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다산'은 안 되고 '정약용'만 된다?

남양주시의 이상한 '다산' 죽이기 정책 논란

서쌍교 기자 twinpeak@sbs.co.kr

작성 2019.04.05 11:2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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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는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의 생가와 묘지가 있습니다. 정성껏 단장한 다산유적지입니다. 이곳에는 다산을 추모하는 참배객들이 줄을 잇습니다. 날씨 좋은 주말에는 방문객이 하루 3천 명을 훌쩍 넘는다고 관리인이 설명합니다.
다산 정약용의 묘지 (사진=연합뉴스)다산유적지에서는 매년 수많은 시민, 단체의 참여 속에 다산문화제가 축제 형식으로 개최됩니다. 1986년부터 작년까지 32년간 계속돼 왔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다산문화제라는 명칭은 없어집니다. 대신에 정약용문화제로 대체됩니다.

● 남양주시 정약용문화제 조례안 개정

남양주시 의회는 지난달 27일 다산문화제를 정약용문화제로 변경하는 조례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기존의 다산이라는 명칭 대신 정약용을 사용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정약용 선생, 다산문화제는 정약용문화제, 다산유적지는 정약용유적지, 다산대상은 정약용대상으로 바꾸는 겁니다.
[취재파일] '다산'은 안 되고, '정약용'만 된다?조례안은 오는 11일 공포되고 바로 시행됩니다. 이에 따라 다산 이름을 붙인 시의 행사나 조직은 사라집니다. 다산문화제 사무국은 이미 없어졌고, 다산유적지 등의 간판도 모두 교체됩니다. 시는 정약용문화제를 앞두고 버스에 홍보 사진을 붙이고, 광고 책자를 배포하는 등 행사 선전에 안간힘을 쏟고 있습니다.

시는 다산문화제의 명칭을 바꾼 배경에 대해 정약용 도시임을 적극 홍보하고 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정약용 선생 본인이 불려 지기를 원하는 호가 사암이라며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다산 정약용이라는 것은 다산초당 아래 사는 정약용이라는 뜻으로 호라고 하기에는 마땅하지 않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이고 있습니다.

● '다산' 명칭 지우기에 주민 강력 반발

지난해 가을에 남양주시에서는 다산 명칭 변경 문제를 놓고 한바탕 소동 벌어졌습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이후 조광한 시장이 취임했습니다. 선거 직전인 5월에는 다산신도시에 다산아트홀이 개관했습니다. 다산아트홀의 명칭은 시민 공모와 선호도 조사를 통해 결정됐습니다. 조광한 시장이 취임하고 몇 달 지난 뒤인 10월 12일, 다산아트홀의 간판이 대뜸 사암아트홀로 바뀌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시청 홈페이지에는 중장기적으로 다산 1동과 다산 2동의 명칭을 각각 사암동, 열수동으로 바꿀 것이라는 내용의 글이 실렸습니다.
[취재파일] '다산'은 안 되고, '정약용'만 된다?[취재파일] '다산'은 안 되고, '정약용'만 된다?다산신도시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주민은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올리고, 국가권익위원회에 부당하다는 진정서를 냈습니다. 주민 카페에는 조광한 시장을 향한 원색적인 비난과 다산 명칭 변경에 대한 노골적인 반대 의견이 잇따랐습니다. 다산을 원래대로 즉각 돌려놓으라는 주문이 빗발쳤습니다. 조광한 시장은 결국, 시 간부들을 대동하고 다산총연합 대표들을 만나 사과해야 했습니다. 사암아트홀은 다시 다산아트홀로 간판을 바꿔 달았습니다. 다산아트홀=>사암아트홀=>다산아트홀로 간판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1천2백여 만 원의 예산만 축났습니다. 동 명칭 변경과 관련해서는 시는 회의자료 초안이 홈페이지에 공개돼 입주민에게 오해를 일으켰다고 해명했습니다. 이 일은 없던 일이 됐습니다.

● 다산은 남양주시를 대표하는 브랜드

다산은 강진에서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55세에 능내리 고향으로 돌아와 저술 활동 등에 몰두하며 18년간 생활하다 75세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남양주시는 그동안 다산문화제, 다산유적지, 다산신도시 등의 이름으로 다산에 의지해 남양주 알리기에 힘을 쏟아왔습니다. 상급기관인 행정안전부는 2009년부터 [다산 목민대상]이라는 이름으로 정약용의 목민정신에 투철한 관리들을 시상하면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경기도에도 다산의 이름을 단 시설이 여러 곳 운영되고 있습니다.
[취재파일] '다산'은 안 되고, '정약용'만 된다?다산이라는 이름 자체가 인지도 높은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어 남양주시가 긍정적으로 활용할 여지가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이유로 많은 시민은 조 시장 취임 이후에 벌어진 다산 관련 시책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번 정약용문화제 시행을 놓고도 시민과의 소통 부재나 투명한 공청회 개최 등을 통한 의견수렴에 아쉬움을 지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산신도시 총연합회 이진환 회장은 "경기도의 10대 축제로 선정된 다산문화제의 명칭 변경은 시민과의 소통과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야 했다"고 했습니다. 평생을 다산 연구에 투신해 온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다산이라는 말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면 몰라도 전국적으로 사랑받는 다산을 뺀다는 것이 무슨 실익이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더구나 "역사적인 어른을 칭하면서 멀쩡한 호를 빼고 정약용만 부르는 것은 여러 가지로 맞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약용문화제는 오는 20일과 21일 이틀간 팔당댐 수변 구간과 다산유적지 일대에서 진행됩니다.

논란 속에 조광한 시장은 정약용문화제 조례안이 통과된 다음 날 시청 직원들을 모아놓고 정약용문화제가 성공적인 행사가 되도록 노력하라고 지시를 한 뒤 지난달 31일부터 시 간부와 시의회 의원이 포함된 17명의 대규모 수행단을 이끌고 15일간의 이례적인 장기 유럽 출장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