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외교부 출장 가신다더니…어디 갔다오셨어요?

구청 여권과, 1년에 700번 외교부 출장…외교부 "자주 올 일 없다"

이세영 기자 230@sbs.co.kr

작성 2019.07.04 09:09 수정 2019.07.04 14:0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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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외교부 출장 가신다더니…어디 갔다오셨어요?
● 내근 부서인데 1년에 1천700번 출장?

서울시 25개 구청 공무원들의 지난해 출장 및 시간 외 근무 신청 내역, 전자 문서 사용 내역을 입수했습니다. 파일 용량이 1 기가 바이트 넘습니다. 우선 출장 신청 내역부터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분석하던 중에 특이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내근이 잦은 부서, 단순 창구 업무를 주로 하는 '민원 여권과' 출장이 잦은 겁니다. 현재 공무원 출장비는 4시간 이상 2만 원, 4시간 미만 1만 원입니다. 지난해 노원구 민원 여권과 1인당 월평균 출장비는 26만 원이었습니다. 교통 지도과가 29만 원, 건설 관리과는 25만 원 정돕니다.
구청 여권과의 수상한 '외교부' 출장● 행선지 1위는 '외교부'…786 차례 출장

노원구청 여권팀 14명은 지난해 1천7백여 차례 출장을 다녀왔는데, 행선지 1위는 서울 도심, 광화문에 있는 '외교부'입니다. 모두 786차례로, 여기에 들어간 출장비가 1천500만 원에 달합니다. 786 차례 중에 두 차례만 1시간, 3시간 50분 출장을 다녀왔다고 돼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4시간으로 적혀있었습니다. 외교부에서 여권 발급을 하니,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출장 가는 게 이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왜 이렇게 자주 가야 하는지에 대해선, 궁금해졌습니다. 외교부에 물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 한마디로 "자주 안 온다"였습니다.
이세영 취재파일용물론 출장 갈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외교부 관계자 : 교육에 참석하기 위해서 올 일이 있습니다. 자주 있진 않고요. 1년에 열 차례 정도 됩니다.]

통상 초급자가 교육을 받는다는 점, 10번의 교육을 매번 가야 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한번 갈 때 구청 공무원 한 명, 많아도 두 명 정도가 가는 걸 생각해보면, 7백 번 넘게 외교부에 갔다는 노원구청 말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노원구청을 찾아갔습니다.

● "외교부라 적고 다른 데 출장 갔습니다."

노원구청 해명은 황당했습니다.

[노원구청 관계자: 외교부 업무 차 간다 그래 놓고 관내 출장 가는 경우가 많이 있거든요.
저희는 행선지를 외교부로 달았지만 외교부에 안 갔다 하더라도 구정 업무 하러 출장 간 건 맞습니다... 그 부분은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행선지는 허위로 적었지만, 일단 그 시간에 다른데 출장을 간 건 맞다는 겁니다. 그럼 그 시간에 어디로 출장을 간 거냐는 물음엔 이렇게 답했습니다.

[노원구청 관계자: 내근 부서는 사실상 외근 갈 일이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그런데 이제 협업, 옆 구청에서 산길 걷기라든지 큰 행사 있잖아요. 그럼 우리가 차출되는 거죠. 그런 것과 보통 우리는 사진관 많이 가서 (바뀐 여권 사진 규격) 홍보합니다.]

산길 걷기 행사는 여권 업무와는 전혀 무관해 보이지만, 사진관에 찾아가 여권 관련 안내를 한다는 건 그래도 업무 연관성이 있어 보입니다. 구청에서 나왔더니 바로 길 건너편에 사진관이 있어서 실제 구청 공무원들이 홍보 활동을 하는지 물어봤습니다.

[기자 : (사진관에 붙어있는 여권 사진 규격 안내문을 보고) 이게 구청에서 붙여준 건가요?]
[사진관 : 아니요.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하여서 인쇄한 거예요.]
[기자 : 구청에서도 나와서 안내를 하나요?]
[사진관 : 구청 사람들은 안 나와요. 굳이 그걸 여기서 직원들이 나와서 안내하거나 그러진 않죠.]

물론 여권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구청 바로 앞 사진관들을 두고, 멀리 떨어진 사진관에 가서 홍보를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쨌든, 구청 1분 거리 30년 업력 사진관 사장님은, 단 한 번도 못 봤다고 합니다.

● "음료수 갖다 주러 출장"?

수상한 '외교부' 출장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외교부에서 500m 거리,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외교부에 지난해 598번 '출장'을 다녀갔다는 종로구청. "주로 민원을 해결하러 갔다"라고 합니다. 5분 거리인데, 해결하는 데 3~4시간이 걸리는 일들은 어떤 게 있냐는 물음엔 답하지 않았습니다. 외교부에서도, 500번이 넘는다면 근거가 부족해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엔 66차례 다녀갔다는 강북구청. 역시 전화나, 공문을 통하지 않고 꼭 갔다 와야 할 일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엔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합니다. 다만 이런 사례를 들었습니다.

[강북구청 관계자 : 저희가 일을 잘못했는데, 외교부에서 주말에 나와서 일하고 이런 경우에, 보통 감사 차원에서 음료수 사서 간 적도 있고 합니다. 일단은 자리를 비우게 되면 출장을 올려야 하니까...]

● '0'회부터 '786'회까지…천차만별 출장 횟수

여러분들은 이 해명이 납득 가시나요? 구청 여권과 출장비에 들어가는 예산 가운데 일부는 국고 보조금입니다. 여권 사무를 대행해주는 대가로 외교부가 여권과에 예산을 지원해주고 있는 겁니다. 구청과 같은 여권사무대행기관은 전국에 240곳, 한 해 지원 보조금은 56억 원입니다. 하루에 많아야 2만 원의 출장비, 적은 액수라고 느끼실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허투루 써도 되는 돈은 아닙니다.

정작 외교부에서는 온 적 없다는 수상한 외교부 출장. 얼마나 되는지 서울시 25개 구를 분석해봤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노원구청, 종로구청은 수백 번이 넘고요, 용산도 120여 회, 강북과 은평도 수십 번이 넘었습니다. 반면, 구로나 도봉처럼 아예 외교부 출장을 안 간 곳도 있습니다. 동작구, 관악구 등은 비공개라며 아예 출장 목적조차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세영 취재파일용이세영 취재파일용이세영 취재파일용● 'CTRL+ C, CTRL +V' 출장 기록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요? 취재진이 입수한 출장 신청 기록만 봐도 답이 나옵니다. 마치 복사, 붙여 넣기를 한 듯 업무에는 '여권 관련 업무'로만 돼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는지는 전혀 적혀있지 않습니다. 출장 후에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습니다. 교통비와 같은 근거가 되는 영수증을 제출할 필요도 없습니다. 출장을 실제로 다녀왔는지, 사전 신청, 사후 검증 시스템 모두 부실합니다. 전문가들은, 방문 기관에서도 출장자에 대한 기록을 남겨 이중 체크가 가능하도록 하고, 또 출장이 필요한 업무와 필요하지 않은 업무를 분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 외교부 " '보조금 회수' 명령…전수조사"

문제가 되자 외교부는 자체 조사를 통해 노원구청에 대해 보조금 회수를 명령했습니다. 현재 전수조사 하고 있는데, 노원구청 외에도, 또 다른 구청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확인하고 지급 보조금 회수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부정 출장 행태,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감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더 이상은, 비슷한 소식을 전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도 계속 지켜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