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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미선 후보자는 왜 '재판거래 의혹' 판결을 옹호했을까?

[취재파일] 이미선 후보자는 왜 '재판거래 의혹' 판결을 옹호했을까?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논란은 주로 주식 투자 등 재산형성 과정에 집중돼왔다. 이미선 후보자를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당 의원들은 불법성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재산형성 과정이 아니라, 재판관으로서의 자질, 특히 노동자 권리 보호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 청와대·여당 "노동자 권리 확장에 기여…자질을 봐달라"

청와대가 이미선 후보자에 대해 인사청문을 요청하면서 국회에 보낸 인사청문 사유서를 보면, 청와대와 여당이 바라보는 이미선 후보자의 자질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그려진다.

"(전략) 특히 노동관계법 재판 경험을 바탕으로 해당 분야에 대한 심층 연구를 계속해 노동법 분야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음. 단체협약, 해고의 정당성 판단기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원칙, 통상임금, 기간제 근로자의 갱신기대권 및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의 시정 등 관련 10여 편의 연구 논문을 저술함으로써 관련 분야에 대한 법리의 폭을 넓힌 것은 물론, 노동자의 권리를 확장하는 데 실질적인 기여를 하였음. (후략)"

다른 판사 출신 후보자와 마찬가지로, 과거 이미선 후보자가 관여했던 판결을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후보자가 청와대 말처럼 '친노동 성향' 판사인지, 아니면 ' 반노동 성향' 판사인지 명확하게 단정 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청와대가 근거로 제시한 여러 논문, 공개된 자료에서 확인되는 이 후보자의 행적, 그리고 별도로 취재한 노동조합 관련 변호사의 평가 등을 종합해 볼 때, 이 후보자가 법관으로서 "노동자의 권리를 확장하는 데 실질적인 기여"했다는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통상임금 관련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대법정에 앉아있다.
●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의혹…'재판거래 의혹 판결' 옹호

하지만, 바로 이런 이 후보자의 성향 때문에 더욱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의혹이 있다. 바로, 이미선 후보자가 '재판거래 의혹'이 제기된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판결 과정에 재판연구관으로서 관여했고, 나중에는 노동계뿐만 아니라 여러 학자와 법조인으로부터 비판을 받은 이른바 '신의칙 논리'에 대해서까지 옹호하는 논문을 외부에 기고했다는 점이다. 도대체 이미선 후보자는 왜 '재판거래 의혹 판결'로 지목된 이 판결 논리를 옹호했던 것일까?

의혹에 대한 취재 내용을 풀어나가기 전에 먼저 사건 내용부터 설명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인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른바 '통상임금 사건'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갑을오토텍 직원들이 통상임금에서 제외된 상여금 등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산입하는 방식으로 계산해 미사용연차휴가 수당이나 연장근로수당의 추가 지급을 청구한 사건이다.

복잡한 사건이고 여러 가지 쟁점이 있었는데, 판결이 나온 후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노사합의가 있는 경우, 이 합의가 유효하다고 인정할 수 있느냐'에 대한 판단이었다. 대법원은 이 같은 노사합의가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한 것이고, 원칙적으로 무효라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에 위반됨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노사협약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이하 '신의칙') 위배라는 논리를 구성해, 노사협의의 효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정상적 권리행사도 "상대방의 신의에 반하여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정의 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상태"라면 '신의칙 위배'를 이유로 제한할 수 있는데,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는 논리였다.
통상임금 (사진=연합뉴스)
● 통상임금 판결에 등장한 "신의칙"…학계도 비판

이 논리는 판결 선고 직후인 2014년 1월에 열린 한국노동법학회 학술대회에서 가혹할 정도의 비판을 받았다. 발표자와 토론자로 나선 노동법 전문 법학 교수들은 판결 자체의 의미에 대해서는 엇갈린 견해를 보이면서도, 대법원이 밝힌 '신의칙 위배' 논리에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비판했다.

