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영화는 어떻게 '역사 콤플렉스'를 극복했나?

김영아 기자 youngah@sbs.co.kr

작성 2019.03.09 08:0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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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부터 계속 입에 붙어있는 노래가 있습니다. 일을 하다가도, 거리를 걷다가도, 무의식 중에 같은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다는 걸 깨닫고 깜짝깜짝 놀라게 됩니다.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에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아가세!"

일제 강점기에 무장투쟁을 벌였던 독립군 군가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영화 담당이라 음악은 잘 모릅니다. 3.1절에 즈음해 기사(▶ 록으로 부르는 '독립군가'…당당하게 기억할 역사)를 쓰는 과정에서 이 노래를 처음 접했는데, 기사 쓰고 편집하느라 몇 차례 들었더니 쉽고 흥겨운 멜로디가 어느새 입에 붙어버린 것입니다.

● 춤추며 노래하는 '독립군가'

이 노래는 2005년 광복 60주년을 기념해 국가보훈처가 제작해서 배포한 '다시 부르는 독립군가' 13곡 가운데 하나입니다. 당시 국악인 장사익 선생과 함께 여러 대중음악 가수와 그룹들이 참여했는데, '독립군가'는 인디밴드 크라잉넛이 록으로 편곡해서 불렀습니다. 경쾌한 사운드와 함께, '록'이라는 장르와 가사에 담긴 저항정신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덕분에 13곡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졌습니다.

특히 몇 년 전부터 광복절이나 3.1절 같은 국가기념일 행사 때 이 곡에 맞춰 춤을 추는 플래시몹 영상들이 동영상 사이트에 자주 소개되면서 인지도가 급상승했습니다. 최근엔 각급 학교 체육대회나 학예회에서도 단체 안무의 배경음악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고, 노래방 기기마다 수록될 만큼 화제를 모으자 육군이 직접 '육군이 부르는 독립군가'라는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해 내놓기도 했었죠.
'육군이 부르는 독립군가' 뮤직비디오동영상 사이트에 줄줄이 올라 있는 영상들을 처음 본 소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저 같은 '기성세대'에게 '독립군가'는 아픈 역사의 산물,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과거의 증거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어린이, 학생, 청년들이 '떼샷'으로 독립군가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고 있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기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리저리 고민하고 전문가들을 만나 얘기를 들으면서 찾은 답은 '자신감'이었습니다. 일제에 맞서 독립을 외쳤던 3.1 운동 후 100년이 지났고,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은 후로도 70년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대한민국은 동북아의 가장 약하고 가난한 작은 나라에서 세계무대의 당당한 일원으로 성장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는 일제 강점기를 직접 경험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일생 동안 마음 한 켠에 똬리를 튼 '트라우마'와 '콤플렉스'에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는 어머니 아버지 세대는 부모로부터 수시로 "일제 때 말이지…."를 듣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겐 간접 경험을 통해 세습된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로부터도 자유로운 젊은 세대들은 이제 '콤플렉스' 없이 '쿨하게'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자신감과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니 '아픈 기억' 대신 아픔을 딛고 일어서게 해 준 '힘'을 더 주목하고, 그 힘을 경쾌한 멜로디에 실어 춤추며 노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래 한 곡 놓고 너무 멀리 가는 것 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음악은 잘 모른다는 영화 담당이 말이죠. 그럼 영화계도 한 번 들여다볼까요?

● '암살', 스크린의 '빗장'을 풀다

영화계에서 일제 강점기는 꽤 오랫동안 일종의 '터부'였습니다. 가끔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들이 나오긴 했지만, 공교롭게도 대부분 흥행 면에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중에는 작품성이든 오락성이든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도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계속 외면하니, 왜 그럴까? 열심히 분석한 끝에 영화계가 내린 결론은 이랬습니다. "누가 아픈 과거를 돈까지 내 가면서 곱씹어 보고 싶겠어?" 한국 관객들에게 일제 강점기는 여전히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불편한 소재라는 거지요.

영화계는 한 편에 많게는 수백억 원 거금이 오가는 곳입니다. '대박'과 '쪽박', 심지어 '폭망'이 끊임없이 교차하고, 그러다 보니 유난히 말도 많고 미신도 많고 속설도 많습니다. 자연스럽게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는 망한다'는 일종의 '공감대'가 생기면서 스크린에서 그 시절은 일종의 '출입 통제구역'이 됐습니다.
영화 '암살' 스틸 이미지굳게 잠겼던 '통제구역'의 빗장을 푼 것은 2015년 여름 시장에서 베테랑과 함께 '쌍천만' 고지에 오른 '암살'입니다. 최종 스코어는 1천2백70만 명. 우리 영화 사상 역대 흥행 순위 9위입니다. '암살'의 성공을 계기로 영화계도 관객의 '변화'를 감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제 강점기'는 무조건 안 본다"에서 "잘 만들면 볼 수도 있다"로 말이죠.

