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北 목선' 안이하게 본 靑…'1차장 엄중경고'로 끝?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9.07.07 09:34 수정 2019.07.07 11:1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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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北 목선 안이하게 본 靑…1차장 엄중경고로 끝?
몇 겹의 군경 경계망이 뚫린 삼척항 북한 목선 귀순 사건은 군대 다녀온 남자가 아니더라도 엄중하게 받아들여지는 일입니다. 하지만 정부 조사 결과, 대한민국 안보의 최고 사령탑인 청와대 안보실은 '안이하게' 판단하고 대처했습니다. 청와대의 안보실에 대한 조치는 안보실 1차장 엄중 경고가 전부입니다.

정부는 또 청와대 행정관이 국방부 기자실 백그라운인 브리핑 현장에 잠입해 기자단의 동태를 살핀 유례없고 비일상적인일을 '일상적인 업무 협조'로 규정했습니다. 과거에는 국정원과 기무사가 했던 잘못된 관행인데도 정부 눈에는 정상으로 보이는가 봅니다. 앞으로도 그런 행위를 계속하겠다는 뜻인지 우려됩니다.

여당의 유력 의원은 한술 더 떠 국방장관에게 "군 내에서 언론에 정보를 건네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안보지원사 같은 조직을 동원해 기자를 사찰하라는 건지… 사실, 송영무 전 장관 시절만 해도 국방부 안에서는 종종 있었던 일입니다.

지난 3일 발표된 정부의 북한 목선 삼척항 귀순사건 합동조사 결과는 이처럼 부실했습니다. 이번 사건의 핵심 키워드인 '삼척항 인근'을 빗대 '진실 인근'에도 못 미친 조사였다는 촌평이 국방부 안팎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3일, 북한 목선 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최병환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 뚫리고 또 뚫렸는데 청와대는 안이했다!

안보 관련 중요 사안을 국민들에게 알릴 때, 군은 청와대와 반드시 협의하고 조율한 뒤 발표합니다. 통상 청와대의 의중이 강력히 반영돼서 언론을 통해 내용이 공개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민주주의 민군관계의 작동 원리인 군에 대한 문민통제의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삼척항 귀순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 목선이 어떠한 제지도 안 받고 삼척항 안으로 들어와서 방파제에 접안한 뒤 북한 주민들이 방파제 위로 올라오는 사태까지 발생했지만, 군이 "북한 목선이 표류하다가 '삼척항 인근'에서 발견됐고 경계 작전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축소 발표한 이면에는 청와대 안보실이 있었습니다.

정부 합동조사도 "안보실은 국민이 불안하거나 의혹을 받지 않게 소상히 설명했어야 함에도 경계에 관한 (지난달) 17일 군의 발표 결과가 '해상 경계태세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뉘앙스로 이해될 수 있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안이하게' 판단된 측면이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은폐 의혹을 받는 군의 발표를 청와대 안보실이 관리했을 뿐 아니라 사안을 안이하게 판단했다는 겁니다.

해군과 육군, 해경, 그리고 해양수산청의 감시망 중 어느 하나도 북한 목선을 잡지 못해서 동해 바다가 뻥 뚫린 사건인데 초동급부(樵童汲婦)도 아닌 국가 안보의 사령탑 청와대 안보실이 안이하게 판단한 겁니다. 안보실은 도대체 얼마나 큰 일이 터져야 엄중하게 인식할까요?

이런 안보실에 대한 조치는 1차장에 대한 대통령의 엄중 경고로 끝입니다. 엄중 경고 조치는 말로 한번 꾸짖는 행위입니다. 이번 사건이 꾸지람 한 자락으로 정리할 소소한 일인지 묻고 싶습니다.

국가 안보 최고 기관이 엄중한 안보 사안을 안이하게 봤다면 거기서 끝날 게 아니라, 왜 그랬는지 원인을 따져봤어야 했습니다. 상식적으로도 엄중한 일을 다른 데도 아닌 안보실이 안이하게 인식했다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고는 설명이 안됩니다.

