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안경 선배' 김은정이 임신 사실을 밝히지 못했던 이유

이정찬 기자 jaycee@sbs.co.kr

작성 2019.03.05 17:00 수정 2019.03.05 17:5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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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컬링 '팀킴'의 주장 김은정은 이제 두 달 남짓이면 엄마가 됩니다. 거꾸로 헤아려보면 지난해 11월 SBS와 만나 지도자 가족의 갑질 의혹을 처음 밝혔던 때, 이미 임신을 했던 겁니다. 안정을 취해야할 임신 초기에 용기를 내 폭로를 했고, 이후 지도자들의 반박, 이에 대한 재반박 기자회견, 이후 정부의 특정 감사를 겪었습니다. 김은정은 최근 SBS와 다시 만나 "태교는 거의 포기했었다"면서 "그래도 요즘은 다시 컬링을 하며 행복하니 아이도 좋아할 것 같다"며 웃었습니다.지난해 11월 첫 폭로 후 지도부의 반박문이 나오자 선수들은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악플과 허위 소문이 가장 힘들었다"

폭로 이후 4개월. 팀킴을 가장 힘들게 한 건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확산 되는 악성 루머였습니다.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과 김민정·장반석 감독 부부에게 인권을 침해당했다는 선수들의 주장에 느닷없이 배후설이 제기됐습니다. '김경두 씨 가족과 갈등을 빚은 의성군, 또는 특정 세력이 뒤에서 폭로를 부추겼다'는 등 선수들은 진정성을 의심받았습니다. "상금과 격려금 등이 투명하게 쓰이지 않았다"는 얘기를 꺼내자 "돈 때문에 키워준 지도자를 배신했다"는 악성 댓글이 달렸습니다.
팀킴 폭로 배후설 등은 이른바 '지라시' 형태로 카톡을 통해 빠르게 확산됐습니다.지난달 전국체전에서 성공적으로 복귀전을 치른 뒤에도 상처 주는 말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출산을 앞둔 김은정 선수가 후보 선수로 빠진 것을 두고 "결국 포지션 변경을 시도한 감독이 옳았다" "그냥 나오지 마라"는 등 가시 돋친 활자가 게시됐습니다. 김은정은 "결과적으로 제가 임신을 했으니 그렇게 보실 수도 있겠다"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 "임신 전부터 팀에서 빼려 했다"

평창 올림픽 뒤 지도부는 선수들과 의논 없이 포지션 교체를 단행했습니다. 임신 전부터 김은정 선수를 팀 훈련에서 제외하기도 했습니다. 선수들은 이유를 듣지 못했습니다. 컬링은 팀워크가 절대적입니다. 국가대표 지도자가 선수 선발권을 행사해 대표팀을 꾸리는 축구, 야구 같은 종목과 달리 선발전에서 우승한 팀이 그대로 태극마크를 다는 배경입니다. 따라서 포지션이나 선수 구성 변경과 같은 중대한 일은 충분한 소통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팀킴이 이의를 제기했을 때 지도자들은 폭언과 욕설로 윽박질렀습니다.

"하겠다, 못 하겠다? 개 뭐 같은 X"


일방적인 팀 개편 지시에 김초희 선수가 '더 이상 못 하겠다'고 하자 김경두 씨는 "도리가 아니다"며 다른 선수 앞에서 욕을 했습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팀을 운영하고, 지도자로서 팀 개편을 주도할 권한이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사실상 감독이었던 김 전 부회장은 팀킴의 소속팀 경북체육회에서 따로 맡은 직책이 없습니다. 김민정 감독은 선수로, 장반석 감독은 트레이너로 계약돼 있습니다.

지도자들은 ▶김은정이 임신을 준비했기 때문에 팀을 새롭게 꾸릴 수밖에 없었고, ▶'팀킴은 5명일지 모르지만 경북체육회에는 7명의 여자 선수가 있기' 때문에 최적의 새 조합을 찾으려 했다고 합니다. 선수들은 김은정의 임신 계획을 구실로 팀킴을 와해하려 했다고 반박합니다.