"통상임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의미와 과제"라는 주제의 이 학술대회에서 제1발표자를 맡은 이철수 서울대 교수는 "(통상임금의) 고정성과 정기성에 대한 단호한 입장은 당분간 변함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관한 한 논란의 여지를 없앤 점에서 진일보한 판결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일면 호평을 하면서도 "기왕의 추가수당청구에 관련한 과거사 정리를 신의칙에 문의한 점은 오히려 논란을 증폭시킬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토론자로 나선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법이론적 관점에서 과연 강행법률로써 무효가 된 상황에도 신의칙 적용이 가능한 것인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고 지적하고 "두 번째로는 신의칙을 근거로 한 사법 판단 그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의칙은 그 개념 내용이 매우 모호하고 포괄적이어서, 그에 근거한 판단은 사실상 법관의 개인적 성향이나 가치관에 따라 그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두 번째 토론자인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통상임금이 1차적으로는 할증임금 산정의 도구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일정 정도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했다는 점은 위 전원합의체 판결의 긍정적 효과라 볼 수 있습니다"라고 의미를 평가하면서도 "신의칙이라는 예외적 법리를 한시적으로 일반적인 것으로 바꾸는 마술(?)을 통해 변호사와 하급심 법관에게 할증임금 소송의 해결책임을 넘겼다는 비판도 함께 받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토론자인 조상균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상판결에서는 상여금 청구와 관련된 부분에 한정해서 판단하고 있으나, 강행법규에 우선하여 신의칙이 적용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의 일반론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라고 지적하며 "대상판결이 단순히 당혹스럽다는 감정을 넘어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즉 무한정 확대 가능성이 열려있다 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 시 소수의견을 밝힌 대법관 3명이 "다수의견의 주장은 너무 낯선 것이어서 당혹감마저 든다"라고 표현한 것을 넘은 강한 비판이었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
● 당시 이미선 후보자 "법적안정성과 근로기준법 조화 도모"

그런데 청와대가 "노동자의 권리를 확장하는 데 실질적인 기여를 했다"라고 설명한 이미선 후보자는 2014년 한 학술지에 기고한 논문에서 2013년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 그중에서도 문제의 '신의칙 위배' 논리를 옹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선 후보자는 결론부인 "IV. 대상판결의 의의"에서도 특히 마지막 대목에 이렇게 쓰고 있다.

"다만 대상판결은 정기상여금의 경우 임금 협상의 실무와 정기상여금의 특수성, 노사 합의 관행 등을 고려하여 종래 노사 양측이 정기상여금은 그 자체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신뢰를 기초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한 때에는 제한적인 요건하에서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의 청구가 신의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보았는데, 근로자의 청구를 한시적으로 제한함으로써 법적 안정성과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의 조화를 도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미선. (2014). 판례연구 : 통상임금 -대상판결: 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2012다94643 전원합의체 판결-. BFL, 64(0), 103-121.)

간단히 말해, '신의칙 위배'라는 대법원 판결의 논리는 "법적 안정성과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의 조화를 도모한 것"이라는 이미선 후보자 본인의 '평가'를 밝힌 것이다.
법원행정처, 재판거래 의혹 미공개 문건 추가 공개
●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재판거래 의혹 불거져

특히 이 판결에 대한 이 후보자의 옹호가 더욱 논란이 되는 것은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판결이 이른바 양승태 사법부와 박근혜 정부 사이의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진 대상 판결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법원이 공개한 양승태 사법부 시절 작성된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2015년 작성) 중에는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있다. "사법부는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해왔음"이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보고서는 "과거사 정립", "자유민주주의 수호" 등 여러 항목 별로 사법부가 박근혜 정부 운영을 돕기 위해 협력한 판결을 나열하고 있다. 그중 "국가경제 발전 최우선 고려"라는 항목에 첫 번째로 언급된 것이 바로 '통상임금 사건'이다.

보고서 작성자는 이 판결에 대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단순히 포함시킬 경우 우리 경제 전체가 안게될 부담(약 38조 원으로 추산됨)을 최대한 고려하여, 노사 양측 모두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적절한 결론을 제시"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민법의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소급 적용을 제한시킴"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해 이른바 '신의칙 위배' 논리에 대해 사법부가 정부 운영에 협력한 사례로 언급할 만한 것이라고 법원행정처가 여기고 있었음을 확연하게 드러냈다.

'사법농단'과 '재판거래'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온 문재인 정부가 지명하고, 사법농단 관련자 처벌을 주장해온 집권여당이 임명을 주장하고 있는 이미선 후보자는, 그렇다면 왜 '재판거래 의혹' 대상 판결일 뿐만 아니라, 노동계와 노동법 전문가들이 반대하는 판결 논리에 대해 옹호하는 논문을 쓴 것일까?

해명을 듣기 위해 헌법재판소를 통해 이미선 후보자에게 논문에 대한 설명을 요청했지만 "해당 판결을 평석(비평하고 주석)한 것"이라는 짧은 답밖에 들을 수 없었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
● '재판거래 의혹 판결' 검토 연구관 출신…이 후보자는 왜 그랬을까?

하지만, 이유를 추정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는 별도로 취재할 수 있었다. 바로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당시 이미선 후보자가 대법원 재판연구관이었다는 사실이다. 추가 취재 결과, 이미선 후보자가 바로 2013년 통상임금 사건 검토에 참여한 재판연구관이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양승태 대법원의 분위기, 특히 법원행정처도 사후적으로나마 통상임금 판결이 상고법원 추진에 유리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여긴 분위기 속에서, 당시 판결문 작성 실무 작업에 참여한 대법원 재판연구관이었던 이미선 후보자가 '재판거래 의혹'의 대상이 된 문제의 판결에 대해 옹호하는 논문을 외부에 기고했던 것이다.