북한 관련 사건을 보는 안보실의 '렌즈' 자체가 잘못됐을 수도 있습니다. 안보 전문성, 식견, 경험도 없이 정권과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안보실 자리를 꿰차고 있는 자들은 없는지도 들여다봐야 합니다. 안보실 1차장 꾸짖고 끝낼 일이 아닙니다.

● 청와대 행정관의 기자단 '염탐'이 일상적?

정부 합동조사는 청와대 행정관이 국방부 브리핑 현장에 몰래 들어간 것을 일상적인 업무 협조의 일환이었다고 규정했습니다. 브리핑을 주관한 국방부 대변인, 합참 공보실장도 청와대 행정관의 기자실 출입 사실을 몰랐는데 일상적인 일이라니요. 군사전문기자 출신의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조차 "청와대 행정관이 기자실 브리핑에 들어왔다는 건 과거에 들어 본 적 없다"고 할 정도의 '사건'입니다.

청와대 행정관은 왜 기자실에 몰래 들어갔을까요? 정부 합동조사는 △브리핑 내용을 기자들이 충분히 이해했는지, △기자들의 관심사항은 무엇인지, △다음 브리핑에서 추가로 설명이 필요한 소요가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방문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해당 브리핑에서 팩트는 축소돼서 발표됐고 청와대 행정관은 기자들이 그런 브리핑을 잘 이해했는지 파악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사실 은폐·거짓말 브리핑'이라고 부르는데 행정관은 기자들이 그런 브리핑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는지 살펴본 겁니다.

대단히 비일상적이고 부적절한 일입니다. 39개 언론사로 구성된 국방부 기자단도 성명을 내서 정부에 항의했습니다. 그런데도 일상적인 업무 협조의 일환이라니 말문이 막힙니다. 일상적인 업무 협조라고 주장하는 걸 보면 청와대는 앞으로도 행정관을 기자실에 잠입시켜 기자들의 동향을 파악할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국정원과 기무사가 하던 일을 청와대가 넘겨받을 태세입니다.

● "언론에 정보 건네는 일 다시 없도록 하라"

지난 3일 정부의 합동조사 결과 발표가 끝난 직후, 국회에서는 국방위 전체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민주당 최재성 의원이 "군 내에서 언론에 계속 정보를 건네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사례가 없었어요", "그런 일 다시 없도록 하세요"라고 말하자 정경두 국방장관은 "작전 보안이 잘 지켜지도록 강조하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귀를 의심케 하는 문답이었습니다. 이번 사건이 공개되는 과정에서 작전 보안, 군사 기밀이 유출된 일은 없었습니다. 경계 실패 사실을 언론에 알린 건 현역 군인이 아니라 삼척항 주민들이었습니다. 청와대 행정관이 기자실에 몰래 들어간 사실이 드러날 때는 현역 군인의 제보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요즘 국회에서는 "청와대 행정관 기사의 제보자를 색출하고 있다"는 말이 나돌기도 합니다.

최재성 의원의 발언은 그런 제보조차 이뤄지지 않도록 군이 조치를 취하라는 뜻입니다. 잘못된 일을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당연하고 의로운 일을 저지하라는 겁니다. 바른 입을 틀어막아서 얻으려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예전에는 종종 있었던 일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송영무 전 국방장관 시절에도 그랬습니다. 정권에 불편한 국방부발 언론 보도가 나오면 기무사가 해당 기자와 친한 현역 군인을 불러들여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신문하곤 했습니다. 이에 기자단이 국방부에 항의한 적도 있습니다. 그즈음 청와대의 한 행정관은 사적인 자리에서 특정 기자를 지목하며 "검경을 동원해 손을 보겠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기무사가 안보지원사로 이름을 바꾼 뒤로 한동안 조용하더니 다시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나요. 정부 합동조사 결과가 의혹 해소는커녕 답답함만 키웠다는 지적들이 많은데, 군 내에서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입막음하는 일이 생길까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