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인천 의붓아들 살해, 모두가 알았지만 아무도 못 막았다

정준호 기자 junhoj@sbs.co.kr

작성 2019.10.03 12:44 수정 2019.10.04 16:3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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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 지 30년 된 빌라의 붉은 벽돌의 색은 흐릿했습니다. 녹슨 빨간 우편함 옆 계단은 비좁았습니다. 반으로 접힌 유모차, 손잡이에 걸린 빈 우유 배달 주머니는 이곳에 어린 아이들이 살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2017년부터 A(26) 씨가 아내(24)와 세 명의 의붓아들과 함께 살던 인천 주안동. 소주병이 가득 담긴 봉투와 현관문 위 CCTV는 위태롭고 경계심 가득한 가정생활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정준호 취재파일_이미지A 씨는 2017년 초부터 의붓아들들을 때렸습니다. 폭력을 견디기 어려웠던 아내의 신고로 첫째(5)와 둘째(4) 등 두 아들은 2년 6개월(2017년 3월~2019년 8월)간 보육원으로 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9월 26일, 법적 분리가 끝나 집으로 돌아온 지 불과 26일 만에 첫째 아들은 24시간 가까이 손발이 함께 등 뒤로 묶인 채 A 씨가 휘두른 둔기 등에 맞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미 재판에서 아동학대 혐의 등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기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2개월의 아동학대, 2년 6개월의 분리, 그리고 26일의 재결합. 경찰과 법원, 보육원과 구청, 아동보호전문기관 등 여러 기관은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A 씨 가정에 개입했지만, 아이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비극을 막을 장치는 없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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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개월의 학대, 법원 "A 씨 뉘우치는 기색 없었다"

공식 확인된 A 씨의 아동학대는 2017년 1월부터 시작됩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A 씨는 2017년 1~3월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을 네 차례 학대했습니다. 얼굴과 목을 멍이 들 정도로 수 차례 때렸고 아이들의 다리를 잡아 들어올려 바닥에 내리치는 등 잔인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폭행으로 인한 부상에 병원에 가야할 만큼 상태가 심각했지만 아이들은 방치됐습니다. 아내는 직접 A 씨를 경찰에 신고합니다.

이후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A 씨는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선명한 멍 자국이 폭력의 흔적을 외쳤지만 A 씨는 어쩐지 당당했습니다. 이에 법원은 양형이유에서 "피고인(A 씨)이 어린 아이들을 폭행·학대하였고 범행을 부인하며 뉘우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도 A 씨 태도에서 재범 위험성을 인지했다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법원은 엄벌을 내리지는 못했습니다. 2018년 4월 17일 인천지법은 A 씨에게 징역 1년과 함께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합니다. 구속 수감되지 않은 겁니다. 관련 전과가 없었고 무엇보다 A 씨 아내가 가정생활을 유지하고 처벌을 바란다는 의견을 존중해 '선처'한 겁니다. 이웃들에 따르면 A 씨는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했고, A 씨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있던 걸로 알려졌습니다. 아내로선 A 씨를 향한 실낱 같은 희망과 경제적 어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처럼 선처를 요구했을 걸로 추정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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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6개월의 분리, 보육원 "지속적인 민원과 난동, 폭력성향 강했다"

경찰 신고 이후 두 아이는 인근 보육원에 맡겨집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A 씨의 폭력성향은 여전했습니다. 보육원에 따르면 A 씨는 수시로 보육원을 찾아왔고 "아이들을 데려가겠다"라며 욕설을 하고 난동을 피웠습니다. 보다 못한 보육원 측에서 경찰에 신고해 A 씨를 달래서 집에 보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보육원 관계자는 "아이들이 보육원에 왔을 때부터 한눈에 봐도 학대 흔적이 뚜렷했다"라며 "A 씨는 '가족인데 왜 못 데려가냐', '아이 엄마가 우울증을 앓고 있으니 데려 가야겠다'고 항의했지만 아이들이 걱정돼 돌려보낼 수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같이 있을 때는 잔인하게 폭행했던 아이들. 떨어져 살면서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결합을 요구했습니다.

법원은 아동학대 행위가 발생한 지 10개월 만인 2018년 1월에서야 '임시보호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16일 인천아동보호전문기관이 신청한 '피해아동보호명령'을 받아들여 공식적으로 A 씨에게 접근과 통신금지 명령을 내립니다. 1년 동안 아이들을 보러 와서도 안되고 연락을 해서도 안된다고 정식 통보한 겁니다.

이후 A 씨의 난동은 잦아들었습니다. 하지만 면회가 가능했던 A 씨 아내가 보육원을 찾을 때면 몰래 동행해 창문 아래에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한다거나, 영상통화를 하는 등 지속적으로 아이들과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A 씨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을 통해 보육원 측에 각종 민원을 넣는 방식으로 간접적인 항의를 지속했습니다.

● 법적 분리 종료…연장 신청은 없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2019년 7월 15일, 법원의 '피해아동보호명령' 기한이 만료됐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A 씨는 보육원을 찾아왔습니다. 아이들을 데려가겠다는 겁니다. 보육원 측으로선 그간 A 씨의 언행을 봤을 때 아이들의 가정 복귀가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할 것 같은 모습을 여러 차례 경험한 만큼 A 씨가 준비됐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던 겁니다.