이 경우 가능성은 두 가지를 상정해 볼 수 있다. 비록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서 판결 실무에 참여했지만 이 후보자가 내부적으로는 '신의칙 논리' 등에 반대했음에도 다수의견으로 관철되지 않은 경우. 그럼에도 외부 기고문에서는 해당 판결을 옹호한 경우다.

두 번째로는 다른 쟁점에서의 친노동 성향과는 궤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신의칙 논리'가 본인의 소신이었고, 이것이 최종 판결문에 다수의견으로 관철됐기 때문에 외부 기고 논문을 통해서도 이를 옹호한 경우이다.

두 경우 모두 헌법재판관 후보로서의 자질에 대해 의혹을 제기해 볼만한 대목이 있다.

첫 번째의 경우 내부적으로 반대했다고는 하나, 어쨌든 외부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발표한 논문에 신의칙 논리를 옹호했으니, 당시 대법원 내부 분위기 등을 감안해 논문에 자신의 소신과 다른 의견을 적은 '무소신' 또는 '눈치보기' 경향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헌법재판관은 여론과 외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소수자 인권 보호 등을 위해 소신을 지켜야 하는 자리인 만큼, 문제가 될 수 있다.

두 번째 경우라면 본인의 소신을 분명히 밝힌 것이니 그 자체로 존중할 수 있겠지만, "노동자의 권리를 확장하는 데 실질적인 기여를 했다"는 본인에 대한 평가와 배치되는 점이 있음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
● "확정된 대법원 판결 관련 입장 부적절"…그럼 무엇을 말할 수 있나?

그러나 이미선 후보자는 거듭된 요청에도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논문을 쓸 때 당시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된다면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된 지금의 입장에서 2013년 통상임금 판결에 대한 법률적 견해를 밝혀달라'고 요청했는데도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확정된 대법원 판결에 대하여 입장을 밝히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진행 중도 아니고 이미 '확정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것이 부적절하다면, 후보자가 입장을 밝힐 수 있는 쟁점은 이 세상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런 논리라면 극단적으로 말해 12·12 군사 쿠데타를 '군사반란'으로 규정한 "확정된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히는 것이 부적절할 것이다.

물론 이 후보자는 이 말의 뒤에 "현재 통상임금 사건이 대법원과 일선 법원에 계류 중이어서 입장을 밝히기가 더욱 조심스러움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덧붙이긴 했다. 하지만 확정된 대법원 판례와 관련된 하급심 사건이 진행 중인 경우는 부지기수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경우에 국민들은 "확정된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조차 국민을 대신해 헌법적 판단을 내리는 최종 권위자인 헌법재판관이 되려는 사람의 생각을 들을 권리가 없는 것인가?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된' 5·18과 관련해서도 하급심에서 지금도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헌법재판소 낙태죄 존페 결정
● 헌법재판관은 그런 자리가 아니다

3년 전 헌법재판관들의 판단으로 현직 대통령이 파면됐다. 불과 며칠 전에는 헌법재판관들의 판단으로 66년 간 이어져온 낙태죄가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선언됐다. 헌법재판관은 그런 자리다. 수 만, 수십 만, 때로는 수천 만의 재산과 운명과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권능을 나눠갖고 있는 자리다.

"노동자의 권리를 확장하는 데 실질적 기여를 했다"라는 평가를 받는 이미선 후보자는 자신이 왜 노동법 전문가을 포함한 많은 법조인들이 비판하는 판결 논리와 '재판거래 의혹'의 대상이 된 판결을 옹호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다른 대부분의 쟁점에 대해 '친노동 성향'이면서도 이 쟁점에 대해서 만큼은 '신의칙 논리'에 동의하는 개인적 소신을 가졌을 가능성도 물론 있다.

그렇다면 왜 자신이 그런 논리에 찬성했는지, 그것이 자신의 다른 쟁점에 대한 '친노동적 성향'과는 어떻게 조화되는지 밝힐 의무가 있다. "확정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은 대법원 재판연구관이 할 법한 말이지,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할 수 있는 주장은 아니다.

이미선 후보자의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한 비난이 이어질 때마다 청와대와 여당은 재산이 아니라 본질, 판사로서의 자질과 판단에 집중해달라고 주문해왔다. 이번에 불거진 '재판거래 의혹 판결 옹호 논란'은 분명히 판사로서의 이미선 후보자의 자질과 판단에 대한 의혹이다. 이 같은 질문에조차 명확히 답하지 않은 채, 모든 비판을 정치적 공세로 취급하면서 임명되기에는, 헌법재판관은 너무 막중한 자리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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