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어린이 통학차량…검은 공간의 공포 없애려면

정준호 기자 junhoj@sbs.co.kr

작성 2019.06.12 17:3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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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번 휴대폰을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2015년 10월 새벽. 회식을 마치고 탄 택시 안에 두고 내린 겁니다. 늘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넣어 두던 것이 어느 새 빠졌고, 알아챈 뒤에는 택시가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손실은 엄청났습니다. 휴대폰을 달고 사는 직업 특성상 아침 보고와 취재를 제대로 할 수 없어 쓴 소리를 들어야 했고 사진, 연락처 등 보관했던 자료도 상당수 잃었습니다. 할부기간이 1년 반 넘게 남아 있어 새 폰을 사면서 들인 비용도 만만치 않았죠. 하차 직전 그저 주머니를 한 번만 만져 봤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죠.

● 한 번의 무관심, 검은 공포로

잃어버린 휴대폰이야 다시 사면 그만이지만 단 한번의 부주의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큰 충격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SBS는 지난 2일 7살 아이가 서울 양천구의 한 태권도장 통학 차량에 50분간 갇혀 있던 사고를 보도했습니다.

▶[8뉴스] [단독] 계속 두드렸는데…車에 갇힌 7살 '공포의 50분' (2019.06.02)

당시 운전을 하고 직접 아이들을 하차 시켰던 태권도장 관장은 아이 한 명이 내리지 못했는데도 그대로 차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아이가 차량 유리를 손으로 두드리고 도와달라고 외쳤지만 듣는 이는 없었습니다. 심지어 관장과 지인이 차 앞에서 3분간 대화를 나눴음에도 바로 뒤 차 안에 갇힌 아이를 인지하지 못한 겁니다.
어린이집 차 태권도장 차량 갇힌 7살외부에서 내부를 잘 볼 수 없게 처리(윈도 틴팅) 된 검은 공간. 28도의 매정한 날씨는 좁은 내부를 달구며 갇힌 아이의 공포를 더했습니다. 아이는 무려 50분동안 숨막히는 고립감에 고통 받고 나서야 차량 옆을 지나던 한 행인에 의해 발견돼 가까스로 구조됐습니다. 땀과 눈물로 범벅 된 채 나온 아이는 당시 충격으로 지금도 심리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크지도 않은 차에서 왜 이런 사고가 일어날 까요. 당시 안에 타고 있던 아이들은 단 9명. 3열 시트, 차량 길이(전장) 5m에 불과한 승합차는 내부를 직접 확인하는 데 '5초'면 넉넉해 보입니다. 하지만 CCTV 영상을 보면 관장은 문을 닫기 전 차에 올라타거나 고개를 넣고 들여다 보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모두 내렸다고 생각이 든 순간부터는 차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가지 않게 된 겁니다. 습관이 들지 않는 이상 실수는 홀린 듯 찾아 오기 마련입니다.

● 불완전한 인간, 불완전한 해법

불완전한 인간의 실수를 없애려고 최근 도입된 기계가 하차 확인벨(슬리핑 차일드 체크)입니다. 지난 4월 17일부터 어린이 통학차량에는 설치가 의무화 됐습니다. 5월말까지 계도기간을 거친 현재는 경찰이 집중 단속에 나설 만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작동방식은 단순합니다. 벨은 차량 내부 뒤쪽에 위치해 있는데 시동을 끄고 3분 안에 누르지 않으면 소리가 납니다. 조그만 체구의 아이들이 잠시 졸거나, 시트 밑으로 숨는 장난을 치더라도 벨을 누르러 가는 사이 자연스럽게 모든 아이들의 하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겁니다. 사고가 난 태권도장 통학차량은 뒤늦게 장착하긴 했지만 사고 당시에는 이 벨이 없었습니다.
통학차량 승하차 확인 장치 집중단속하지만 장착 의무만으로는 부족해 보입니다. 벨을 누르지 않았을 때 나는 소리가 크다 보니 벌써부터 소음 민원을 의식하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운전석에서 벨을 누를 수 있게 개조하는 꼼수가 활개 치고 있습니다. 불법 개조는 징역 1년 이하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집니다. 아이들의 생명을 보장하기 위한 5초가 이들에겐 왜 이리도 귀찮은 걸까요.

