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사형 선고한 법관과 사법살인의 피해자…"인간의 생명은 하나의 우주"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작성 2019.07.04 09:39 수정 2019.07.05 16:3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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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3일, 그때 법정이 선명하다. "항소 기각", 짧은 주문엔 가늠하기 힘든 무게감으로 채워져 있었다. 내가 본 첫 사형 선고였다. 10명의 선량한 생명을 앗아간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얼굴에선 감정 동요를 읽을 수 없었고, A 부장판사는 담담한 목소리로 판결을 읽었다.

사형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에 근거해 성장 과정·직업·지능·가족관계·범행 동기·교육 정도·잔인성 등 강호순의 인생 전체를 살핀 뒤, "극형이 불가피하다"고 결론 내렸다. '정의'의 이름으로 내려진 판결이었고, 기자로서 본 A 판사의 유무죄 판단도 틀리지 않았다. 다만, 기자실에서 읽은 판결문에선 뜻밖의 고민이 읽혔다. 사형 선고를 받은 강호순보다, 사형 선고를 내린 법관에게 시선이 머물렀던 이유였다. A 판사를 직접 찾아가 만났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의 우주"라는 말로 내게 소회를 밝혔던 것으로 기억난다. "개개인은 하나의 우주로서, 전 지구보다 소중했던 선량한 10명의 생명을 빼앗았다." A 판사의 사형 선고 이유였다. 그런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생명은 하나의 우주이고, 지구보다 무거운 것이기에 강호순의 생명을 법의 이름으로 박탈하는 게 옳은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말은 판결문에도 그대로 적혀있었다. '사형을 선고한 이유'가 '사형을 머뭇거린 이유', 어쩌면 그는 모순에 빠진 것이다.

A 판사는 사형 선고를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다. 강간살인· 강도살인·존속살해·사체손괴 등 형법에서 가장 끔찍한 단어로 메꿔진 범죄 사실을 두고 법관이 현행법상 선택 가능한 형벌은 하나. 형법 41조(형벌의 종류) 제일 앞에 있는 사형이었다. 다른 최고 형벌이 존재했다면 법관의 고뇌도, 모순적 상황도 사라질 수 있을까. A 판사의 사무실을 나오면서 내내 고민했다.

● 살인의 도구가 된 사형…헌정 첫 사법살인(司法殺人) 죽산 조봉암

1년 뒤인 2010년 6월, 한 검사와 과거사 사건을 주제로 대화를 하던 중 대법원 캐비닛에서 먼지가 쌓여가는 재심 사건을 들었다. 건국의 주역, 진보당을 창당한 죽산(竹山) 조봉암 선생이었다.
죽산 조봉암 선생 서거 54주기 추모제 (사진=연합뉴스)해방 이후 토지개혁을 추진했던 진보 정치인 죽산의 대중적 인기는 상당했다. 이런 대중적 지지가 죽음으로 내몰린 사유가 됐다. 이승만의 정적 제거 계획으로, 간첩 누명을 쓰고 1959년 7월 31일 사형이 집행됐다. 48년 헌법 제정 이래 첫 사법살인(司法殺人) 피해자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재심이 계류 중인 건 미처 알지 못했다.

2007년 9월 진실화해위에서 결정된 재심 권고로, 죽산의 유족들은 이듬해인 2008년 8월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취재를 시작했던 2010년 6월 기준, 사법부는 2년 가까이 재심 개시 결정조차 내리지 않고 있었다. 빠르면 재심 청구 넉 달 만에도 개시 결정을 내렸는데, 유독 이 사건을 두고 법원은 고심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애써 무관심했다.

죽산 재심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재심은 애초 형을 선고한 원심(原審)에서 하게 돼 있다. 1959년 2월 대법원은 유무죄가 엇갈린 1·2심을 파기하면서도 하급심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대신 직접 판결하는 '파기자판(破棄自判)'을 통해 사형을 선고했다. 특히 같은 해(59년) 7월 30일 대법원은 죽산의 재심 청구마저 기각했고, 18시간 만인 다음날 사형이 집행됐다. 다른 재심 사건이 하급심에서 심리되는 것과 달리, 죽산 재심이 곧장 대법원에 청구된 이유였다. 후배 대법관이 선배 대법관의 오심(誤審), 그것도 돌이킬 수 없는 '사법살인'을 인정해야 하는 구조였다.

대법원은 고의 지연을 택했고, 대검은 몰염치로 답했다. 어렵사리 확보한 대검 의견서에서는, 오판을 오기로써 진실로 만들려는 권력기관의 속성이 드러나 있었다. 대검은 진실화해위의 죽삼 재심 권고를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며 힐난했다. 하급심에서 선고된 다른 재심 무죄를 두곤 "증거와 관계없이 역사적 가치판단을 내리는 진실화해위의 결정을 따르고 있어 심히 우려스럽다"라고 폄훼했다. 은폐된 진실을 규명하고자 법으로 만들어진 진실화해위를 부정해가며 살인의 면죄부를 찾으려 했다.

