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버나움', 1살 아기 '요나스' 열연 어떻게 가능했나

SBS 뉴스

작성 2019.02.14 13:0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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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가버나움, 1살 아기 요나스 열연 어떻게 가능했나
"'액션!'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영화 '가버나움'을 보면 두 번 놀라게 된다. 첫 번째 레바논 빈민가의 참담한 현실에 놀라고, 두 번째는 영화를 통해 삶을 보여준 비전문 배우들의 열연에 또 한 번 놀란다.

영화에 출연한 대부분의 배우들이 연기 경력이 전무한 것을 고려하면 연기하지 않은 연기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된다. 남자 주인공 '자인'(자인 알 라피아)의 열연이야 두 말할 것도 없이 뛰어나지만 이에 못지않은 건 아기 '요나스'(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의 천진난만한 연기다.

세상의 모든 감독이 입을 모아 말하는 난제 중 하나는 아기와 동물의 연기 디렉팅이다. 감독과 배우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감독은 마냥 때를 기다리거나 반복해서 찍는 두 가지 선택 밖에 없다.

'가버나움'에서 '요나스'를 연기한 배우는 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이다. 촬영 당시 만 1살이었다. 영화에서는 남자아이로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여자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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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자인 '라힐'(요르다노스 시프로우)은 우연히 집을 나온 '자인'(자인 알 라피아)을 만나고, 자신이 일하는 동안 어린 아들 '요나스'(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을 맡긴다. 이미 많은 동생을 돌 본 경험이 있는 자인은 요나스를 능수능란하게 돌본다.

요나스는 영화에서 기적을 보여준다. 엄마의 부재를 알아차린 듯 울고, 설탕 얼음을 물리면 울음을 그친다. 발을 묶은 후 자인이 달아나자 차가 오가는 도로변으로 위험천만하게 발길을 뗀다. 젖먹이 아기지만 마치 약속된 것 같은 연기를 보여줬다.

영화를 연출한 나딘 라바키 감독은 보루와티프에 대해 "나도 너무나 신기했다. 장면에 맞는 연기를 위해서는 찍고 또 찍는 방법밖에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내가 원하는 연기를 보여줬다"라고 전했다.

'요나스'의 신통방통한 연기를 보면 촬영장이 어땠을지 도무지 상상이 안 간다. 케냐인이지만 레바논에 불법 체류 중인 부모 아래 태어난 보루와티프는 영화 찍을 당시 이름도 없었다. 촬영 중 친부모가 체포되기도 했다. 감독은 3주 동안 보루와티프와 살며 보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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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딘 라바키 감독은 전문 배우가 '가버나움'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해 길거리 캐스팅으로 주요 배우를 뽑았다.

이들은 다른 누군가를 연기하거나 흉내 내지 않았다. 자신이 실제 처한 환경과 다를 바 없는 영화 속에서 또 다른 분신을 연기했다.

'가버나움'은 기획부터 완성까지 4년, 촬영에만 6개월을 쏟은 대장정이었다. 감독과 제작진은 연기 경력이 없는 배우들과의 촬영을 위해 장장 6개월 동안 500시간이 넘는 촬영본을 만들었다. 현장에서 '액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카메라는 자연스럽게 돌아갔고, 인물들을 담아낼 뿐이었다.

나딘 라바키 감독이 영화를 찍을 당시 자인 알 라피아는 실제로 신분증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글도 읽지 못했다. 감독은 장면 장면을 설명했고, 자인은 자신이 겪은 것과 다르지 않은 감정을 카메라 앞에서 표현했다.

라힐 역의 요르다노스 시프로우는 칸영화제 참석 당시 가장 힘들었던 촬영으로 '감옥 신'을 꼽았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감독님에게 감사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이 인물을 통해 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제가 연기한 '라힐'이 극중에서 울 때 제 자신도 울고 있었어요. 진심이었으니까요. 체포되는 장면을 찍고 삼일 뒤 실제로 잡혔었거든요"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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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의 한국 상영판에는 원본에 없는 사족이 있다. 엔딩 크레딧에는 배우들의 근황이 자막으로 더해졌다.

영화를 수입배급한 그린나래미디어 임진희 팀장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처음으로 상영한 후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냐는 문의가 정말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아이들의 근황을 알리고 감독이 이끌고 있는 가버나움 재단을 알리는 차원에서 자막을 넣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감독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흔쾌히 좋다고 해서 한국 상영 버전에만 자막을 넣었다"라고 전했다.

'가버나움'을 보고 나면 관객이 가질 물음표에 희망의 소식을 전한 셈이다.

영화 촬영 후 자인 알 라피아는 유니세프의 도움을 받아 노르웨이에 정착했으며, 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은 케냐로 돌아갔다. 나딘 라바키 감독은 촬영 이후 '가버나움' 재단을 만들어 영화에 출연한 아이들과 가족에게 지속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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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향한 '난민 포르노'라는 일부 해외 언론의 시각은 옳지 않다. 나딘 라바키 감독은 비극적이거나 끔찍한 장면을 최소화하는 사려 깊은 연출을 구사했으며, 영화를 통해 인권에 대한 폭넓은 문제 제기를 했다.

빼어난 연기로 칸영화제를 넘어 세계를 놀라게 한 자인 알 라피아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다. 이 친구의 연기를 앞으로도 볼 수 있을까.

영화 관계자는 "자인은 '새를 키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라고 전했다.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를 원망했던 아이가 이제 꿈을 꾸고 있다.

"영화의 힘을 믿는다"라고 했던 나딘 라바키 감독이 '가버나움'을 통해 만들어낸 기적이다.

지난 1월 21일 국내 개봉한 '가버나움'은 누적 관객 수 10만 돌파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시작된 수상(심사위원상) 레이스가 오는 2월 24일 열리는 제9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으로 이어질지도 관심이 모아진다.



(SBS funE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