감시 당국의 행정력도 크게 기대를 걸긴 어렵습니다. 일시적인 경찰 단속으로 모든 통학 차량을 들여다 보기란 사실상 어렵습니다. 하차 확인벨 설치는 의무지만 따로 경찰이나 지자체에 신고를 하진 않습니다. 하차벨 미설치 시 과태료 3만원,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시 범칙금 13만원(11인승 이상 승합차 기준)일만큼 처벌은 미약합니다. 여기에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는 일부 학원들이 언제 장착을 완료할 지 장담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논의할 부분은 더 있습니다. 현행법상 어린이 통학 차량에 대한 썬팅 규제가 마땅치 않습니다. 때문에 햇볕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내부가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까맣게 썬팅을 한다거나, 홍보를 위해 광고문구, 그림 등으로 차를 도배한 차량도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뉴스에 담진 않았지만 이번 사고의 CCTV 화면 중간에는 한 아이가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을 눈치 채고 차량 내부를 들여다 보는 장면이 찍혔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잘 보이지 않는지 이내 자신을 데리러 온 부모의 차를 타고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아이가 사람이 지날 때마다 자리를 옮겨가며 창문을 두드려도 관심을 받지 못한 것도 진한 썬팅 때문입니다.

그밖에 통학 버스에는 운전자 외 보호자가 반드시 탑승해야 할 의무(도로교통법 53조)가 있는데도 비용 문제로 보호자를 구하기 어렵다고 호소하는 업체가 여전히 많습니다. 아이들 신체에 맞지 않는 안전띠 문제도 늘 입방아에 오르고 있죠. 여러모로 어린이 통학버스의 사고 예방에는 구멍이 많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어린이 통학용 차량● 온 마을이 필요한 사고 예방

결국 사고를 막기 위해서 '온 사회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보도 뒤 지난 열흘간 전국의 맘카페를 포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제는 지나가면서 노란 차량을 보면 확인해야겠다"는 반응이 상당했습니다. 이번 사고의 피해 아동이 구조될 수 있었던 것도 순간적으로 차량 내부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했던 행인의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예 일부 부모들은 "웬만하면 통학도 직접 시킬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정부나 아이를 맡기는 기관에 100%의 신뢰를 보낼 수 없는 만큼 직접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해 보자는 움직임입니다. 학원이나 어린이집에 직접 연락해 하차벨과 동승 보호자 여부를 확인했다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또 아이들에게 차 안에서 갇혔을 때 운전석의 클랙슨(경적)을 울릴 수 있도록 교육하자는 의견도 상당했습니다. 팔과 다리에 힘이 부족한 아이들이 엉덩이로 경적을 울릴 수 있도록 수시로 알려 주자는 겁니다. 종합하면 하차 확인벨 설치, 주차된 차량 다시 보기 등 어른들의 관심부터 아이들의 대처까지 여러 단계에 걸쳐 안전 장치를 마련해 끔찍한 사고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게 이번 사고가 일깨워준 교훈입니다.

휴대폰을 분실한 뒤 저는 버스나 택시에서 내릴 때마다 항상 주머니를 만지고, 앉았던 자리를 확인합니다. 저만의 작은 행동 원칙이지만 최근 귀중품을 잃어버린 적이 없을 만큼 효과가 좋습니다. 이번 사고를 보도한 뒤에는 주차된 노란색 차량을 보면 한번씩 멈춰 서 보곤 합니다. 이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더군요. 단 한 명의 아이도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쉽지만 작은 습관을 제대로 들일 때입니다. 특히 어른들은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