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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도쿄올림픽 희망 쏜 '도마 요정' 여서정

[취재파일] 도쿄올림픽 희망 쏜 '도마 요정' 여서정
● 여서정 세계선수권 도마 5위…한국 여자 선수 역대 최고 성적

한국 여자 기계체조의 희망 여서정 선수(16세, 경기체고)가 지난 2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세계 기계체조선수권 여자 도마 결선에서 5위를 차지했습니다. 한국 여자 선수로는 역대 최고 성적입니다. 이전까지는 2010년 세계선수권에서 도마의 조현주 선수가 한국 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결선에 올라 6위를 차지했는데, 여서정이 8년 만이자 역대 두 번째로 종목별 결선에 올라 5위를 차지하며 조현주를 넘어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둔 것입니다.

여서정은 1990년대 '도마의 신'으로 불렸던 여홍철 경희대 교수의 딸입니다. 여홍철 교수는 자신의 이름을 딴 신기술 '여1'과 '여2'를 앞세워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과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을 2회 연속 제패했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던 세계 정상급 선수였습니다. 이제 그의 딸 여서정이 대를 이어 한국 여자 기계체조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갈 기세입니다.
여홍철-여서정 부녀
여서정은 시니어 무대 데뷔 첫해인 올해 도마 종목에서 눈부신 성적을 거두며 단숨에 한국 여자 기계체조의 희망으로 떠올랐습니다. 지난 6월 포르투갈 월드 챌린지컵에서 한국 여자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우승했고,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여자 선수로는 32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아시아 무대를 제패한 기세를 몰아 이번 세계선수권에서도 메달권에 바짝 다가갔습니다. 올림픽과 함께 세계 최고 권위의 대회인 세계선수권에서 국제 경쟁력을 입증하며, 2년 후 2020년 도쿄올림픽에 대한 희망도 키웠습니다. 여서정은 "도쿄올림픽 메달이 선수 인생의 목표"라고 말했는데, 이것이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에 증명했습니다.

● 예선 3위…아쉬웠던 결선의 착지 실수

사실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5위는 여서정에게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성적이었습니다. 예선에서 3위를 차지하며 8명이 겨루는 결선에 올라, 세계선수권 사상 첫 메달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였기 때문입니다. 여서정은 이번 대회 예선과 결선에서 모두 1, 2차 시기에서 같은 기술을 구사했습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 구사했던 기술로 여서정 본인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기술입니다.

1차 시기는 도마를 앞으로 짚은 뒤 공중에서 한 바퀴 반을 비트는 기술(난도 5.8), 2차 시기는 땅을 먼저 짚은 뒤 구름판을 굴러 뒤로 두 바퀴를 비트는 기술(난도 5.4)입니다. 예선에서는 착지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해서 1차 시기 14.566점, 2차 시기 14.400점으로 1, 2차 시기 평균 14.483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결선에서는 두 번 모두 착지에서 실수를 했습니다. 1차 시기에서는 한 발이 선 밖으로 나가 0.1점을 감점당했고, 2차 시기에서도 몸의 중심이 앞으로 쏠리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취재파일] 도쿄올림픽 희망 쏜 '도마 요정' 여서정
결국 1차 시기 14.533점, 2차 시기 13.933점으로 1, 2차 시기 평균 14.233점을 받았습니다. 예선 때보다 평균에서 0.25점이 낮게 나왔습니다. 예선에서 앞섰던 알렉사 모레노(멕시코)와 옥사나 추소비티나(우즈베키스탄)에 밀리며 시상대 위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3위 모레노(14.508점)에 0.275점 뒤졌고, 4위 추소비티나(14.300점)와는 0.067점 차에 불과했습니다.

이정식 여자 기계체조대표팀 감독은 "여서정이 이렇게 큰 무대가 처음이라 결선에서는 다소 긴장한 것 같다"며 "특히 2차 시기에서 착지 실수로 13점대를 받은 것이 치명적이었다"며 아쉬워했습니다. 그래도 처음 출전한 세계선수권에서 결선에 올라 5위라는 성적을 거둔 것은 대단하다며 희망을 얘기했습니다.

