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타사 뉴스가 '가짜'라는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어느 쪽이 '페이크'인가?

고정현 기자 yd@sbs.co.kr

작성 2019.04.14 07:42 수정 2019.04.14 13:4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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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화) 아침 출근해 습관처럼 회사 메일을 열었다 화들짝 놀랐습니다. 수십 개의 메일이 온통 저를 비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욕설이나 비속어도 섞여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전날 밤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방송 때문이었습니다.

방송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손석희 JTBC 사장이 2017년 4월 경기 과천 교회 공터에서 레커차와 사고를 낸 건 '가벼운 접촉사고'였고, 사고를 내고도 3km를 이동한 건 비포장도로라 사고를 낸 줄 몰랐기 때문이다. 사고 당시 여자 동승자가 있어서 손 사장이 현장을 이탈한 거 아니냐고 언론이 몰아갔지만, 동승자는 없었다. 그러므로 동승자 관련 보도를 한 언론 기사는 모두 '페이크 기사'다."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1화의 결론이다.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1화의 결론입니다. 그중 SBS 8시 뉴스에서 1월 30일 보도된 기사를 가장 핵심적인 예시로 듭니다. 그 기사는 제가 작성한 겁니다. 관련 기사를 작성한 수많은 기자 중 제 해명만 들어가 있는데, 제작진이 저에게 불쑥 걸었던 짧은 통화를 그나마 희한하게 편집해서 내보냈습니다. 저와 제작진이 통화한 시간이 39초에 불과했는데, 이 이야기는 뒤에 하겠습니다.

● 논점 정리 기사를 '가짜'라 규정짓는 MBC의 오만함

먼저 제 기사의 전문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2개 기사 모두 1월 30일 잇달아 보도됐습니다.

▶ 손석희 녹취파일…'피해자 기억'과 다른 주장 반복
▶ '폭행' 논란 출발점 접촉사고…상반된 상황 설명

첫 번째 기사의 핵심은 손석희 사장과 접촉사고 피해자인 견인차 기사 A 씨와의 전화 통화 파일 공개입니다. 최초 사고 당사자들의 직접적인 대화 내용인 데다, 프리랜서 김웅 기자가 손 사장을 폭행 혐의로 고발한 내용이 세상에 알려지기 하루 전, 손 사장이 직접 전화를 걸었던 점이 특이사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기사는 손석희 사장과 관련된 이슈 중 A 씨와 통화 내용을 중심으로 쟁점을 3가지로 정리해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접촉사고 정황 △동승자 탑승 논란 △보도 하루 전 손 사장이 사건 핵심 관계자 A 씨에게 전화를 건 이유입니다. 그리고는 손 사장과 A 씨 사이 통화 녹음 내용 전문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겠다고 했습니다. 혹시나 있을 왜곡 논란을 막고, 시청자들이 직접 판단해보라는 목적이었습니다. 유튜브에 공개된 통화 녹취 전문만 135만 명이 직접 들었습니다. 통화 녹취를 확보하지 못한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도 SBS가 공개한 녹취를 사용해 방송으로 내보냈습니다.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의 김재영 PD는 다음날 낮 프로그램에 출연해 "방송사(SBS)가 녹취 전문을 공개한 건 손석희 사장도 해당 녹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확언하지만, 사실과 다릅니다. 손 사장은 해당 녹취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통화 과정에서도 손 사장이 "녹음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밝혔지만, 견인차 기사 A씨는 SBS와 인터뷰에서 "걸려온 전화번호는 유선 전화번호였는데 다시 걸어보니 JTBC 회사 번호였고, 아무도 받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프로그램 제작진이 녹취 전체를 들어봤는지, 아니면 녹취록 전문을 모두 읽어보긴 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입니다. 어찌됐건 저희는 순수하게 "시청자들이 판단해보라"는 의미에서 통화 녹음 전체를 공개한 겁니다.

