이 언제 어디서 누구를 무슨 목적으로 만났는지까지 다 확인할 수 있다.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는 미국이기에 가능한 일이다.야오는 "공공 데이터라고 다 좋은 게 아니라 나쁜 데이터도 많다. 좋은 데이터만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며 중요한 건 정보를 가공하는 기술과 노하우라고 강조했다. 최근 의회와 행정부 소식을 다루는 DC 지역 전문지 'CQ롤콜'을 인수한 것도 그런 차원이다. AI 시대라도 훈련된 기자들이 취재원을 만나 수집하는 양질의 정보는 테크 기업으로서도 매력적인 자원인 것이다. 소비자에게 종합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다.
 
● 전통 서비스업도 AI로 혁신…중요한 건 '기획력'

사실 정치 분석·컨설팅 업무는 기존에도 존재해온 비즈니스다. 피스컬노트는 전통 비즈니스도 AI로 한 단계 도약시키면 혁신기업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변호사이면서 오바마 행정부에서 일하기도 한 루 고문은 "내가 처음 DC에 발 디딘 25년 전만 해도 서류들이 많았고 계속 읽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로펌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라며 "디지털화와 인공지능이 '무엇을 읽어야 할지' 알려 준다"고 피스컬노트의 성공 배경을 설명했다.
변호사 출신으로 오바마 행정부에서 일하기도 한 크리스 루 피스컬노트 선임전략고문은 "25년 전엔 많이 읽어야 했지만 오늘날엔 인공지능이 무엇을 읽을지 알려준다"고 말했다.
야오에게 물었다. 어떤 빅데이터를 특정한 방식으로 가공해보자는 '아이디어' 또는 '기획'과, 이를 기술적으로 구현할 '컴퓨터 도사' 가운데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야오는 "기획이 있다면 엔지니어를 구하면 되지만 엔지니어는 기획자가 없으면 안 된다"고 말해 기획과 아이디어를 더 중요한 가치로 평가했다. 실제 동부에 위치한 피스컬노트 엔지니어의 급여는 서부 실리콘밸리 엔지니어 연봉에 못 미친다. 야오는 "실리콘밸리만큼 일을 시키지도 않는다"며 웃었다. 결국 피스컬노트의 성공은 실리콘밸리가 아니어도 우수한 엔지니어가 계속 공급되는 지금 미국의 혁신 토양에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법안 통과 가능성이 확률로 재단되는 세상이라면, '발의'만으로 의미를 갖는 법안이 묻힐 가능성은 없을까. 차가운 인공지능의 계산으로 입법자의 발의 행위와, 이어지는 사회적 대화 가능성이 막힌다면? 기자의 질문에 야오는 "예측은 우리 비즈니스의 일부일 뿐, 고객들은 여러 맥락을 담은 정보를 받게 되고 우리가 제공하는 대로만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기자 역시 그래야 한다고 믿지만, 우리 스스로 나를 둘러싼 세계의 맥락에 관심 기울이지 않는다면 테크 기업과 AI에 지배당하는 날이 오는 것도 시간문제란 생각이 들었다.

※이 취재파일은 방송기자연합회 '4차산업혁명과 혁신정책과정' 단기연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