● "반복되는 팀 와해 과정…팀킴 전에도 있었다"

팀킴은 "올림픽 뒤 팀이 더 성장하는 걸 지도부가 원치 않는 것 같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지도부는 지난해 8월 국가대표 선발전을 비롯해 국제 대회 출전을 만류했습니다. 김경두 씨가 사실상 컬링장을 사유화한 탓에 선수들은 마음껏 훈련하지 못했습니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만 초청받는 그랜드 슬램에 연거푸 불참하며 팀킴의 세계랭킹은 20위 밖으로 급락했습니다. 선수들은 초조해졌습니다.

앞서 경북체육회 선수들의 전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3년 동계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컬링 사상 첫 국제대회 금메달을 딴 남자대표팀의 스킵은 이후 팀에서 제외됐습니다. 컬링을 계속 하고 싶어 경기장 건설에 무보수로 힘을 보탰지만 김경두 씨는 다른 선수를 중심으로 새 팀을 꾸렸습니다. 그 빈자리를 메운 다른 선수 역시 몇 년 뒤 쫓겨나다시피 고향 의성을 떠나게 됐습니다.

이렇게 국내외에서 준수한 성적을 내고도 경북체육회를 떠난 남녀선수들이 십여 명입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A선수는 "팀킴이 겪은 과정을 우리도 똑같이 겪었다. 김씨 일가는 팀이 입상(入賞)을 하면 '머리가 커졌다'고 여기고 말 잘 듣는 어린 선수 중심으로 팀을 마음대로 재편한다"고 말합니다. "사실상 국내 유일한 컬링장을 김 씨 일가가 독점했기 때문에 일부 주축 선수가 빠지더라도 2~3년 이면 팀을 재건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선수들은 '다른 팀으로 이적도 김경두 씨가 방해해 쉽지 않았다' 털어놓았습니다.

● "베이징! 다시 꿈꿀 수 있어 행복하다"

평창 올림픽이 끝난 뒤 팀킴은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김은정 선수가 결혼과 임신을 서둘렀던 이유도 2022년을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김영미 선수가 올 하반기로 예정했던 결혼을 이달로 당긴 것도 그래서입니다. 7월에 국가대표 선발전이 예정되면서 전력 공백을 최소화하려는 겁니다.
[취재파일] '안경 선배' 김은정은 왜 임신 사실을 숨겼을까?김은정 선수는 "베이징을 바라보고 애들도 다 동의해서 임신·출산 계획을 세웠는데 막상 팀을 비우게 되니 애들에게 큰 짐을 지우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시기를 거치며 우리는 더 단단해질 수 있다. 최대한 빨리 돌아와서 팀에 도움 되는 있는 역할을 잡겠다"며 의지를 다졌습니다. 친구 김영미 선수는 "팀킴으로서 베이징 올림픽을 도전한다는 큰 꿈을 다시 꾸고 있다"고 했습니다. 새로 스킵을 맡게 된 '영미 동생' 김경애 선수는 "동계체전에서 첫 단추를 잘 끼웠다고 생각한다"고 했고 '경애 친구' 김선영 선수는 "다시 차근차근 베이징을 향해 준비하겠다"고 거들었습니다. 막내 김초희 선수는 "언니들과 같이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앞으로 같이 할 날이 많기 때문에 희망적이고, 더 즐거울 것 같다"며 밝은 미래를 그렸습니다.

최근 정부 감사 결과 선수들의 주장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난 가운데, 선수들에게 기분 좋은 소식이 또 나왔습니다. 월드컬링투어(WCT)가 5월 러시아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팀킴 선수들을 초청한 겁니다. 선수들은 흔쾌히 참가 의사를 밝혔고, 지난해 3월 세계선수권 이후 1년 2개월 만의 국제대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