SBS 보도의 핵심은 녹취 전문 공개와 손 사장 관련 의혹의 쟁점 정리입니다. 어디에도 "접촉사고 당시 동승자가 있었다"고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녹취라는 '팩트'를 공개하고, 관련 내용의 '쟁점'을 소개한 겁니다. 쟁점이란 논란되는 사안에서 몇 가지 포인트를 소개한 것으로 '진짜'와 '가짜'의 틀 속에서 구분 지을 수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그러나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는 막무가내로 '페이크'라고 규정지어 버렸습니다. 해당 기사가 '페이크'가 되려면 녹취 내용을 조작했거나 왜곡한 부분이 있었어야 합니다.
왼쪽 상단에도 표시됐지만 해당 기사의 주제는 '접촉사고 3대 쟁점' 소개이다.물론 이 기사를 논란의 대상으로 삼거나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손석희 사장 관련 사안 중 쟁점을 위 3가지로 볼 수 있느냐", "관련 내용을 지상파 메인 뉴스에 내보낼 가치가 있는 거냐" 등의 논지에서 말입니다. 결국 '바람직하냐' '바람직하지 않냐'는 판단의 문제를 '진짜다', '가짜다'의 문제로 잘못 재단한 겁니다. 제작진이 어떤 의도를 갖고 그랬든, 아니면 실수였든 말이죠.

MBC의 해당 방송은 "내가 생각하기엔 보도 가치가 없다. 그러니 그건 가짜 뉴스가 맞다"는 식으로 판단한 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그렇다면 그건 매우 위험한 태도입니다. 내 생각, 내 판단에 맞지 않으면 그건 다 '가짜'가 되고 '거짓'이라는 것은 위험한 이분법적 사고입니다.

● '워드 클라우드' 등 4가지 근거…MBC 방송의 창의적 취재방식?

그럼 위 논란은 제쳐 두고 MBC가 '동승자 탑승'을 '페이크'로 규정한 근거는 일리가 있는 걸까요?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동승자 탑승'이 진짜냐 가짜냐를 따져보자는 것이 아니라,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가 얼마나 논리적으로 '가짜 뉴스'를 증명했는지 확인해보자는 겁니다.

2017년 접촉사고 당시 손석희 사장을 따라 3km를 쫓아간 사람은 2명입니다. 견인차 기사 A 씨와 그의 동료 견인차 기사 B 씨. 차량 2대가 함께 쫓아간 건데,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는 두 차량의 운전자 모두에게서 답변을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결국 과천 카센터 관계자의 "(견인차 기사와) 아는 사람에게 (동승자) 있지 않았냐 물었더니 없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라는 인터뷰를 내보낸 뒤 "동승자 논란은 근거 없다"고 중간 결론을 내립니다. 1차 목격자도 아니고, 1차 목격자로부터 말을 직접 들은 사람도 아니고, 한 단계 더 건너 들은 말을 근거로 중간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니까 '건너' '건너' 사람의 말인 겁니다.

이후 방송은 대략 4가지 근거를 대며 '동승자 탑승'을 아예 '페이크'로 결론 내립니다. △워드 클라우드 △프로파일러의 분석 △A씨 경찰 진술 △A씨 발언 외 증거 없음 입니다.
'워드 클라우드', 간단한 인터넷 검색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먼저 '워드 클라우드'는 문장이나 문단 속 다양한 단어를 사용 빈도에 따라 시각화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많이 사용된 단어는 큰 글자로 적게 사용된 단어는 작은 글자로 시각화됩니다. 손 사장과 견인차 기사의 전화 녹취에서 견인차 기사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제가' '잘못' '수도' '그렇게' '봤을' '어두워서'인데, 조합해 보면 "어두워서 제가 잘못 봤을 수도"라는 분석입니다.