하지만 이들을 분리할 법적 장치인 '피해아동보호명령'의 연장 신청은 없었습니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51조에 따르면 피해아동보호명령은 최대 4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관할 법원 판사의 직권 또는 피해아동, 법정대리인, 변호사의 청구에 따라 3개월 단위로 할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 애초 피해아동보호명령을 신청한 아동보호전문기관도 '연장'을 신청할 권한은 없는 겁니다. 아이들을 돌봐온 보육원 역시 가정 복귀를 차단할 법적 자격은 없는 셈이죠. 가해자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은 의견을 제시하는 것까지만 가능한 겁니다.
정준호 취재파일_이미지그렇다면 법원과 A 씨의 아내 등은 왜 연장을 하지 않았을까요? 인천가정법원 관계자는 "피해아동보호명령 기간 동안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 쪽에서 A 씨가 법적으로 문제되는 행동을 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없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A 씨는 법적 분리가 이뤄진 기간 동안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관계가 나쁘지 않았던 걸로 전해졌습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A 씨의 폭력성향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었다"라면서도 "보육원에서는 행패를 부렸지만 적어도 우리와의 상담과 교육 과정을 성실히 이행했다"라고 말했습니다.

A 씨는 피해아동보호명령이 시작된 지 8개월 뒤인 올해 4월 처음으로 인천아동보호전문기관을 찾았는데 이 곳에서 종료 시점까지 3개월간 교육과 면담에 적극적으로 응했습니다. 보육원에서와는 다른 행동을 보인 겁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법적 절차를 밟아야 아이들을 데려갈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건지 가정 결합의 의지를 내비쳤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피해아동보호명령 기간 중 아동학대 가해자가 연장을 고려할만한 특이 행동을 있어야 연장 신청 의견을 낼 수 있지만, 3개월간 순한 태도를 보인 점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간 보육원을 찾아와 보였던 난폭한 행동 등을 보다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면 다른 결론을 낼 수 있지 않았나라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입니다. 뾰족한 수가 없던 보육원 측은 가정 복귀 전 A 씨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A 씨와 두 아들들의 면회와 외출을 하도록 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A 씨를 만나고 온 아이들도 "아빠와 함께 집에 가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합니다.

마지막 열쇠를 쥔 건 보육원 퇴소를 결정하는 지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인천 미추홀구청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서면 보고만을 확인한 뒤 보육원 퇴소 결정을 내립니다. 미추홀구청 관계자는 "따로 해당 가정을 면담한 적은 없다"라며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요구로 보육원에 맡겨진 경우에는 기관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퇴소 결정을 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보육원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주 1회 A 씨 가정을 방문한다는 내용의 동의서를 A 씨로부터 받은 뒤 지난 8월 30일 아이들을 돌려 보냈습니다.

● 26일의 재결합, 가정방문 미루는 동안 비극 일어나

퇴소 후 A씨는 어쩐 일인지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접촉을 꺼렸습니다. 가정방문 일정 조율을 위해 4번 이상 전화를 걸었지만 단 한번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통화할 때면 A 씨는 "그 날은 바쁘다", "추석 때 애들이랑 시골에 가야한다"라고 말하는 등 일정을 미뤘습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다시 아이를 가정으로 데려간 뒤에는 간섭을 받고 싶어하지 않아 기관의 연락을 피하는게 다반사"라며 "그렇다고 해도 강제로 가정을 방문할 수단이 없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사후관리는 법적으로도 느슨하게 설계돼 있습니다. 아동복지법 제28조 3항은 보장원(아동권리보장원) 또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가정방문, 전화상담 등을 통해 아동학대의 재발 여부를 확인하도록 돼 있습니다. 이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 보호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거나 방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조항에는 처벌 규정이 없습니다. A 씨처럼 재학대 위험이 높더라도 확인할 수단이 유명무실한 셈입니다. 지자체도 별다른 조치는 없었습니다. 미추홀구청 관계자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측에서 가정환경 조사를 하기 때문에 따로 지자체에서 하지 않는다"라며 "통상 퇴소 이후 가정환경보고서는 연 1회 받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9월25일 아동보호전문기관 측은 어렵사리 A 씨와 전화한 뒤 다음날 다시 일정을 잡기 위해 통화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A 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아이는 의붓아버지 손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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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하면 이번 사건과 관련된 이들 모두 A 씨의 폭력성향을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법의 울타리는 이들의 우려까지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선처를 바란 아내의 요구는 집행유예 판결로 이어졌고, 피해아동보호명령 기간 동안 A 씨의 짧은 자숙은 연장 신청을 망설이게 했습니다. A 씨 핑계로 미뤄진 가정방문은 강제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반복된 아동학대에 대한 형량이 좀 더 강했더라면, 보호명령 기간 전후의 A 씨의 언행을 좀 더 면밀히 조사할 방안이 있었다면, 재결합한 가정을 강제적으로 살필 제도가 있었다면 등 무기력한 가정만 머릿속에서 맴돌 뿐입니다.

최근 5년(2014~2018년)간 아동학대 재학대 건수는 8,562건. 아동학대를 당하는 아이들(8만 7,413건) 10명 중 1명은 가정에서 재학대를 당하고 있습니다. 이 수치는 2014년 1,027건에서 2018년 2,544건 등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만큼 사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지금이라도 세심한 관리체계를 만들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멍 자국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