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검찰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의 불편한 진실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작성 2019.05.07 11:02 수정 2019.05.08 08:5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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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

이른바 망치의 법칙이다. 권력, 권한을 손에 쥔 사람은 누구나 그걸 휘두르고 싶어 한다는 의미다. 권한을 손에 쥐더라도 자제하는 것이 더 어렵고,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로 망치의 법칙은 소환되기도 한다.

검찰의 과거사 청산을 위해 출범한 법무부 검찰 과거사 위원회와 조사 실무를 맡은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의 과오를 찾아내 바로 잡겠다는 목적으로 출범한 두 기구는 '수사 권고'라는 강력한 권한을 손에 쥐고 있다.

● 검찰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의 이원화된 구조

그런데 두 기구는 과거의 다른 어떤 기구와 비교해서도 독특한 구조로 이뤄져 있다. 종국적으로 같은 일을 하면서도 결정 권한은 과거사위에, 조사 실무 권한은 조사단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것이다. 정식 명칭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각 기구의 소속도 법무부와 대검찰청 산하로 나뉘어져 있다.

이게 뭐 특별한 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꽤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과거사위는 의사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개별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기록을 볼 수 없다. 조사단이 올린 보고서만 보고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반면, 조사단은 최종 의사 결정 권한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과거 기록을 보고 사람을 조사해 과거사위가 판단을 내릴 때 필요한 자료를 작성한다.

유기적으로만 운영되면 이런 이원화된 체계는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현실은 이론이 아니다. 특정 사건에 대한 결정이 문제가 됐을 때, 과거사위는 보고서를 올린 조사단에 책임을 미루고, 조사단은 최종 결정은 위원회가 한 것이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핑퐁 게임이 발생할 수도 있다.
장자연 사건 재조사● 이원화된 구조와 이원화된 권한, 그리고 책임

실제, 故 장자연 씨 사건과 관련해 과거사위의 한 위원의 의견 제시가 조사단에 대한 외압이냐를 두고 논란이 인 적이 있다. 당시 조사단의 한 관계자는 기록도 보지 못한 과거사위 위원의 의견 제시는 외압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런데 바로 그 관계자는 특정 사건에 대한 조사단 보고서의 부실 논란이 제기됐을 때, 결정은 위원회가 하는 것이라며 책임을 위원회로 미루기도 했다.

과거사위와 조사단의 이원적 구조. 사건에 대한 최종 결정 권한은 과거사위가 가지고 있지만, 실질적 권한은 조사단이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수사 기록에 접근할 수 없는 위원회는 결국 조사단의 올린 보고서, 그리고 그 속에 포함된 조사단 단원의 의견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사단의 운용,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 조사단은 제대로 운영되고 있을까. 당초 조사단은 각 사건별로 교수 2명과 변호사 2명 등 외부위원 4명, 검사 1명이 한 팀으로 구성됐다. 그런데 현재 각 팀별로 검사 2명이 소속되어 있다. 검찰의 과오 확인을 검사에게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각 팀별로 검사가 1명씩 충원된 것엔 불편한 진실이 자리 잡고 있다.

● 검사가 검찰 과오 확인을 주도하게 된 이유

각 팀에 소속된 교수와 변호사는 상근 근무자가 아니다. 학교 강의와 사건 수임 등 본업을 하면서 조사단 업무를 병행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각 사건별로 수사 기록은 적게는 몇 천 페이지 많게는 수 만 페이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수사 기록들은 내밀한 개인 정보, 보안이 필요한 수사 정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단 사무실 밖으로 반출할 수 없다고 한다. 조사단 사무실이 차려진 서울동부지검으로 나와야만 사건 기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조사단 출범 이후 현재까지 조사단 출근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인 외부 위원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또, 자신이 맡은 사건의 수사 기록을 완독 하지 않은 외부 위원이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부 위원 중 지방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점 등 현실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결과 각 사건별로 조사 속도가 붙지 않았고, 이에 따라 상근 근무자인 검사가 각 팀별로 충원된 걸로 알려진다. 검찰의 과오를 확인하는 작업을 검사가 주도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법부 인사 문건● 기록도 제대로 못 보고 내리는 법률적 판단