사람의 발언을 단어 수로 세어본 뒤 그 사람의 속마음을 알아내겠다는 일종의 '관심법'으로 보입니다. 발언자의 속마음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발언의 전체 맥락과 행간의 의미, 상대편 발언의 의미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해야 하지만 단순히 글자 수로만 판단한 것입니다. 저는 전체적인 맥락상 견인차 기사가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이 "제가 잘못 봤을 수도 (있는데 봤습니다)"라는 판단이 듭니다. 판단은 다를 수 있으니 전체 통화 전문을 보고 개개인이 판단하면 될 것 같습니다. 맥락은 제쳐두고 단어 수로 내심의 의사를 파악해보겠다는 건데, 어찌됐건 참 재밌는 취재 기법입니다. 과연 이런 방법을 '사실'인지 '페이크(가짜)'인지를 따지는 데 사용해도 되는 건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저도 재미로 직접 견인차 기사 A씨의 발언을 '워드 클라우드' 프로그램으로 분석해봤습니다. 딱 3분 걸렸는데, MBC의 분석과 달리 '어두워서'라는 말은 A씨가 여러 번 사용한 단어가 아닙니다.▶ 손석희 사장-견인차 기사 A씨 통화 전문

다음 근거는 전문가인 배성훈 프로파일러의 해석입니다. 손 사장과 견인차 기사의 통화 내용을 본 배성훈 프로파일러는 "(견인차 기사가) 마지막에 '잘못된 놈 혼내주세요 잘못된 건 걸려야죠'라고 이야기하잖아요. 명확하지 않은 것을 누군가에게 과장해서 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합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견인차 기사 A 씨가 혼내주라고 한 사람은 '손 사장을 협박하는 사람'을 혼내주라고 한 겁니다. '협박하는 나쁜 사람'을 혼내주라는 것이지 '자기가 과장된 말을 했다'는 걸 인정한 적은 없습니다.

배 프로파일러는 이어 "손 대표가 전화를 건 목적이 'A 씨가 혹시라도 사실을 부풀려 얘기하면 안 된다라는 것'을 SBS도 알았을 텐데…." "그 맥락을 빼놓고 보도한 것은 잘못됐다. 가짜 뉴스가 보통 그렇게 만들어지죠"라고 결론 내립니다. 배 프로파일러는 방송 이후 SBS와 전화 통화에서 "SBS 보도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언론의 전반적인 행태가 '가짜뉴스'라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그럼 왜 SBS가 가짜뉴스라는 취지로 말했냐"는 질문에 "편집은 MBC가 했으니까 MBC한테 따지셔야지 무례하다"며 전화를 끊은 뒤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MBC는 "배 프로파일러의 발언을 편집해 내보낸 적이 없다. 배 프로파일러가 SBS 뉴스를 가짜뉴스라고 말한 것이 맞다"는 취지로 해명했습니다.
고정현 취파용(리사이징)전화 통화 전문에서 견인차 기사 A 씨 발언의 흐름은 "손석희 사장님이 아니라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저는 차에서 내리는 사람 봤습니다"에서 "그럼 제가 착각했나 봅니다."로 바뀝니다. A 씨 발언의 맥락이 바뀌는 가장 큰 이유는 손 사장이 중간에 "이거 정확하게 말씀 안 해주시면 나중에 제가 이 친구를 고소하게 되면 같이 피해를 입으세요"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A 씨는 이후 SBS와 인터뷰에서 "손 대표의 전화가 압력으로 느껴졌다"고 밝혔습니다.

