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평창올림픽 훈장이 '복불복'인가?

권종오 기자 kjo@sbs.co.kr

작성 2019.10.04 09:1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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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가 25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 유공자 포상 전수식에서 유공자들과 기념촬영 하고 있다. 앞줄 왼쪽 네번째부터 이기홍 대한체육회장, 이 총리, 이명호 대한장애인체육회장. (사진=연합뉴스)2018 평창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유공자에 대한 정부 포상식이 지난 9월 25일(이낙연 국무총리 시상)과 27일(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시상) 이틀에 걸쳐 열렸습니다. 개인과 단체를 합쳐 모두 1,006점의 훈장, 포장, 표창이 수여됐습니다. 그런데 포상식 이전은 물론 포상식이 끝난 뒤에도 공정성과 형평성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내용의 제보가 저에게 잇따라 왔습니다. 이제부터 사안별로 이번 포상이 갖는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보겠습니다.

● 유치 때 받은 게 죄?

동계 종목 전문가인 A 씨는 2011년 평창올림픽 유치위원회에서 단 3주간 활동했는데 유치에 성공하자 2012년 1월 표창을 받았습니다. 이후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무려 5년 동안 근무하며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평창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A 씨는 당연히 훈장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A 씨에게는 훈장은커녕 1장의 표창장도 손에 쥐지 못했습니다. A 씨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평창조직위 동료인 B 씨는 2년 정도 근무하고도 이번에 훈장을 받은 것입니다. A 씨의 공적이 B 씨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은데도 말입니다. 이와 관련해 행정안전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답변은 "유치 때 표창을 받은 사람은 이후 조직위원회에서 아무리 큰 공적을 세워도 어떤 상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국내 체육계에서는 "국제대회 유치에 성공한 뒤에는 표창이나 낮은 등급의 훈장은 준다고 해도 절대 받으면 안 된다"는 웃지 못할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 고위 공무원은 되고 민간인은 안 되고?

평창 조직위원회에서 근무했던 상당수 민간인들이 '완주'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훈장은 물론 포장과 표창 대상에서도 제외됐습니다. 예를 들어 2015년부터 일하다가 2016년 여름쯤에 그만뒀을 경우 2018년 2월 개최 당시에 근무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예 포상 대상자로 추천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고위 공무원의 경우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평창 조직위에서 근무했던 고위 공무원 C 씨는 분명히 2017년 여름 이전에 조직위를 떠났습니다. 즉 완주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C 씨는 근정포장을 받았습니다. 고위 공무원과 민간인에게 서로 다른 기준이 적용됐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상황입니다. 이런 의혹에 대해 포상 대상자를 추천한 문화체육관광부 담당자에게 2일 오전 질문지를 보냈지만 아직까지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 패럴림픽 맡은 게 잘못?

평창 패럴림픽 개폐회식 연출을 맡은 사람들이 평창올림픽 개폐회식 제작단에 비해 이번 포상에서 불이익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패럴림픽 개폐회식 연출을 맡은 사람들은 평창올림픽 연출자들에 비해 훨씬 열악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포상에서도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패럴림픽 개폐회식 제작단은 포상의 등급에서 올림픽 개폐회식 제작단보다 낮은 데다 심지어 일부 연출자들은 아예 포상을 상신했지만 탈락했습니다. 이에 대해 평창 조직위는 "포상 대상자의 인원 제한이 있어 어쩔 수 없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합니다.

● 도지사는 안 되고 도의회 의장은 되고?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평창올림픽 성공 개최에 상당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선출직이라는 이유로 포상 대상자로 추천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평창올림픽 개최 당시 강원도의회 의장을 지냈던 D 씨는 이번에 체육훈장을 목에 걸었습니다. 강원도의회 의장도 당연히 선출직입니다. 같은 선출직이라도 도지사는 안 되고, 도의회 의장은 된 것입니다.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도 저는 포상 대상자를 추천하는 문화체육관광부 담당자에게 2일 오전 질문지를 보냈지만 아직까지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25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 유공자포상식에서 평창올림픽 개·폐막식 총감독으로 활약한 송승환 PMC프러덕션 예술감독에게 포상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재포상 금지 지침 있으나마나?

이번 훈장 수여식에 정작 성공 개최의 주역들이 대거 빠졌다는 9월 22일 자 SBS 취재파일(▶ [단독][취재파일] 김연아 등 '평창 주역', '평창 훈장'서 제외)이 보도되자 훈장 수여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행정안전부는 그날 밤 설명 자료를 급히 배포했습니다. 요지는 '피겨 여왕' 김연아와 이희범 평창조직위원장이 재포상 금지 지침에 걸려 이번에 포상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행안부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실제로 김연아는 2012년 1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2016년엔 체육발전 공로로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습니다. 당시 규정에는 훈장을 다시 받으려면 10년이 경과해야 했는데 김연아는 4년 만에 다시 훈장을 목에 걸었습니다. 쉽게 말해 재포상 지침을 정부가 스스로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재포상을 금지한다던 행안부는 이번에도 8명에 대해 예외를 적용했습니다. 송승환 평창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송승환 씨는 지난 2012년 11월 문화훈장 보관장을 받아 7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번에 훈장을 받았습니다. 행정안전부는 3년 전에도 예외를 적용했고 이번에도 예외를 적용했습니다. 결국 재포상 관련 업무지침은 안 지켜도 된다, 즉 무조건 지켜야 하는 '법'이 아니라는 점을 행안부 스스로가 인정한 것입니다.

훈장은 국가 권위의 상징인 동시에 개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영예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엄격한 원칙 준수와 철저한 심사를 통해 공정성과 형평성을 담보해야 합니다.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끝난 지 1년 6개월이나 지난 시점에 실시된 이번 포상은 이런 점에서 합격점을 받기 어렵습니다. 평창올림픽 성공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결국 국가가 수여하는 훈장이 '복불복'이 됐다"며 원망과 분노의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