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북한의 과거·현재·미래 핵, 그리고 영변의 몸값은?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9.03.04 08:5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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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영변 핵 시설의 완전한 폐기'를 내놓고 미국에 '유엔 제재의 민간 부문 해제'를 요구했습니다. 미국은 "민간 부문의 해제는 제재 전면 해제와 같은 효과가 생긴다"며 '영변+α'를 제시했습니다. 북한 이용호 외무상은 "미 측이 영변 외에 한 가지를 더 원했다"고 말했고,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두 번째 우라늄 농축 시설과 핵탄두, 미사일 등 여러 가지를 언급했습니다.

유례없는 정상회담 결렬이라고들 하지만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언젠가 닥칠 순간이었습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관련 시설과 장비, 인력은 너무나 많습니다. 북한 비핵화는 그동안 북한이 꽁꽁 숨겨왔던 핵과 미사일 관련 시설들을 모두 공개하고 동결을 넘어 완전 폐기하는 것입니다. 구글 맵으로도 훤히 다 보이는 영변 핵 시설은 비핵화 대상 중 좀 중요하기는 해도 뻔한 하나에 불과합니다.

북한이 유엔 결의안과 미국 행정명령으로 부과된 대북 제재의 해제, 종전선언, 북미 관계 정상화 등 비핵화 반대급부를 받아내려면 완전한 비핵화를 이행해야 한다는 게 베트남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영변만이 아니라 북한 전역에 산재한 핵과 미사일을 단계적으로라도 모조리 없애야 합니다. 그럼 북한의 과거, 현재, 미래 핵의 실체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요?

● 영변의 가치는?

영변 핵 시설은 여의도 3배 면적에 원자로, 연구소 등 건물 400동이 들어서 있는 거대 단지입니다. 1963년 소련으로부터 IRT-2000 연구용 원자로가 들어갔고 1986년부터는 5 메가와트 원자로가 가동됐습니다. 사용 후 핵연료에서 핵폭탄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재처리시설은 1989년부터 가동됐습니다. 북한은 핵실험 때 쓰고도 현재 50kg 정도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0년엔 세계적인 핵물리학자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가 방북해 영변에서 우라늄 농축시설을 확인했습니다. 북한은 영변에 원심분리기 2,000대를 가동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플루토늄처럼 핵폭탄의 핵심 재료로 쓰이는 고농축우라늄(HEU)도 영변에서 추출됐습니다.

북한은 이런 영변을 외국 전문가 입회 하에 통째로 폐기할 테니 민생 관련 유엔 제재 5건을 풀어달라고 미국에 요구했습니다. 유엔 결의안 2270호, 2371호, 2375호, 2397호입니다. 북한 은행 지점의 해외 설치 금지, 북한의 항공유·정유제품 수입 제한, 북한의 석탄·철·납·수산물 수출 금지 등을 해제하는 것과 영변 폐기를 맞바꾸자는 겁니다. 북한의 생각하는 영변의 가치입니다.

영변의 가치는 누구도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습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지난달 27일 미국에서 열린 한 간담회에서 "가령 북에서 영변 영구 폐기 같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고 하면 우리 입장에서는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면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영구 폐기한다면 제재 완화 보상을 충분히 받을 만하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미국도 뭔가 내놔야 할 테니 영변의 가치를 높게 보는 시각입니다.

하지만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책임분석관은 "핵물질은 절대적으로 비밀리에 제조한다"며 "한미 군 당국뿐 아니라 핵 전문가들도 위성으로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영변은 더 이상 비밀 시설도 아니고 그저 과거의 핵 기록일 뿐"이라고 폄하했습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번에 북한이 풀어달라고 한 제재는 전체 대북 제재 가운데 90%에 달한다"며 "영변은 그렇게 비싸지 않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북한은 2016년 3월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의 비밀 핵 시설들은 얼마나 있나?

북한의 핵은 몇 가지 기준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을 추출하는 모든 과정과 관련된 핵 시설입니다. 영변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각종 사거리의 미사일과 기지, 발사 차량, 미사일·차량 공장, 핵탄두 등 무기체계도 별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핵 능력, 미래의 핵으로도 나눕니다.

한미 군 당국은 북한의 핵 시설을 줄잡아 30곳 이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하노이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영변 이외의 우라늄 농축 시설'도 몇 곳 있습니다. 평양에서 16km 떨어진 강선 핵 단지가 그 하나이고, 영변 서쪽 장군대산 지하 시설도 의심 대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함흥 정련공장, 신포 원자력 발전소, 사리원 남서쪽 우라늄 광산도 있습니다.

미사일 기지는 북한 전역에 20곳 가까이 있습니다. 북중 접경 지역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기지들이, 동해안 쪽에는 중거리미사일 기지들이, 휴전선 이북에는 중단거리 미사일 기지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작년 말 미국의 싱크탱크들이 지목했던 삭간몰, 갈골 등이 모두 이런 장소입니다. 기지 근처 벙커에는 각 사거리별 미사일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평양 옆 산음동 병기 공장 같은 미사일 조립생산 공장도 비핵화 대상입니다. 참 많습니다.

가장 심각한 건 미사일에 바로 장착할 수 있는 핵탄두입니다. 북한은 현재 15~60개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소가 15개이고 최대 60개, 이렇게 추정치의 편차가 크다는 건 북한이 핵탄두 몇 개를 갖고 있는지 불분명하다는 방증입니다. 미국의 랜드연구소는 지난 1월 "북한이 2020년이면 최대 1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영변이 북핵의 과거와 미래라면 핵탄두는 북핵의 현재입니다. 미사일에 올려놓으면 바로 핵 미사일입니다. 위협도만 따져도 영변의 몇 배입니다. 북한이 핵탄두를 어디에 얼마나 숨겨놨는지, 북한이 그것을 솔직하게 공개할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북미 비핵화 협상의 최대 고비는 핵탄두입니다. 영변이 아닙니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하노이 기자회견에서 핵탄두를 강조하며 미국의 비핵화 목표를 분명히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