손 대표가 전화 통화에서 법적 대응을 운운한 직후 인터뷰였음에도 불구하고, A 씨는 여전히 "동승자를 봤다"고 주장했습니다. 배 프로파일러의 말처럼 손석희 사장이 전화를 건 목적과 두 사람 통화의 맥락이 A 씨의 말과 겹쳐 놓고 보면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배 프로파일러는 SBS 기사에 나온 "손 대표의 전화가 압력으로 느껴졌다"는 A씨의 발언은 분석하지도 않았습니다. "SBS 보도 내용 전체를 보긴 한 거냐"는 질문에 배 프로파일러는 얼버무리며 답변을 피했습니다.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세 번째,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의 근거는 견인차 기사 A 씨가 한 달 뒤 경찰에 출석해 "동승자는 없었다"고 진술한 부분입니다. 정확히는 이런 언론 보도의 내용을 캡처해 내보냈습니다.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견인차 기사 A 씨를 제대로 인터뷰조차 못 해 다른 방송국 보도를 인용한 문제에 대해서는 차치하고서라도(하필 자신들이 페이크뉴스라고 지적한 TV조선의 보도를 인용했다),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취재진은 단 한 번도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마포경찰서를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마포경찰서 관계자는 "손석희 사장 사건과 관련해 마포경찰서는 누구에게도 A 씨를 비롯한 특정인의 진술 내용에 대해 확인해 준 적이 없다"며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팀이 방문한 적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설사 A 씨가 경찰조사에서 자신의 말을 번복했더라도 이 진술이 A씨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따져봐야 합니다. A 씨에게 '동승자 존재 여부'는 전혀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없는 걸로 해둡시다'가 본인의 이해관계에 더 부합합니다. '동승자가 있다'고 주장해봐야 하등의 경제적 이익이 생길 게 없지만, 해당 주장을 계속하면 언론 권력인 JTBC 손석희 사장과 정면대결을 해야 합니다. 경찰 조사뿐 아니라 향후 검찰 조사, 재판 과정에서 주요 참고인으로 계속 불려다녀야 합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요는 견인차 기사 A씨가 손석희 사장과의 통화 당시 밝힌 내용과 경찰 진술에서 말한 내용 가운데 어느 것이 진실인지 현재 단계에서 함부로 결론 내릴 수 없다는 겁니다.
다른 보도를 인용할 때는 매체를 일일이 적어준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가 하필 이 보도는 화면을 늘려 보도한 매체의 로고를 지워버렸다.마지막으로 기자들이 견인차 기사 A 씨 증언 이외에 다른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부분입니다. 이건 별로 따져볼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다른 증거를 찾지 못한 건 사실인데, 그렇다고 그걸 바탕으로 사안 자체를 가짜 뉴스로 규정짓는 게 가능한지는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에서 가장 허술한 부분은 어느 누구든 핵심 관계자를 인터뷰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견인차 기사 A 씨, 동료 견인차 기사 B 씨, 사건의 논란을 키운 김웅 프리랜서 기자. 그리고 MBC가 페이크라고 주장하는 기사를 보도한 저 '고정현' 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어쩌면 만날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가짜 뉴스'란 결론은 이미 정해진 상태에서 "(얘기하기) 싫어요" 혹은 "귀찮아요"라는 관계자들의 발언은 MSG 양념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가 핵심 관계자 접촉을 어떤 식으로 했던 건지 저를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 39초 통화 녹음해 교묘한 편집…'섹시한 녹취' 얻었으면 취재 끝?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방송에서 진행자 김지훈 씨는 심각한 표정으로 저에게 전화를 걸고 제가 답을 하지 않자 "기사를 쓴 기자분에게 기사에 대한 질문을 못 하면 누구한테 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전화를 건 사람은 담당 PD인 김재영 PD였습니다. 김지훈 씨가 왜 이런 연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방송 내용을 볼까요.
김지훈 : 손석희 대표 보도 관련해서 궁금한점이 있어서 연락을 드렸는데요
고정현 : 그쪽에 대해서는 제가 드릴 말씀이 없을 것 같습니다.
김지훈 : 예? 기자님이 보도하신 기사인데요. 기사에 대해서 제가 궁금한게 있어서
고정현 : 질문 안 듣는게 나을 것 같아요. 네 죄송합니다. (전화 끊음.)


하지만 실제 통화 내용은 다릅니다.
지난 4월 1일 아침 9시55분 마포경찰서 기자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MBC 피디 '김재영 PD'인데,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PD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통화를 했습니다.