여기서 파생되는 더 중요한 문제점은 수사 기록을 제대로 보지 못한 외부 위원도 의사 결정에 있어서는 동등한 권한을 가진다는 것이다. 재조사 대상에 올랐지만 대부분의 사건은 나름 촘촘한 논리 하에 처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 일부 의혹은 외부의 시각과 달리 과거 그렇게 처리된 법적 근거나 한계가 있었을 수도 있다. 기록을 꼼꼼하게 보지 못 한다면 찾아내기 힘든 부분들이다.

그런데 기록을 제대로 보지 못 했다면, 의사 결정의 논거는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보다 기록을 더 많이 본 외부 단원이 있다면, 그 사람의 의견에 동조할 가능성도 있다. 검찰의 과오를 찾아내기 위해서인 만큼 검사보다는 외부자의 시각이 맞을 것이라는 신뢰, 그리고 자신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한 외부 단원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일 수도 있을 테다.

조사단의 한 관계자는 실제 이런 상황이 조사단에서 오랫동안 있어왔고, 현재도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사건 기록을 제대로 보지 못 한 사람이 검찰에 수사 권고를 할지 말지 등 파급력이 높은 사안에 대한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교수나 변호사 등 전문가들로 구성해 수사 권고 필요성이 있는지를 면밀하게 검토하길 바랐던 조사단의 취지는 오래전부터 퇴색되었다는 것이다.

● "여론이 이러하니"…법률가가 법적 판단 때 근거로 든 '여론'

수사 기록에 대한 면밀한 검토, 그리고 그것에 대한 엄정한 법적 판단. 이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의사 결정은 여론에 의해, 특정 인물에 의해 주도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지난달 22일 검찰 과거사 위원회는 故 장자연 씨에 대한 특수 강간 의혹에 대해 수사 개시 검토 권고 필요성이 있는지 논의를 벌였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조사팀의 한 팀원이 "장자연 사건 재수사를 바라는 국민 청원 숫자가 높으니 수사 개시 검토 권고를 해야 한다"는 취지로 위원들에게 주장한 걸로 전해진다.

왜 교수와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들로 조사단을 꾸렸는지, 왜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 권고 필요성이 있는 지를 국민 투표가 아닌 전문가들에게 검토를 맡긴 건지, 조사단과 과거사위라는 공적 기구의 의사 결정이 얼마나 큰 무게감을 가지고 있는지 등을 망각한 발언으로 보이지만, 이에 대해 적지 않은 외부 단원이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 공적 기구 구성원의 책임감, 전문가의 엄밀함

검찰 과거사위에 올라 조사단이 검토했거나 검토하고 있는 사건 중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건이 없다. 의혹이 오랫동안 제기돼 재조사 대상으로 오른 만큼, 위원회와 조사단의 역할은 제기된 의혹 중 해소할 수 있는 의혹은 해소하고, 막연한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다고 선을 그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제한된 자원을 사건 본류 해결에 투입해 최대의 성과를 내는 것이다.

물론, 조사단의 한계로 의혹 규명이 쉽지 않은 부분은 검찰에 넘겨 수사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치 수사 권고 자체가 조사단과 위원회의 성과인 듯 생각해 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마냥 검찰로 공을 넘기는 것은 곤란하다. 그 쪽에 검찰이 수사력을 투입할 때, 그만큼의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국민이 공적 기구에, 그리고 전문가들에게 바라는 건 여론에 따른 판단이 아닌 엄밀한 근거에 따른 객관적 판단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굳이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큰 권한을 쥐어줄 이유가 없다. 그런데 과거사 진상조사단과 검찰 과거사위 관계자들은 공적 기구 구성원으로서 책임감과 전문가로서의 엄밀함을 얼마나 잘 느끼고 실현해 왔을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해당 사건이 왜 재조사 대상에 올랐는지, 제기된 의혹은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는지, 전문가로서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