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미사일 쐈다"는 北…"미사일 아니"라는 南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9.05.06 09:49 수정 2019.05.06 09:5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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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사일을 두고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묘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분명히 고체연료 추진 방식의 지대지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쐈다고 하는데 한국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나서서 "미사일 아닌 것 같다"는 가짜 뉴스를 흘리기도 했습니다. 김정은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사일을 발사하는 사진이 공개됐는데도 정부는 모르쇠입니다.

북한이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여러 가지 변수를 감안해 미사일인지 방사포인지 특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사진을 공개했고 그 사진을 통해 한미를 비롯한 국제사회에 모종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쏘지 않겠다던 미사일을 발사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북한의 의도를 파악한 뒤 그다음 수순을 강구하는 게 순서입니다. 미사일이 아니라고 강변한들 진실은, 팩트는 미사일에서 한 치도 멀어지지 않습니다. 정부가 앞장서서 남남갈등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 북한 정밀유도무기와 한국 현무는 '형제'

북한이 그제(4일) 쏜 신형 정밀유도무기는 북한 전통의 단거리 미사일인 KN-02에서 파생된 기종으로 보입니다. 러시아의 이스칸데르라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본떠 개발했다는 게 정설입니다. 북한이 어제(5일) 공개한 사진을 보면 미사일과 발사차량의 형상까지 이스칸데르와 똑같습니다. KN-02 개량형(대체형)을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부르는 이유입니다.

거의 똑같은 형상의 현무-2(왼쪽)와 이스칸데르(오른쪽)한국에도 북한 KN-02 개량형과 비슷한 미사일이 있습니다. 지대지 탄도미사일인 현무입니다. 현무도 러시아의 이스칸데르를 토대로 개발한 미사일입니다. KN-02 개량형이 북한판 이스칸데르라면 현무는 한국판 이스칸데르입니다. 남북 두 미사일의 탄 모양도 거의 같습니다. 한국의 현무와 북한의 KN-02 개량형은 같은 뿌리의 형제 미사일입니다.

즉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북한이 비밀리에 개발해 갑자기 꺼내든 미사일이 아니라 한국 정부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미사일입니다. 사진 한 컷만 봐도 단박에 정체 파악이 되는, 너무나 친근한(?) 미사일입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모른다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미사일 권위자인 장영근 항공대 교수는 "북한이 쏜 미사일은 화염의 색깔, 형상, 비행거리, 발사차량의 모양까지 이스칸데르와 똑같다"고 분석했습니다. 장 교수는 "관성항법, 글로나스(러시아식 GPS), 광학탐색기 등을 이용해 종말단계에서 회피기동도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행고도가 낮고 회피기동을 하면 요격해서 떨어뜨리기가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 국정원의 정보 실패?…청와대의 희망사항?

그제 국정원 고위관계자는 국회 정보위 소속 복수의 국회의원들을 통해 "북한이 쏜 발사체가 미사일은 아닌 듯 하다"고 밝혔습니다. 군도 북한 발사체의 정체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으로부터 받은 2차 정보를 분석하는 처지의 국정원이 과감하게 오판한 겁니다.

엄밀히 따지면 국정원의 정보 실패입니다. 북한 정보를 가장 정밀하게 분석할 책임이 있는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북한의 대남용 미사일 정보를 오독(誤讀)했습니다. 특히 김정은이 따라간 발사 현장이라면 한미 군 당국은 면밀히 추적 감시하기 마련입니다. 관련 정보가 차고 넘쳤습니다. 그리 어렵지도 않은 북한 정보 분석 사안인데도 틀렸으니 국정원으로서는 치욕입니다.

알면서도 정무적 판단에 따라 미사일을 부정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통상 미사일 발사 다음 날 대대적으로 공개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하루 뒤면 들통 날 일인데 북한 미사일의 정체를 일부러 잘못 알렸을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국정원과 군의 보고뿐 아니라 미국으로부터도 정보를 받는 청와대도 그제 엉뚱한 소리를 했습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국정원과 마찬가지로 "미사일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처음도 아닙니다. 2017년 8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윤영찬 당시 국민소통수석이 카메라 앞에 서서 "북한이 쏜 발사체가 300mm 신형 방사포로 추정된다"고 말했는데 사실은 탄도미사일이었습니다. 청와대는 북한 정보를 분석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 희망 사항을 노래한다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 왜 미사일을 미사일이라고 부르지 못할까

북한이 미사일을 쏜 그제 군 고위관계자 여럿에게 "미사일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절대 미사일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 "미사일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고 답했습니다. 청와대에도 그렇게 보고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북한이 쏜 발사체는 미사일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고, 이튿날에도 미사일 발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태도가 북한 비핵화 협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견인한다면 백번 환영합니다. 하지만 북한이 스스로 미사일의 정체를 밝힌 마당에 미사일을 부정하는 이유는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야당으로 하여금 현 정부의 대북 의식을 맹공할 수 있는 빌미도 줬습니다. 특히 자유한국당에게는 정부여당을 비판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를 건넨 꼴입니다. 패스트트랙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정국이 더 요동치게 생겼습니다. 이런 국내정치적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입을 닫아서 얻는 실익이 무엇인지 참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