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장밋빛 공약'이 남긴 숙제…정부 vs 민주노총 해법은?

장훈경 기자 rock@sbs.co.kr

작성 2019.07.09 08:3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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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장밋빛 공약이 남긴 숙제…정부 vs 민주노총 해법은?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민주노총은 새 정부 개혁 과제로 4대 핵심 의제를 발표했습니다. 최저임금 1만 원 실현, 비정규직 문제 해결, 노조 할 권리·노동3권 보장, 노동시간 단축·일자리 정책입니다. 한국노총이 제시한 10가지 과제 안에도 모두 포함되는 내용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의 노동 정책은 민주노총의 4대 핵심 의제를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의 반발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 거세지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1만 원 실현과 근로시간 단축은 그 취지가 후퇴했고 노조 할 권리를 다룬 ILO 핵심 협약 비준도 미흡하다"고 말합니다. 정부는 아직 비준하지 않은 4개의 핵심 협약 중 3개를 비준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남은 한 개의 비준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김명환 위원장 구속 이후 민주노총의 반발은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표현도 달라졌습니다. 노동 개악을 넘어 이제는 노동을 탄압하는 정부라고 말합니다. 민주노총은 지난주 사상 처음으로 진행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파업을 주도했습니다. 오는 18일에는 전국 단위의 총파업도 예고하고 있습니다.
집회를 열고 비정규직 철폐를 촉구하는 서울지역 공공부문 파업 노동자들 (사진=연합뉴스)● 왜 이 지경까지…장밋빛 공약, 실천은 너무 어려웠다

정부가 내건 공약은 결코 실천이 쉽지 않았습니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노조 할 권리 보장 모두 첨예한 노사 대립이 불가피한 사안이었습니다. 필요한 건 누구나 알지만 정부가 결단을 내린다고 접점을 찾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최저임금 1만 원 실현, 주 52시간 도입, ILO 핵심 협약 비준 추진 등을 두고 출범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논란은 이런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공식 외부 일정인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 또 안전과 생명과 관련된 분야는 반드시 정규직으로 고용돼야 되겠다는 원칙을 확실히 세우겠다"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약속했습니다.

정부가 약속하고 비정규직이 희망한 '제로', 즉 정규직화의 핵심은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입니다. 하지만 과연 어느 정도 수준까지인지를 두고 정부와 비정규직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결국 세금이 들어가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공공기관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면 노조 설립을 통해 형평성을 주장하며 처우 개선에 대한 요구가 거세질 거라고 말합니다. 게다가 기술 발전으로 미래에는 없어질 가능성이 큰 일자리도 있습니다. 정부가 오랜 시간 당사자, 전문가 등 간담회를 통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것도 무턱대고 모두 정규직화를 하는 게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 참가자들 (사진=연합뉴스)● 거의 모든 세력들 반발…모두 만족하긴 어려워

실제 비정규직 '제로' 공약은 거의 모든 세력의 반발에 직면해 있습니다. 먼저 기존 정규직들의 반발입니다. 이들은 비정규직이 어려운 입사 경쟁 대신 손쉽게 자신들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정부가 공공기관이 자회사를 만들어 여기에 기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 것을 추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파업에서 보듯 비정규직은 '자회사 정규직'에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무늬만 정규직일 뿐 실상은 기존처럼 '제2의 용역회사 직원'과 다를 게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공공기관이 직접 고용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반발이 있습니다. 기존 자회사 소속의 정규직들입니다. 이들은 공공기관이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하면 기존 자회사 직원들은 역차별을 받는다고 호소합니다.

공공부문에만 비정규직이 70만 명입니다. 기간제, 무기계약직, 용역, 민간 위탁 등 그 유형도 다양하고 각자 요구사항도 또 다릅니다. 게다가 앞서 봤듯 정규직이나 정규직 준비를 하고 있는 준비생, 기존 자회사 소속 직원들까지 정규직화에 이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처음부터 비정규직 '제로'라는 말 대신 '더 나은 비정규직'이나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지난 22일 열린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의 석방 및 노동탄압 중단 촉구 결의대회 (사진=연합뉴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민주노총

그렇다고 정부의 공약만 문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권 출범 전부터 노정 관계 정상화를 강조했습니다.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는 사회적 대화 기구를 통해 노동 정책을 풀어갈 계획이었습니다. 어쩌면 실행이 불가능한 공약이었을지라도 대화를 통해 양보와 타협을 이룰 수 있다면 공약 실현 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 진일보한 정책 대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출범 직후부터 민주노총은 양보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5개월 뒤인 2017년 10월 24일 사회적 대화 재개를 목표로 노동계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했습니다. 노동계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해외 정상급 외빈이 사용하는 공간 접견실 환담을 마련했습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라는 사회적 대화 체계를 통해 노동계와의 협력을 이루겠다는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회동을 6시간 앞두고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 내부 이견 조율도 어려운 민주노총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불참하면서 정부와의 관계는 급속도로 얼어붙었습니다. 2018년 11월 열린 경사노위 공식 출범식부터 1년 정도 지난 지금까지도 민주노총은 참여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식 출범식에 직접 참석해 "민주노총의 빈자리가 아쉽다"며 사회 변화의 주체로서 걸맞은 책임성을 당부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대화 기구 참여를 두고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지난 1월 민주노총은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집행부는 경사노위에 참여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고 밝혔습니다. 대의원대회를 통해 "경사노위에 참여해서 산업, 재정 운영 정책에 목소리를 내자"고 설득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1월 28일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거센 논의 끝에 경사노위 참여가 무산됐습니다. 내부 강경파의 반대를 집행부가 넘어서지 못한 것입니다.
영장실질 심사 받기 전 노동탄압 중단 촉구 기자회견하는 김명환 민주노총위원장 (사진=연합뉴스)● 18일 총파업…"대정부 투쟁 거세질 것"

민주노총은 공공부문 파업에 이어 오는 18일 전국 단위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마찬가지로 4대 핵심 의제였던 '최저임금 1만 원 실현'과 '근로시간 단축'이 주요 요구 사항입니다. 경기가 좋지 않은 탓에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에 나서는 인상을 보이는 데 대한 반발이 큽니다. 올해 최저임금은 기존 방식대로 결정이 진행 중이지만 결정 구조를 이원화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인상 속도가 늦춰질 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도 근로시간 단축의 취지를 무력화한다고 말합니다. 한국노총은 경사노위에서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이는 근로 시간 단축을 무력화하는 방안이라며 파업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입장입니다. 국회가 정상화되면서 최저임금 결정 구조 개편,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 모두 입법 과정을 거치게 되는 만큼 그전에 18일 총파업을 통해 실력 행사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현재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원하는 정책이 나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경제 사정이 녹록지 않기 때문입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실 유일한 해법은 정부가 공공부문 파업 때도 밝힌 양보와 대화를 통한 타협밖에 없다"면서 "문제는 민주노총이 양보와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처럼 민주노총과의 단절이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과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는 '민주노총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사안입니다. 정부에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