김재영 : 손석희 사장 관련해가지고 이제, 어떤 뉴스들이 나왔는지
고정현 : 그쪽에 대해서는 제가 드릴 말씀이 없을 것 같습니다.
김재영 : 아니 근데 기자님 저
고정현 : 예 죄송합니다.
김재영 : 아니 다름이 아니라요
고정현 : 질문 안 듣는게 나을 것 같아요. 네 죄송합니다. (전화 끊음)


실제 있지도 않았던 질문을 프로그램 사회자가 가공해서 던지고, 취재 대상인 저의 답변을 마치 그 가공의 질문에 답한 것처럼 편집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페이크' 아닐까요? 게다가, 전체 통화 시간이 고작 39초입니다.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가 어떤 프로그램인지, 무엇을 묻고자 한 건지도 당연히 듣지 못했습니다. 당시 제 귀에 남은 단어는 'MBC PD' '페이크' '손석희'였습니다.

어쨌든 대화를 제대로 하지 않고 끊은 건 당신 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하루의 취재 일정을 챙기고 준비하느라 가장 바쁜 시간에 전혀 모르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 '페이크' 운운 하는 말을 하길래 '전화를 건 의도가 석연치 않은데 이 바쁜 시간에 옥신각신할 여유가 없다'는 생각에 죄송하다고 얘기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제 기사가 방송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그 이후 방송까지 일주일의 시간이 있었지만 MBC 쪽에서는 단 한 번도 어떤 방식으로든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방송에서 제 실명과 목소리까지 공개해 망신을 줘보려고 했다면 조금은 더 해명을 받기 위해 노력했어야 합니다. 일주일이란 시간이 있었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연락을 했을 수 있습니다. 김재영 PD는 그냥 "질문을 안 듣는 게 나을 거 같아요"라는 일종의 '섹시한 녹취'를 확보했으니 '됐다'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저는 방송이 나간 이후 김재영 PD에게 전화를 걸어 "<PD수첩> 하시던 때와 달리 요즘 취재 트렌드가 공격받는 사람은 최대한 해명을 들어주는 것인데 안타깝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김 PD는 "제가 전화 초반에 신분을 밝혔고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라고 프로그램 이름을 말했기 때문에, 해명을 하시고 싶었으면 직접 전화를 해주셨으면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는 이번 방송이 첫 회였습니다. 지난해 '파일럿 방송'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시청자에겐 아직 알려지지 않은 방송이었고 저도 당연히 몰랐습니다.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김재영 PD가 방송 다음날 MBC 낮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견인차 기사 A 씨와 B 씨, 그리고 김웅 기자, 마포경찰서 관계자 등에 대한 접촉 시도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을 해봅니다. 물론 사건의 핵심 관계자를 만나거나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노력은 할 수 있습니다. 비난 대상자에게 '최소한의 설명'도 없는 상태에서 '무단 녹취'만 하고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이 'MBC PD저널리즘'이 추구하는 방향인지 묻고 싶습니다.

● 또 다른 형태로 손석희를 소비하는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는 첫 방송 아이템으로 '손석희 사장'과 '장자연 사건'을 다뤘습니다. 손석희 사장 관련 아이템은 30분, 장자연 사건 관련 아이템은 20분 내보냈습니다. 손석희 사장 관련 논쟁이 관심도가 높은 아이템이긴 하지만, 과연 지상파 방송의 미디어 프로그램 첫 아이템으로 뽑힐만한 소재인지는 의문입니다.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는 '손석희 동승자 논란'이 거짓이라고 말하며 이를 보도한 방송을 모두 비판하지만, 정작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야말로 죽었던 '손석희 논란'을 끄집어내 계속 소비하는 것 아닐까요. "으슥한 곳에서 뭘했냐"고 낄낄대며 웃어대는 극우 인터넷 방송의 정반대편에서, 취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논리도 근거도 없는 상태로 '가짜뉴스'라는 자극적인 멘트만 사용하며 손석희 사장을 소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