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下) - 헤어진 북미는 어느 지점서 다시 만날까?

손석민 기자 hermes@sbs.co.kr

작성 2019.03.17 11:55 수정 2019.03.17 17:5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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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국과 북한은 각각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메트로폴 호텔 회담장에서 작별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여느 정상회담 때처럼 서로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는 몸짓이었고 '노딜'의 당혹함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닌 상황이었음은 이후 양측의 기자회견과 참모들의 날 선 설전으로 명확해졌다.

정상회담이 끝난 뒤 미국과 북한은 복식조처럼 두 명씩 기자회견장에 등장해 회담 결렬에 대한 책임을 상대편에 떠넘겼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2월 28일 오후 기자회견장에서 북한의 과도한 제재 해제 요구가 결렬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가 쟁점이었다. 북한은 제재를 전체적으로 해제해줄 것을 원했다(They wanted the sanctions lifted in their entirety). 그것은 우리가 너무 많이 주는 것(That's a big give)이었다"고 말했다.

반면 북한은 미국이 무리한 대가를 요구했다고 반박했다.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29일 새벽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영변 핵시설 폐기 조치 외에 한 가지를 더 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고 따라서 미국이 우리의 제안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고 말했다. 최선희 부상은 3월 16일 평양 외신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강도 같은(gangster-like) 입장"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최선희, 리용호 (사진=연합뉴스)구체적으로 양측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1. 비핵화의 정의 2. 북한이 폐기하겠다는 영변 핵시설의 범위 3. 미국이 요구한 플러스 알파(+@)의 범위 4. 북한이 요구한 제재 해제의 범위, 크게 4가지로 요약된다.

▶ 비핵화 정의에 대해선 비건 대북 특별대표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이며, 핵연료 주기의 모든 핵심 부분 제거"라고 규정했다. 핵물질과 핵탄두 제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량 제거, 모든 대량살상무기(WMD) 영구 동결까지 해야 한다는 설명이 뒤따르는데, 이와 같은 협상의 첫 단추부터 북한과 꿰지 못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관영 언론 등을 통해 비핵화 범위는 '북한만이 아니라 조선반도 전체'라는 입장을 천명해왔다. 미군의 핵전력 역시 대상에 담아야 한다는 취지다.

▶ 영변 핵시설의 범위를 놓고도 양측의 신경전이 치열했다. 비건 대표는 "현시점에 영변과 관련한 어떤 것에도 합의된 접근은 없다. 영변에 대한 북한의 규정은 바뀌어 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선희 부상은 "영변 핵단지 전체에 대한 영구적 폐기를 제안했으며, 미국 핵 전문가들이 입회하도록 했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CNN 방송은 "정상회담 때 영변 핵시설에 대한 공동의 정의를 놓고 양측이 실랑이를 벌였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호텔을 떠날 채비를 하는 와중에 최 부상이 '영변에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들고 황급히 찾아왔다"고 보도했다.

▶ 미국이 요구한 영변 플러스 알파(+@)의 범위 역시 논란의 대상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의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기자회견에서 "영변 시설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가 발견한 다른 것들이 있다"고 다른 핵시설에 대한 폐기가 +@라는 취지로 말했다. 그런데 폼페이오 장관은 "영변 핵시설도 중요하지만 미사일, 탄두와 무기시스템이 문제로 남는다"고 북한이 보유 중인 무기체계를 +@로 설명했다. 최선희 부상은 "미국이 지나치게 많은 요구를 했고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이런 강도 같은 태도는 결국 상황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 대북 제재 해제의 범위를 놓고, 북한은 유엔 제재에서 민수 경제와 인민 생활과 직결된 건으로 한정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전체 11건 가운데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으로 북한의 석탄과 철광석 수출, 정유 수입에 대한 제재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의 말장난"이라고 일축했다. 북한의 요구는 사실상 무기를 제외한 모든 제재를 해제하라는 것으로, 이를 풀어줄 경우 수십억 달러가 북한의 추가 대량살상무기 개발 지원에 흘러 들어갈 것이라는 주장이다.
트럼프, 김정은 북미 정상회담 (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은 이렇게 의제를 둘러싼 첨예한 신경전과 함께 북미 양측의 공격 선수 교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실무 협상을 이끌었던 비건과 김혁철 대표는 자중 내지는 잠수 모드로 돌입했다. 하노이 회담 전 "북한이 모든 걸 다하기 전에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게 미국의 정책이 아니다"며 협상의 틈을 열어놓았던 비건은 회담 후에는 "모든 게 합의될 때까지 아무것도 합의될 수 없다"로 180도 돌아섰다. 비건의 카운터파트인 김혁철은 아예 하노이 회담 이후 기자회견 등 공식석상에서 얼굴을 일절 드러내지 않고 있다.

대신 양측의 대표적인 거친 입,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최선희 부상이 전면에 부상했다. 슈퍼 매파로 불리는 볼턴은 김정일 위원장을 "포악한 독재자"로 지칭하고 북한 정권 전복을 공공연히 주장해, 북한으로부터 '인간 쓰레기'라는 비난을 받은 인물이다. 볼턴은 3월 들어 10여 차례 방송에 출연하며 완전한 비핵화와 상응조치를 한꺼번에 주고받는 일괄 타결, 이른바 '빅딜'을 미국의 협상 틀로 공식화했다. 볼턴 발언 이후 비건 역시 '빅딜'이 트럼프 행정부의 원칙이라고 언급하면서 볼턴에 주도권을 내준 모양새다. 최선희도 지난해 5월 펜스 부통령을 "정치적 얼간이"로 비난하다 1차 정상회담 취소 소동을 낳았고, 최근에도 "강도 같은 태도"라며 대미 공격을 이끌고 있다.
김정은-트럼프, 북미 단독회담, 확대회담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북미 간 신경전과 말싸움의 포연이 점점 자욱해지는 상황이지만, 양측이 당장 판을 깰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탑다운 방식으로 고착된 북미 협상의 특성상 트럼프와 김정은 모두 지금 와서 파국을 선언하기엔 (서로가 보낸 친서의 숫자나 사랑하는 사이라는 표현까지 상기해보면) 서로가 잃을 게 너무나 많다. 현실적인 재회의 지점과 관련해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의 말은 귀에 쉽게 와 닿는다. 문 특보는 3월 14일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어페어스' 기고를 통해 "양쪽이 신중하고 현실적이어야 한다"면서 "북한이 '전부 아니면 전무'를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미국이 점진적 접근을 계속 꺼리면 탈출구를 마련하는 것이 어려워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2차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내놓은 제안도 실현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우라늄 농축 시설의 추가 폐기 약속 같은 제안을 더 내놓으면서 광범위한 제재 해제 대신 남북 경협 정도로 기대를 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 기자회견 내용 가운데 상대적으로 덜 부각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꺼내본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를 해제하기 전에 북한이 모든 걸 포기하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면 협상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그런 입장에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것이 포기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우리도 포기할 것이다"고 답했다. 거래를 원하는 트럼프-김정은 간에 서로가 내놓은 상품의 적정한 값과 시퀀스, 즉 선후 순서를 잘 맞춘다면 협상 테이블은 다시 차려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정부의 역할도 이 지점에 집중하되, 그동안 주요 국면에서 오보를 낳아온 주관적 낙관론에 기댄 설익은 브리핑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끝)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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