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미국의 '타이완' 국가 표기, 강 건너 불이 아닌 이유

손석민 기자 hermes@sbs.co.kr

작성 2019.06.10 10:10 수정 2019.06.10 11:3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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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국의 '타이완' 국가 표기, 강 건너 불이 아닌 이유미 국방부가 지난 1일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를 펴냈습니다. 이 보고서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37만여 명의 미군에게 전략 지침으로 쓰입니다. 미 국방부는 보고서를 통해 이 지역에서 미군에 위협이 되는 국가들을 적시한 뒤 그들에 맞서기 위한 미국의 동맹국, 그리고 전략적 파트너 국가들을 하나씩 열거하면서 대응 방안을 담았습니다.
[취재파일] 미국의 '타이완' 국가 표기, 강 건너 불이 아닌 이유예상됐던 대로 미국을 위협하는 세력으로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이 꼽혔습니다. 특히 중국은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도전하는 '수정주의 국가(revisionist)'이자,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의 자유 무역과 항행을 억압하는 국가로 규정됐습니다. 이렇게 중국을 겨냥한 보고서에서 정작 눈길을 끈 대목은 중국 바로 옆에 위치한 '타이완'(Taiwan, 1949년 중국 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섬으로 옮겨갔죠. 중화민국으로도 불렸습니다)이 미국의 '파트너 국가(partner country)'로 표기된 점이었습니다.
미 국방부 공식문서, 타이완 '국가'로 지칭미 국방부는 보고서 가운데 '파트너십 강화' 단락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신뢰할 수 있고 유능한 파트너로 싱가포르와 타이완, 뉴질랜드, 몽골을 적시했습니다. 모두 중국 주변에 있는 나라들입니다. "네 나라(all four countries)는 전 세계에서 미국이 수행하는 임무에 기여하고, 자유롭고 열린 국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부연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타이완이 자주국방 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군사 물자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중국을 견제할 지역 내 협력 국가에 타이완을 포함시키고, 미국산 무기 제공까지 거론한 것입니다.

왜 타이완을 국가로 표기한 게 눈길을 끌까, 그 이유는 중국과 타이완의 관계에 있습니다. 중국은 건국 이래 지금까지 타이완을 중국에 속한 하나의 지방으로 간주하고, 이를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으로 천명해왔습니다. 미국 정부도 지난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고 타이완과는 국교를 끊었습니다. 그런 미국이 정부 공식 문서를 통해 중국이 극도로 예민해하는 타이완 문제를 건드린 겁니다.
미 국방부 공식문서, 타이완 '국가'로 지칭중국이 타이완 문제에 얼마나 예민해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지난해 4월 중국 민항총국은 자국에 취항 중인 44개 외국 항공사(한국 항공사도 포함됐습니다)에 '타이완과 홍콩, 마카오, 티베트를 중국과 별개의 국가로 인식되도록 표기하지 말라'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공문을 받은 항공사들은 대부분 이를 준수해왔는데요, 그러다 지난 2월 사단이 났습니다. 상하이에 내리려던 뉴질랜드항공 소속 여객기가 착륙을 거부당한 채 뉴질랜드로 되돌아간 겁니다. 뉴질랜드 언론은 이 항공사가 착륙허가 신청 서류에 타이완을 단독으로 표기한 걸 중국이 문제 삼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국 특유의 '뒤끝'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었습니다.

"미 국방부가 타이완을 별도로 떼내 국가로 지칭한 게 아니고, 네 나라를 묶다 보니 국가란 표현을 쓴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트럼프 행정부의 그간 행적으로 보면 의도적인 자극으로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중국에 보란 듯이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과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타이완 총통과의 통화는 지난 79년 국교 단절 이후 처음이라고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지난해 3월에는 미 정부 관료들과 군 지휘관들이 타이완을 방문해 교류할 수 있도록 한 '타이완 여행법'에 서명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이런 저간의 일들을 단편적으로 볼 수 없는 이유, 재작년 12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지난 1일 국방부 보고서가 인용한 대로) '수정주의 국가'로 지칭하며, "경제를 덜 자유롭게 만들고 군사력을 강화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중국을 더 커지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이 전략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중국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중국 관영 언론에서 미국과 일전 불사 가능성을 언급했고, 실제로 관세 폭탄을 동반한 양국 간 무역 전쟁은 지금까지도 악화일로에 있습니다.

미국이 공식 문서에 타이완을 국가로 지칭하며 중국과의 갈등을 키워나가는 것은 필연적으로 한국에게는 더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타이완까지 포함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우리 정부가 어디까지 관여할지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중국 거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관련해 미·중은 한국에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선택하라고 떠밀고 있습니다. 경제와 군사 분야까지 망라하는 미·중 간 갈등은 지난 20세기 미국과 소련 간 냉전을 방불케 할 정도의 패권 대결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이달 말 트럼프 대통령 방한에서 미국이 북한보다는 중국 문제를 우선 의제로 들고 나올 가능성에도 대비가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