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사법농단 수사 이후의 법조계 - 검찰 편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작성 2019.03.06 11:10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나도 수사에 참여하는 게 부담스럽다. 수사 대상 판사들 중에 아는 사람도 많은데, 수사에 참여하면서 인간관계가 거의 끊겼다. 검사 마치면 변호사 개업해야 되는데, 법원이 이번 수사에 참여한 사람들 이후에 불이익 주지 않을까. 그럼 밥줄 끊기는 거다." (A 검사)

사법농단 수사에 대해 일부 판사들은 검찰이 꽃놀이패를 쥐게 됐다고 평가했다. 영장과 판결로 검찰을 견제해 왔던 법원에 대해 검찰이 메스를 댈 수 있게 됐으니, 딱히 틀린 평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 수사에 참여했던 검사들은 부담감을 토로했고, 수사에 진력을 다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검사가 밤낮없이 이어진 수사로 쓰러졌었던 게 한 단면이다.
검찰● 사법농단 수사 그 후…다가온 검찰의 시간

사법농단 수사가 검사 개인의 부담과 고생과는 별개로 검찰 조직 차원에선 호재로 작용했던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검사 개개인은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고 할 수 있지만, 검찰 조직으로선 검찰 개혁에 대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관심을 법원으로 돌릴 수 있는 기회가 됐던 게 사법농단 수사였다.

'수사로 위기를 돌파한다'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검찰은 참여정부 시절에도 대선 자금 수사로 검찰 개혁이라는 조직적 위기를 돌파한 적이 있다. 자의든 타의든 사법농단 수사도 마찬가지였다. 대선 공약에서 권력 기관 개혁 첫머리에 검찰 개혁을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지만, 사법농단 수사 기간 동안 정치권과 여론의 관심은 검찰 개혁이 아닌 사법부 개혁이었다.

하지만, 법원의 시간이 끝나고 이제 검찰의 시간이 오고 있다. 4일 전현직 판사들에 대한 추가 기소로 '법관 탄핵' 등에 대한 여론이 일면 잠시 검찰의 시간이 오는 걸 유예할 수는 있겠지만, 다가오는 검찰의 시간을 막을 수는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사법농단 수사 기간 동안 미뤄놨던 검찰 개혁이라는 숙제를 꺼내 들고 있다. 핵심은 검경 수사권 조정이다.

● 개혁 대상이 말하는 검찰 패싱론

지난해 6월, 정부는 검경 수사권 조정 정부 합의안을 발표했다. 검찰 내부에선 합의안 마련 국면에 검찰이 철저히 소외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검찰의 입장을 대변해 줘야 할 법무부 장관이 검찰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취지다.
2018년 6월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 서명식에서 경과 설명을 하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검찰 개혁 논의에서 검찰은 개혁의 대상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양손에 쥐고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둘러 온 검찰의 권한을 어떻게 줄일지가 수사권 조정 논의의 핵심이다. 이럴진대 개혁의 대상인 검찰이 개혁의 주체인 양 자신들의 목소리가 논의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건 난센스다. 검찰이 자신들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해 왔다면, 검경 수사권 조정, 나아가 검찰 개혁 논의는 애초에 시작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개혁의 대상이 개혁의 주체가 되는 현실을 부정할 수만은 없다. 사법농단 사태로 폐해가 극명하게 드러나 법원행정처가 행정처 개혁 방안을 스스로 내놓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아이러니하지만, 그 조직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측에 해당 조직의 개혁의 길을 묻고 있는 게 현실이다.

● 검찰이 자초한 검찰 개혁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서 검찰은 현실을 말한다. 축소된 검찰의 권한을 상당 부분 가지게 될 경찰을 '우리가 경험해 봐서 안다'고 많은 검찰 관계자들은 말한다. 경찰이 완전한 1차적 수사권을 가지게 될 경우, 통제받지 않는 경찰의 권한 행사로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 될 것이라는 엄포도 들여온다. 수사 기능과 정보 기능을 같이 가지고 있는 건 한국 경찰밖에 없다며, 수사 경찰과 정보 경찰의 분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수사권 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당위적으로 옳은 이야기다. 문제는 시점이 적절치 않고, 발화자가 검찰이라는 것이다. 수사 기능과 정보 기능을 한데 가지고 있는 경찰의 문제점을 검찰은 왜 자신들의 권한이 축소될 위기인 지금에서야 제기하는 것일까. 경찰을 통제해 왔던 그동안의 검찰은 국민에게 피해를 끼치지는 않았나. 거악 척결이라 구호에 매몰돼 소악 척결은 뒷전으로 내몰아 국민을 눈물은 닦아주지 않은 것 아닌가. 이런 질문에 검찰은 당당할 수 있을까.

검찰 관계자 중에선 퇴직 후 변호사를 할 수 있는 '법률가'인 검사는 퇴직 후 마땅히 할 것 없는 경찰에 비해 외풍에 잘 흔들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한다. 검찰은 경찰과 다르다는 건데, 이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가깝다. 지금껏 수사 외압에 직을 던지고 나간 검사가 몇 명이나 되나. 지금까지의 검찰 역사는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검찰의 모습을 보여줬나. 이에 대한 답은 검찰 스스로가 알고 있을 것이다.
검찰● 말과 행동이 다른 정부와 청와대

검찰 개혁을 위해선,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기 위해선 검찰의 존재감 또한 축소되어야 한다. 검찰의 존재감이 부각될수록 검찰 개혁 논의는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과거 그리고 최근, 검찰이 수사로 위기로 돌파하거나 유예할 수 있었던 건, 수사를 통해 검찰의 존재감이 부각된 결과다.

정부와 청와대는 검찰 개혁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행동은 반대로 가고 있다.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 논의의 장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검찰로 가져가며 검찰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논쟁을 통해 정리해야 할 문제를 수사를 통해서, 그것도 굳이 경찰이 아닌 검찰의 문을 두드리며 정리하려 하고 있다. 신재민 전 사무관의 폭로에 대한 정부의 고발, 김태우 전 수사관의 폭로에 대한 청와대의 검찰 고발이 그것이다.

말로는 검찰 개혁을 바란다지만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까지 검찰 수사에서 답을 찾으려는 모습들. '역시 믿을 건 검찰밖에 없다', '우리가 문제 해결의 키를 쥐고 있다'는 생각을 검찰에 심어줄수록 온전한 검찰 개혁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