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북적] 이렇게 죽긴 너무 아까워요…김탁환 〈살아야겠다〉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19.06.02 07:4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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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192 : 이렇게 죽긴 너무 아까워요…김탁환 <살아야겠다>

"삶과 죽음을 재수나 운에 맡겨선 안 된다. 그 전염병에 안 걸렸기 때문에, 그 배를 타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행운'은 얼마나 허약하고 어리석은가. 게다가 도탄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배제하려 든다면, 그것은 공동체가 아니다."

4년 전 오늘, 6월 2일에 여러분은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계셨나요? 저는 당시 사회부에서 보건복지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였고 이날은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 첫 환자가 확인된 지 2주 정도 지나 메르스로 인한 사망자 2명이 나왔다고 발표된 날이었습니다. 당시 기록을 찾아보니 저는 이날 새벽 4시쯤 출근해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측으로부터 사망자 소식을 취재해 아침 뉴스 기사를 썼습니다. 메르스 확진자는 이때까지 25명이었는데, 최종 확인된 메르스 감염자는 186명, 이중 38명이 숨졌습니다. 2015년 12월 24일 보건복지부는 메르스 종식 선언했습니다. 마지막 환자의 사망 이후 메르스 잠복기인 14일의 2배, 28일이 지난 뒤입니다.

이렇게만 보면 참 건조합니다만, 당시 미지의 감염병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전국을 지배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신종 감염병이 창궐했고 단지 환자와 같은 공간에 잠시 머물렀다는 이유로 감염된 데다 2차, 3차 감염까지 발생했으며 병원에서 더 치명적인 병에 감염되는 기막힌 상황. 게다가 국내 최고의 병원으로 꼽히는 곳에서 가장 많은 환자가 발생했다는 아이러니까지. 거기에 피해자면서도 죄인처럼, 가해자 취급을 받았던 환자들...

취재 중 삼성서울병원에 들렀을 때 그 썰렁함에 잠시 아찔했던 기억도 납니다. 언제나 환자와 방문객, 직원들로 북적이던 병원 로비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텅 비어 있고 뭔지 모를 살풍경함에 너무나 낯설고 괴이했던 그 광경. 그렇게 메르스를 떠올리면 여러모로 씁쓸하고 안타깝고 아쉽고 그랬습니다. 한 발짝 떨어져 취재하고 기사 쓰던 저도 그랬는데 자신이, 가족이, 친지가 감염됐거나 감염이 의심돼 격리됐거나, 희생됐던 이들은 어떠했을까요.

맨 첫머리에 읽은 건 이 소설의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 중 한 대목입니다. 경제적 손실이나 성공 가능성 등을 이유로 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그런 공동체… 언제쯤이면 가능할까요. <거짓말이다>에 이어 당대 벌어진 현실을 정면으로 다룬 사회파 소설, 환자와 가족의 관점에서 들여다본 메르스 사태, 김탁환 작가의 <살아야겠다>가 오늘 읽는 책입니다.

이 소설 주인공은 3명입니다. 모두 메르스에 감염돼 투병하는 데 이들은 같은 날 같은 병원 응급실에 들렀다가 감염됐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 명은 치과의사면서 림프종 환자, 또 한 명은 출판사 직원, 그리고 방송사 수습기자.

"국민들은 19일이나 병원 명단을 감춘 정부를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부가 알파벳으로만 밝힌 병원 실명을 여러 경로로 추적하여 알아냈다. 아무도 믿지 않고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정부와 병원과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깨진 자리에 어울리는 사자성어가 유행했다. 각자도생各自圖生."

"우람 어머니! 당분간 우람이는 저희 어린이집에서 돌보지 못하겠어요... 어린이집 학부모님들이 걱정이 많으세요. 어쨌든 우람 아버님이 확진 환자로 격리병실에서 지금도 치료받고 계시잖아요?... 압니다. 우람이는 감염되지 않았죠. 하지만 학부모님들이 그사이 거듭 저와 교사들에게 우려를 표시하셨어요."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인간으로 죽게 해 줘. 인간을 개나 돼지나 박쥐나 메뚜기나 바이러스 덩어리로 죽이는 곳이 바로 지옥이지. 이승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승에서 작별할 시간을 줘.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한 채, 전염병에 걸려 죽은 기억만 심어 주려는 이곳이 바로 지옥이지. 지옥, 이런 결말 자체가 지옥이라고."

"메르스에 걸린 것은 최악의 불행이지만, 이제부턴 좋은 일만 벌어지리라 믿었다. 섣부른 추측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기까진 두 달이 더 지나야만 했다."


7월 이후 추가 확진자나 사망자가 더 나오지 않으면서 언론이나 국민의 관심도 확 줄었습니다. 소설은 그러나 그 이후에 더 집중합니다. 7월 28일 메르스의 사실상 종식, 12월 24일 메르스의 공식 종결. 그 사이에 마지막 환자로 남아있던 단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내 남편은 메르스 때문에 격리되어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맛보고 있는데, 정부는 이제 메르스란 단어를 지우려 드는구나. 우리 가족에게 닥친 불행과 고통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왜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지 밝히지도 않고, 그냥 종식이라고? 내 남편을 풀어 주지도 않고 이대로 끝이라고?"

"살아야겠다, 그 마음뿐이에요. 아무리 곱씹어 봐도 이렇게 죽긴 너무 아까워요."


김탁환 작가는 이 이야기를 르포로 담아내기엔 한계가 있어 소설로 썼다고 합니다. <거짓말이다>나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를 읽을 때도 느꼈지만 작가의 성실하고 꼼꼼한 취재 덕분에 메르스 당시의 상황, 그리고 그 이후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 취급을 받아버린 이들의 아픔과 고초가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작년 9월 메르스가 3년 만에 다시 발병했을 때는 2015년의 아픔을 겪은 이후라서인지 초동 대처와 방역에 성공했습니다. 우리 사회도 말하자면 한 걸음 나아간 거겠죠. 하지만 피해자에 대한 우리의 시선, 그를 배제하고 어쩌면 비난하기까지 하는, 냉랭한 그 시선의 온도는 조금이라도 올라갔을까요. 우리 사회는 경제적 손실이나 성공 가능성 등을 이유로 한 사람을 포기하는 공동체인가요, 아니면 포기하지 않는 공동체일까요.

* 출판사 북스피어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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