● 희망과 함께 숙제도 확인…난도를 높여라!
[취재파일] 도쿄올림픽 희망 쏜 '도마 요정' 여서정
이번 세계선수권을 통해 여서정은 희망과 함께 숙제도 확인했습니다. 도쿄올림픽에서 메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술의 난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대회 도마에서 1위를 차지한 미국의 '체조 여신' 시몬 바일스는 결선 1, 2차 시기에서 6.0, 5.8의 난도를 각각 구사했습니다. 난도 점수 합계가 11.8점으로, 여서정(11.2점)보다 0.6점이 높았습니다. 난도 점수는 스타트 점수로, 이는 곧 바일스가 여서정보다 0.6점을 앞선 상황에서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바일스는 현재 여자 기계 체조에서 세계 최고의 스타로 꼽히고 있고, 이번 대회에서도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로 31년 만에 세계선수권에서 전 종목 메달을 획득했습니다.

도마에서도 차원이 다른 연기로 15.366점을 받아 2위인 캐나다의 샬런 올센(14.516점)을 무려 0.85점 차로 제치고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도쿄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이 유력한 바일스는 제쳐두더라도, 여서정이 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이번에 2위를 차지한 올센과 3위에 오른 모레노(멕시코)는 넘어야 합니다. 현재 여서정은 이들보다 난도 점수에서 뒤집니다.

이번 대회 결선에서 올센은 6.0, 5.4, 모레노는 5.8, 5.6의 기술을 구사했습니다. 여서정은 이들보다 난도 점수 합계에서 0.2점이 뒤집니다. 이정식 감독은 "이 정도는 착지에서 뒤집을 수 있는 차이"라고 말했습니다. 단 여서정이 착지를 완벽하게 하고, 상대 선수들이 착지에서 삐끗했을 때 얘기입니다. 이번처럼 여서정이 착지에서 실수하고, 상대 선수들이 착지를 무난하게 할 경우에는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취재파일] 도쿄올림픽 희망 쏜 '도마 요정' 여서정
이런 상황을 알고 있기에 여서정은 현재 두 가지 기술 모두 난도를 높이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재 구사하고 있는 기술에서 반 바퀴(180도)를 더 비틀어 난도를 0.4점씩 올리는 것입니다. 도마를 앞으로 짚은 뒤 공중에서 두 바퀴를 비트는 기술을 준비하고 있는데, 성공해서 국제체조연맹으로부터 신기술로 인정받을 경우 '여서정'이라는 이름이 붙게 됩니다. 난도는 현재 5.8에서 6.2점으로 높아지게 됩니다.

이럴 경우 현재 바일스가 구사하고 있는 6.4점짜리 기술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난도의 기술이 되는 것입니다. 여서정은 또 땅을 먼저 짚은 뒤 구름판을 굴러 뒤로 두 바퀴 반을 비트는 기술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성공할 경우 난도는 현재 5.4에서 5.8점으로 높아지게 됩니다. 여서정이 두 가지 기술을 모두 업그레이드할 경우 난도 점수 합계는 12.0점이 되어, 올센과 모레노를 압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바일스와도 충분히 겨뤄볼 만한 상황이 됩니다. 어떻게 보면 만화 같은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이정식 감독은 "반 바퀴를 더 돌고 비트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며 "특히 여자 선수들 같은 경우는 힘과 근력이 남자 선수들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데 몇 년이 걸리고 그래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며 조심스러워 했습니다. 그래도 도쿄올림픽을 바라보고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경쟁자들도 새로운 기술을 연마해서 도쿄올림픽에 들고나올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특히 올해는 여서정이 아시안게임과 전국체전, 세계선수권 등 연이어 대회에 출전하느라 새로운 기술을 연습하고 시도할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며 내년에는 '여서정'이라는 신기술이 공인받을 수 있도록 기술 연마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여서정은 올해 인상적인 시니어 무대 데뷔 시즌을 치르며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 여서정의 도쿄올림픽 메달을 향한 질주에도 더욱 탄력이 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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