그 결과는 즉각 눈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듬해인 2016년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홍수'를 이룬 해였습니다. 그동안 '속설'에 밀려 수년째 충무로를 하염없이 떠돌던 '일제 강점기 영화'들이 '암살'의 대박 후광을 입고 줄줄이 투자자를 잡는 데 성공한 결과입니다.

흥행 성적도 꽤 좋았습니다. '밀정'이 750만 관객을 모아 2016년 개봉영화를 통틀어 흥행 4위에 올랐고, '덕혜옹주'도 560만 명으로 9위에 올랐습니다. 국내외적으로 대단한 화제 속에 428만 관객을 모았던 '아가씨'와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정면으로 다룬 '귀향'이 국민들의 십시일반 성금으로 완성돼 357만 관객을 울린 것도 같은 해입니다. 제작비 5억 원의 초저예산 영화 '동주'가 110만 관객을 모은 건 영화계 전체를 놀라게 한 2016년의 '사건' 중 하나였습니다.
좌측부터 영화 '박열', '군함도' 스틸 이미지바로 다음 해인 2017년에도 일제 강점기 배경 영화들은 이어졌습니다. 큰 화제를 모았던 '군함도'와 '박열'이 잇달아 스크린에 걸렸습니다. 성적은 엇갈렸습니다. 제작비 26억 원의 작은 영화 '박열'이 236만 관객을 모으며 크게 성공한 반면, '군함도'는 660만 관객을 모았지만 사실상 '참패'했죠. 270억 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를 들였는데 관객 수가 손익분기점에 크게 못 미친 것입니다.

2016년에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것과 비교해 2017년엔 양적으로도 적었고, 흥행 성적도 엇갈렸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2016년의 '홍수'는 빗장이 열리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일제 강점기 영화'들이 쌓여있었는지를 실감하게 합니다. '콤플렉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빛을 못 보고 사라질 뻔한 영화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엇갈린 흥행 성적은 일제 강점기를 대하는 관객들의 변화가 맹목적인 '애국심'이 아니라 냉철하고 날카로운 '관객의 시선'에 기반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일제 강점기를 다뤘다는 이유로 무조건 외면하지는 않지만, 잘 만들지 못했는데 무조건 봐 주지도 않겠다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태도. '일제 강점기 영화'를 오로지 영화 자체로 대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관객들의 등장은 우리 관객들이 '일제 강점기 콤플렉스'를 벗어났다는 가장 확실한 반증입니다.

● '일제 강점기 영화'의 진화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서 올해도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선열들의 저항정신을 담은 영화들이 많습니다. 조선어학회 사건을 모티브로 우리말 사전 편찬 과정을 담은 '말모이'가 280만 관객을 모아 선전했고, 제작비 10억 원에 불과한 작은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조만간 100만 관객 돌파가 유력해 보입니다. 다음 주엔 유관순 열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1919 유관순'이 개봉합니다. 여기에 흥행 성적은 아쉽지만 일제 강점기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자전차왕 엄복동'까지.

올해 '일제 강점기 영화'들 속에 두드러지는 '트렌드'는 '민중'입니다. 그동안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크게 두 종류였습니다. 하나는 독립투사, 의열단원 등 앞장서서 일제에 저항했던 이들에 초점을 맞춘 영웅담입니다. 또 하나는 위안부 할머니들, 덕혜옹주, 윤동주 시인처럼 시대의 고통을 최전선에서 받아 안아야 했던 상징적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다릅니다. 저마다 유관순, 엄복동, 조선어학회 같은 '리더'를 앞세우고 있긴 하지만, 영화 속에서 이들과 함께 저항을 이어가고 이들의 저항과 노력을 완성시켜주는 이들은 평범한 민중들입니다. 카메라는 몇몇 영웅이나 위인만이 아닌,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 그 시대의 '시대정신'을 만들어낸 보통 사람들의 역사에 똑같이 포커스를 맞춥니다. 자유 못지않게 평등이, 집단과 권위보다 개인의 가치가 강조되는 오늘의 '시대정신'이 반영된 결과겠지요.
3 ·1 운동 임시정부 100주년음악이든 영화든 창작자들에게 일제 강점기는 무척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정치적 격동뿐 아니라 근대와 현대가 교차하고,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뒤섞여 역동적으로 끓어오르던 용광로 같은 시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콤플렉스'를 떨쳐내고 자신감으로 무장한 새로운 관객의 등장으로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들이 쌓여 있는 보물창고가 활짝 열렸습니다.

이제 공은 만드는 이들에게 넘어갔습니다. '잘 만들기' 위해서는 제작자들 역시 '콤플렉스'의 장벽을 넘어야 합니다. 구태의연한 '애국심 마케팅'이나 이른바 '역사 팔이'로 '트라우마'를 자극해 대충 슬쩍 넘어가 보려는 안일한 태도는 어렵게 열린 보물창고의 문을 스스로 닫는 셈이 될 것입니다. 빗장이 풀린 지 불과 2~3년 사이 '일제 강점기 영화'들이 보여준 '진화'는 우려보다는 기대를 훨씬 더 갖게 합니다. 기분 좋은 설렘을 품고 계속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