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윤석열 협박한 유튜버, 5·18 유공자도 왜곡 주장

박세용 기자 psy05@sbs.co.kr

작성 2019.05.08 17:35 수정 2019.05.08 17:5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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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사장 협박한 유투버
▲ 윤석열 검사장 협박한 유투버

다시 5월입니다. 5·18 민주화운동 39주년입니다. 5·18 민주유공자에 대한 근거 없는 주장은 올해도 어김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광주에서는 몇 달째 계속되어 온 집회가 있습니다. 이 집회는 몇몇 보수단체 중심으로 진행돼 왔습니다. 그 보수단체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유튜브 개인방송을 통해 윤석열 서울 중앙지검장에게 협박성 발언을 한 남성입니다. 검찰 소환 조사를 통보받은 날, 그는 검찰 앞에서 조사를 거부하며 집회를 열었습니다. 그는 유튜브 중계는 웃자고 한 일이었으며, 공포심을 느꼈다면, 남자로서 사과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광주 집회를 주최한 보수단체는 '5·18 민주유공자'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가짜가 많다는 겁니다. 유튜버 김 모 씨는 "5·18 유공자 5,800여 명 중에 약 3천여 명은 가짜로 판명이 되고 있다. 유공자 명단과 그 공적조서를 공개하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5·18 민주화운동 40년이 되어 가고 있는데, 아직도 유공자가 매년 100여 명씩 나온다, 그 유공자 선정 절차를 공개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5·18 유공자가 5,800명?

일단 이 숫자부터 사실이 아닙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 현재 5·18 민주유공자 숫자는 4,415명입니다. 5,800명이라는 숫자는 유공자 숫자가 아니고, 광주광역시가 지난 29년간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5·18 보상법)에 근거해 보상을 해준 사람의 숫자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보상'과 '유공자'가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이 숫자가 잘못됐다는 걸 알아채기가 쉽지 않습니다.

약 3천여 명이 가짜 유공자로 판명되고 있다는 주장도 근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보수단체 집회에서는 5·18 40년 가까이 됐는데, 사망자와 부상자를 모두 합쳐도 1천 명이 채 안 된다, 그런데 유공자가 훨씬 많으니까, 나머지는 가짜 아니냐는 취지의 얘기가 단골로 나옵니다. 하지만 현행법에 따르면, 5·18 민주화운동 당시 숨졌거나 다친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도 보상을 받고 유공자로 등록할 수 있습니다. 5·18 유공자 숫자가, 5·18 당시 사망자와 부상자를 합친 숫자보다 많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5·18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국가유공자도 마찬가지입니다.

● 1990년 5·18 가짜 유공자 무더기 적발?

보수단체 집회에서 이런 말도 나왔습니다. 1990년 기록에 따르면, 5·18 가짜 유공자들이 무더기로 드러났다는 겁니다. 이것도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보상자'와 '유공자'를 구분하지 않은, 사실과 다른 발언입니다. 취재진이 광주광역시에 확인한 결과, 과거 2000년 광주지방검찰청이 허위의 공적으로 광주시로부터 보상을 받은 사람 21명을 적발한 것은 사실입니다. 또 1999년 이전에도 8명이 허위의 공적으로 부당한 보상을 받은 적이 있다고, 광주시는 설명했습니다. 지금까지 총 29명입니다.
5·18 역사현장서 '유공자명단공개' 집회 (사진=연합뉴스)그런데 이 29명은 부당하게 보상을 받은 사람이지, '가짜 국가유공자'가 아닙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광주광역시에서 먼저 보상을 받고, 그 보상을 받은 사람은 국가보훈처에 5·18 유공자로 등록을 신청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부당 행위가 검찰에 적발되고 재판에 넘겨진 상황에서, 국가보훈처가 유공자 등록 신청을 받아줄 수 없습니다. 보훈처는 유공자 등록 신청이 들어올 경우, 보상심의위원회가 설치된 광주시에 유공자 요건에 적합한지, 사실 확인을 요청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1990년에는 5·18 민주유공자 자체가 없었다

또 1990년에 가짜 유공자가 적발됐다는 것도, 시간상 맞지 않습니다. 5·18 유공자 등록의 법적 근거는 '5·18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인데, 이 법률이 처음 시행된 것은 2002년입니다. 5·18 민주유공자는 2002년 이후에 생기기 시작했다는 뜻이니까, 그보다 앞서 1990년에 가짜 유공자가 적발됐다고 하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5·18 민주유공자 숫자에 대한 정부 통계는 2005년부터 집계되고 있습니다.