취재 한 달만인 2010년 7월 1일 이런 내용을 보도했다. 석 달 뒤인 10월 대법원은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고, 이듬해 1월 재심 무죄가 확정했다. 사형 집행 52년 만이었다. 죽산의 딸 조호정 여사는 팔순을 넘어 이미 망구순이었고, 그녀의 청춘도 박탈된 부친의 생명도 되돌릴 수 없었다. 권력기관에 무오류를 기대할 수 없다지만, 오류의 결과는 처참했다. 정의의 이름으로 집행된 '사형'이 반세기가 지나서야 '살인'으로 인정됐는데,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물어야 할까.

● "법대로 사형 집행 좀 합시다"

"사형 집행 좀 하시라." 법무부 국정감사를 7번 지켜보며 반복해 들었지만, 매번 깜짝 놀랐다. 1997년 12월 30일 사형 집행 이후, 지금껏 집행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정치인의 레토릭으로 치부할 순 없었다. 사형수 61명(2018년 기준)은 여전히 남아있고, MB 정부 때 사형 집행을 두 차례 검토했었다는 뒷얘기를 검찰 고위 관계자에게 전해 듣기도 했다.
사형제 논란 (8뉴스 썸네일 재편집)"판사들이 바보라서 사형 판결을 내렸겠느냐(이주영 당시 한나라당 의원)", "사형 여론이 높은데, 국민을 안 섬기는 것이냐(장윤석 당시 한나라당 의원)" 법무장관을 향한 사형 촉구 근거는 다양했지만, 하나로 요약된다. "왜 법을 안 지키느냐(김진태 당시 새누리당 의원)"

사형은 여전히 법으로 남아있기에 유효하다. '사형 방법'은 형법 66조(형무소에서 교수해서 집행), '집행 명령 시기'는 형소법 465조(사형 집행 명령은 판결 확정으로부터 6개월 이내), '집행 기간'은 형소법 466조(법무장관이 사형 집행을 명하면 5일 이내 집행)에 명시돼 있다.

'사형 집행'과 '사형 폐지', 둘 사이 한국은 어중간한 태도를 취했다. '법의 존재는 인정하되, 지키진 않겠다'는 모호함이었다. 사실상 사형제를 방치하는 방식으로 10년이 흘러 2007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됐다. 이후에도 '사형집행 중단 방침'을 공식 선언하지 않은 채 12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어떤 정권이 들어와도 선뜻 사형을 집행하기 어려운 분위기는 조성됐지만, 내일 당장 사형을 집행해도 법상 문제없는 국가인 셈이다.

● "사형제는 폐지해야 합니다"…사라진 '소신'과 '신념'

지난해 여론조사(국가인권위 시민 1천 명 상대 실시)를 보면 79.7%가 사형제 유지에 찬성하고 있다. '사형제 폐지' 소신을 가진 정치인이 침묵을 지키거나, 도리어 사형 집행(또는 폐지 반대)을 요구하는 이유다. 정치인에게 '여론'만큼 두려운 게 없기 때문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을 코앞에 둔 후보자 시절인 2017년 2월 토론회에서 이런 입장을 밝혔다. "사형제는 흉악범 억제 효과가 없다는 게 실증됐다. 사형제는 폐지해야 된다." 진정성을 부인할 여지는 없었다. 인권 문제를 다수결로 접근하면 영원히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소신을 보여준 것이었다. 당선 직후 개헌안에선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했고 '생명권' 조항도 신설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이런 분위기 속에 인권위는 2018년 11월 23일 처음으로 정부(총리실, 법무부, 외교부)에 사형제 폐지 국제규약(자유권 규약 제2선택의정서) 가입을 권고했다. 20년 논란의 종지부를 찍겠다는 확신 끝에 내린 권고였는데, 90일 뒤인 지난 2월 25일, 인권위에 접수된 정부의 공식 답변서엔 '여론', 두 글자가 적혀있었다.

"사형제 폐지는 형사 정책적 기능, 국민 여론, 법 감정 등 종합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즉각 이행하기 어렵다." (총리실, 법무부, 외교부 답변서 中)

사형제를 여론, 즉 다수결로 해결하려는 방식으로 돌아갔다. 사형제 폐지를 정식 공약을 내걸진 않았기에 공약 파기로 볼 수 없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걸 놓쳤다. 그동안 보여줬던 인권에 대한 '소신'과 '신념'은 답변서에서 사라졌다. 인권위는 이런 '불수용 답변서'를 비공개 결정했다. 정부에 부담을 주기 싫었던 걸까, 아니면 정부도 외부로 알려지지 않을 것을 기대했던 걸까. 두 기관의 이해관계는 부합했을 것으로 보인다.

