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강원 산불 때도 '먹통' 된 소방 무전

[취재파일] 강원 산불 때도 '먹통' 된 소방 무전
● "무전기에 목숨을 건다"

"현장에 들어갈 때 항상 무전기를 휴대하고 들어갑니다. 만약에 제가 고립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무전을 통해서 위치를 알려줘야 하고, 어떤 상황에 맞닥뜨렸는지를 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무전기니까, 사실 무전기가 정말 중요합니다."

강원 산불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대원이 전한 말입니다. 소방 무전기는 소방대원이 지휘본부에서 지시를 받고, 다른 대원들과 작전을 공유하고 수행하는 통로입니다. "스마트폰 쓰면 되지 않나? 카카오톡 쓰면 되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현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강원 산불
"전화를 하려면 요새는 버튼이 다 터치식이기 때문에 저희가 장갑을 벗어야 하잖아요? 무전기는 그냥 키(Key) 버튼을 장갑을 낀 상태에서 누르고 송출을 할 수 있지만, 전화로 하려면 장갑도 벗어야 하고, 그러면 또 화염에 노출이 되고요. 당연히 위험하죠."

화마 앞에서 그렇게 소방대원들은 무전기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습니다.

● 강원 산불 현장서 먹통 된 무전기

지난 4월 강원 산불 현장에서 이런 소방 무전기가 곳곳에서 먹통이 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강원도 고성·강릉·동해·인제 소방서의 소방활동 검토회의 보고서를 보면 4개 소방서 모두 강원 산불 현장에서 자주 있었던 '무전 통신 불량'을 문제점으로 꼽았습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 소방대원과 교신이 불가능했고, 지휘본부와의 교신도 어려웠다는 게 공통된 평가입니다. 예비 무전기 부족, 혼선·난청 지역 발생으로 인한 상황통제 어려움도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당시 강원 산불 지역에 투입된 소방관은 "전국 규모의 재난 때 전국망을 쓰면 서로 다 교신이 된다고 얘기는 들었는데 실질적으로는 전국망이 전혀 잡히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또 "계속 전국망을 잡아봤지만 잡히지 않아 휴대전화로 통화하면서 다음 현장이 어딘지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사실 무전 먹통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17년 12월, 29명이 희생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때도 무전기 먹통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당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던 2층 목욕탕에서 신고가 잇따랐지만, 화재 초기 18분 동안 소방 무전에선 잡음 섞인 기계음만 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지휘본부와 현장의 무전이 엇갈리는 사이 구조 골든타임은 날아갔습니다.

제천 화재 참사를 계기로 소방청은 전국의 노후 무전기를 디지털 무전기로 바꾸는 등 개선 작업에 나섰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디지털 무전기 보급률은 96%에 달하는데, 무전기 개선 작업 이후에도 비슷한 문제가 또 불거진 겁니다.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이 이번 무전 먹통의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① '무용지물' 된 전국통합 무전채널
소방청은 강원 산불처럼 전국의 소방관들이 합동작전을 펼쳐야 할 때 쓸 수 있는 '전국통합 무전채널'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자체마다 무전기 세부 환경설정을 다르게 해 놓는 바람에 이번 산불 현장에선 이 통합채널이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전국 단위 대응이 필요할 때 서로 다른 지자체끼리도 통신이 가능하도록 표준화 작업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② 안정화되지 않은 통신프로그램
또 노후 무전기를 디지털 무전기로 바꾸면서 새로 추가된 통신 프로그램도 오류를 일으켰습니다. 무전 통신은 한 명이 교신을 시도하면 다른 사람들은 끼어들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러다 보니 위급한 현장에서 지시를 내려야 하는 지휘관조차 무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소방청은 디지털 무전기에 '지휘관 우선 교신' 기능을 추가했습니다. 소방대원이 무전 교신을 하고 있어도 지휘관은 중간에 끼어들어 지시를 할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강원 산불 현장에서 이 새로운 기능이 오히려 오류를 일으켰습니다. 소방청 관계자는 "지휘관 우선 교신 기능은 정상적으로 설치가 돼 있지만, 안정화가 덜 돼 있던 게 이번 강원 산불 현장에서 발견됐다"고 밝혔습니다.

③ 부족한 중계 장치
무전 통신을 이어주는 중계 장치 부족 문제도 불거졌습니다. 화재 현장과 지휘본부가 교신하려면 '중계 장치'를 통해야 합니다. 중계 장치 범위 안에 있어야 정상적인 교신이 가능하단 겁니다. 하지만 산과 골짜기가 많은 강원 산불 현장 곳곳에서 중계 장치의 통신 범위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곳곳에서 드러났습니다.

● 소방청, 개선 작업 착수…중계 장치 문제는 해결책 없어

취재가 시작되자 소방청은 "전국 단위 재난 때 지자체 사이 무전이 원활하도록 전국 표준화 작업을 다시 지시하고, 지휘관이 아닌 대원의 무전 교신은 최소화하는 지침을 내려, 오는 10월까지 개선 작업을 마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중계 장치 사각지대 문제는 아직 대책이 없는 상황입니다. 현장에 나간 소방차에 '간이 중계기'를 붙여 사각지대를 없애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지만 아직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무선 통신은 국민의 안전뿐만 아니라 소방관의 안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숲을 집어삼키는 불길 앞에서 단 한 줄의 소방호스로 확산을 막아보던 소방관, 강한 바람을 타고 불길이 LPG 충전소를 위협할 때도, 목숨을 걸고 자리를 지켰던 소방관들을 말입니다. 무전이 먹통이 된 상황에서도 산불 조기 진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소방관들의 헌신 덕분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무전기 같은 장비의 안정성과 신뢰도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소방관들을 위해서라도 소방 무전 개선 작업은 미룰 일이 아닙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