취재진이 국가보훈처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2002년 법 시행 이후, 공적 사실이 허위로 드러나 유공자 등록이 취소되거나 예우에서 배제된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이렇게 5·18 유공자 숫자도, 가짜 유공자가 3천여 명이라는 주장도, 1990년 가짜 유공자 적발에 대한 주장도, 발언의 근거를 묻기 위해, 검찰 소환 통보를 받은 그 유튜버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5·18 가짜 유공자"

이건 법적 문제입니다. 올해 3월, 이해찬 대표 본인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있지 않았다고 얘기를 하면서, 자유한국당에서도 5·18 유공자 신분에 문제를 제기하는 발언이 나온 적 있고, 광주 보수단체 집회에서는 지금까지도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가짜 5·18 유공자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본인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징역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5·18 유공자로 선정됐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5·18 민주유공자 등록의 법적 근거인 '5·18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은, 법 4조에 보면, 누가 유공자로 등록할 수 있는지 규정되어 있습니다. 크게 두 부류입니다. 첫째는 '5·18 보상법'에 따라 광주광역시로부터 절차에 따라 보상을 받은 사람입니다. 보상을 받은 사람이 국가보훈처에 유공자로 등록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그 밖의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입니다. 이해찬 대표가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사진=연합뉴스)현행법은 '그 밖의 5·18민주화운동 희생자'가 누구인지, 좀 더 자세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5·18 보상법' 제22조에 따라 지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된 피해자,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좀 더 들어가서, '5·18 보상법' 22조를 보면 '기타지원금'이라고 돼 있습니다. 기타지원금은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생계 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돈이고, 같은 법 시행령에 보면, 이 기타지원금은 "5·18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가한 사실이 원인이 되어 생업 등에 종사할 수 없었던 것으로 인정되는 자"를 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광주광역시에 설치된 보상심의위원회의 몫입니다.

●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연루를 "5·18 적극 참가"로 해석

결국 꼬리를 물고 들어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해찬 대표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있지 않았고, 서울에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억울한 징역형을 살았는데, 이것을 "5·18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가"했다고 볼 수 있는가, 이겁니다. 광주시 보상심의위원회는 이것도 5·18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가한 거라고 '해석'을 한 것이고, 그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한 겁니다. 그리고 그 보상이라는 행정 조치가 5·18 유공자 등록의 법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보수단체 주장은 이와 다르게, 이해찬 대표는 당시 서울에 있었으므로, 5·18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가했다고 보기 어렵고, 따라서 광주시 보상심의위원회가 기타지원금을 지급한 것부터가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보상금을 지급한 것이 잘못이라는 주장은, 5·18 민주유공자로 등록된 것 또한 부당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보상금을 못 받았다면, 유공자 등록을 못 했을 테니까 말입니다. 보수단체가 이 사안을 최근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에, 광주시 보상심의위의 해석이 적절했는지 여부는 수사기관이 판단하게 됐습니다.

이 사안은 팩트의 영역이기보다는, 해석의 영역이기 때문에, 각자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광주광역시에서 5·18 관련 보상을 받은 것은 이해찬 대표가 유일한 것은 아닙니다. 한화갑, 김옥두, 김홍일 전 의원도 같은 사유로 오래 전 보상금을 받았고, 이들 대부분은 보상금을 수령한 뒤 학교에 기부한 것으로 당시 언론에 보도된 바 있습니다.

(자료 조사: 박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