● 0.1% 오판 가능성…누군가에게 살인이 될 수 있는 사형

문재인 정부의 답변대로 국민 여론은 중요하다. 사형 존치 근거 중 경청할 것들도 많다. 사형이 범죄 억지력은커녕, 도리어 더 큰 폭력을 야기한다는 연구 결과를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사형은 잔혹 범죄에 대한 가장 강력한 응징이고, 피해자를 위한 합법적 보복, 즉 응보라는 형벌의 본래 속성에 부합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사형을 '정의 실현'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사형의 본질적 속성이 달라지진 않는다. 생명을 영구 박탈하는 극단성과 잔인성, 비인간적 형벌이라는 사실엔 변함없다.

사형제 폐지를 추진하는 인권위를 향해 일부 시민은 "네 가족이 피해자가 되길 바란다"며 거친 언사를 쏟아내지만, 이는 '생명을 생명으로 갚아라'는 말일 뿐이다. 피해자의 권리와 분노는 보장해야 하지만, 칼로 찌른 범죄자에게 칼에 찔리는 형벌을 내리는 게 정의의 회복은 아니다. 교통사고를 낸 당신에게 '똑같은 사고를 당하라'고 제안한다면, 받아들이겠는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同害報復)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도 부합되지 않고, 우리 사회는 잔인함의 순환 반복으로 유지될 수도 없다.

보복 감정을 충족시키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런 필요성이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형벌'의 위험성을 희석 시키진 못 한다. 첨단 수사, 고도화된 입증으로 오판 가능성이 0.1%에 불과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사형은 살인이 될 수 있다. 다수결로 대변되는 여론을 사형 존치의 주요 근거로 삼는 것이 위험한 이유다. 게다가 지난해 인권위 여론조사에서 79.9%(매우 많다 9.5%, 약간 있다 70.4%)는 "사형 선고에 오판 가능성이 있다"고도 응답하기도 했다.
국회● 나만 오판 피해자가 아니면 된다?…20대 국회에만 없는 '사형제 폐지법'

시민들이 오판 가능성을 높게 보면서도, 사형제 존치에 압도적 지지를 하는 본질적 이유는 뭘까. "나만 오판의 피해자가 아니면 된다"라는 이기심이 아니다. 핵심은 범죄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강렬한 바람이다. 가석방이 불가능한 '절대적 종신형' 같은 대체형벌을 전제할 경우 사형제 폐지 찬성 의견이 66.9%로 높아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그동안 손쉬운 방법을 고집했다. 범죄 위협으로부터 사회를 지키는 더 효과적인 방법과 인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생략했다. 시민들에게 사형의 실체, 위험성, 후과(後果)는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은 복잡하고, 설득은 까다롭다고 여겼을 것이다. '다수의 찬성'에 의존해 사형제에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침묵을 지키는 길을 택했고, 이번 정부도 다르지 않은 선택을 했다.

그렇다고 정치권의 움직임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사형제 폐지 법안은 15대~19대 국회에서 7차례 발의됐다. 다만, 법안 모두 소위에서조차 심사된 적 없이 그대로 폐기됐다. 2015년 유인태 전 민주당 의원이 과반 이상인 171명의 동의를 얻어 발의한 법안도 마찬가지였다. 20대 국회에선 금태섭 민주당 의원이 낸 '사형제 폐지 국제규약 가입 촉구 결의안'이 전부일 뿐, 폐지 법안은 아직도 없다. 내년 4월로 예정된 총선, '다음 세대'보다 '다음 선거'를 중시 여기는 20대 국회에서 사형제 폐지 법안을 찾아보긴 어려울 전망이다.

● 사형을 선고했던 법관, 사형으로 살인 당한 피해자…그들의 바람

국가인권위는 연내 재차 정부에 '사형제 폐지 권고'를 할 계획이다. 정부는 답변서에서 '폐지'라는 단어로 국민 설득에 나설 수 있을까. A 부장판사와 죽산의 딸 조호정 여사가 기억난다.

지난 2011년 1월 20일, 죽산 조봉암 선생의 재심 무죄가 선고된 그 날, 조호정 여사를 만났다. 그녀에게 있어 '무죄 확인'은 곧 '살인의 피해자로 확인'받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사형제를 살인 도구로 활용한 이들에게 똑같이 사형을 요구한다면… 그녀의 입만 쳐다봤다. 조 여사는 울지 않고 웃었다. "세상이 많이 변했네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녀는 담담하게 부친의 묘소로 향했다.

2009년 7월 23일 강호순에게 사형을 선고한 A 부장판사는 몇 주 뒤, 강호순에게 사형 확정판결을 내린 판사가 됐다. 검사도, 강호순도 상고를 하지 않아 항소심이 그대로 확정된 것이었다. 그런 그를 몇 년 뒤 TV에서 봤다. '이성호 국가인권위 위원장', 30년 법관 생활을 마무리하고 인권위로 옮긴 것이었다. 사형제에 깊이 고뇌했던 그는 판결문에 또박또박 썼던 "인간의 생명은 하나의 우주"라는 글귀를 세상 밖으로 꺼냈고, 위원장 재직 시절 사형제 폐지에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