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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콘 모자이크

지중해 문명기 5권BR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BR(At of Mosaic and G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1장. 모자이크의 역사 1. 콘 모자이크오늘

--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1장. 모자이크의 역사

1. 콘 모자이크--오늘 이야기

2. 페블 모자이크

3. 오푸스 시그니눔

4. 오푸스 테셀라툼

5. 오푸스 섹틸레

6. 오푸스 무세움

7. 흑백 모자이크

8. 북아프리카 모자이크

9. 기독교 모자이크

10. 모자이크 기법

 

1. 콘 모자이크(Cone Mosaic)

 

◆1. 페르가몬 박물관

이국적인 모자이크(Mosaic)탐방. 역사부터 간단히 더듬는 게 순서다. 모자이크란 쉽게 자갈이나 대리석, 석회석, 도자기 파편, 유리등을 잘게 조각낸 뒤 건물 바닥이나 벽에 촘촘히 붙여 특정 모양을 표현하는 예술장르를 가리킨다. 유사한 기법으로 처음 제작된 모자이크의 남상(濫觴)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C 2천년 수메르 왕궁 유적의 기둥에 모자이크 기법을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 모자이크의 기원(The origin of mosaic)으로 평가된다. 이후 B.C 8c 아나톨리아(터키의 아시아 영토) 후기 히타이트 왕국의 하나인 프리기아의 수도 고르디온(Gordyon) 유적지에 자갈 포장길 형태의 모자이크 기법이 고개를 내민다.

 

잘 다듬어진 형태의 모자이크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B.C 5c를 지나면서다. 그리스 문명권 도시국가들이 만든 작품을 효시(嚆矢)로 친다. B.C 4c 세련된 형태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모자이크는 알렉산더 대왕 원정 뒤 그리스 본토와 아나톨리아는 물론 오리엔트와 에게해의 헬레니즘권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초기에는 궁전이나 초호화 빌라의 식당같은 특정 장소에만 설치하다, 차츰 부유층 주택의 집안 전체로 대상을 넓혔다. 바닥 포장과 장식이라는 두마리 토끼, 즉 건축과 예술을 접붙인 설치물로 인기를 모았다. 이때 만든 모자이크는 지금까지도 선명한 색상으로 남아 오롯한 아름다움을 전한다.

 

우루크 유적지 그림. 페르가몬 박물관. ⓒ김문환

 

결국 모자이크의 첫 출발은 인류 문명이 그렇듯이 메소포타미아다. 그러나, 아쉽게도 필자는 아직 메소포타미아의 본거지인 이라크땅을 밟아 보지 못했다. 대신, 독일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에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먼저 페르가몬 뮤지엄이란 이름이 왜 붙었는지부터 간단히 살펴본다. 페르가몬은 오늘날 터키의 이오니아 지방에서 번영하던 그리스 로마 시대 도시를 가리킨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독립 왕국으로 명성을 날리던 곳이다. 그런 이름 '페르가몬'이 왜 독일 박물관에 붙었는지 약간은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독일 고고학 발굴팀이 페르가몬을 발굴했기 때문이다.

 

19c 말이나 20c 초만 해도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는 발굴한 국가로 문화재를 반출하는 게 관행이었다. 당시 오스만 투르크 지배아래 있던 페르가몬에서 독일발굴팀이 신전 유적을 통째로 뜯어다 전시해 놓은 탓에 페르가몬 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늘날 터키의 페르가몬에 가보면, 현장에는 휑허니 찬바람만 날린다. 야외 극장처럼 뜯어 갈 수 없는 유적을 제외하면 모두 박물관으로 옮겨 놨기 때문이다. 먼지 날리는 벌판 사이로 건물 잔해, 즉 기둥이나 초석만이 나뒹군다.

 

◆2. 지구라트

유적을 건물 안에 재배치한 페르가몬 박물관에는 페르가몬의 유적만 있는 게 아니다. 뜻밖에 메소포타미아의 유적이 한구석을 당당히 차지하고 앉아 있다. 모자이크의 기원에 해당하는 작품을 이라크의 메소포타미아 유적지에서 뜯어다 전시해 놓은 것이다. 유적지가 자리한 곳은 이라크땅 어느 곳일까? 오늘날 지명으로 와르카 (Warka) 흔히 고대사에서 우루크(Uruk)로 불리는 곳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최초의 주인공인 수메르인들이 일궜던 도시 우루크는 자그만치 B.C 4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다면 6천년 전... 반만년 역사의 단군(檀君) 할아버지 보다 대략 2천년이나 앞서니 그 유구한 역사의 깊이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메소포타미아 유적의 특징은 커다란 지구라트(ziggurat, 聖塔 혹은 段塔)라고 규정 지을 수 있다.

 

이라크 전쟁 때 세계 최강 미국의 야만적인 폭격으로 훼손 위험에 놓였던 지구라트. 지구라트는 과연 무엇일까? 고고학자들은 인간이 하늘의 신과 만나기 위해 만든 건축물로 해석한다. 신과 인간이 만나야 하니 하늘 높이 건물을 올려야 하고 그러려면 건축 기법상 밑변은 넓고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공법을 취해야 한다. 계단식으로 이뤄진 거대한 탑모양이다. 성스러운 탑이라는 의미에서 성탑(聖塔)이요, 계단식 탑이어서 단탑(段塔)으로도 부르는 이유다. 맨 꼭대기에는 신전을 설치했다. 수메르의 각 도시는 모두 이런 지구라트 유적을 중심으로 도시를 발달시켰던 것으로 추정된다.

 

초가잔빌 지구라트 유적. ⓒ김문환

 

수천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대부분 무너져 내렸는데, 메소포타미아에서 지금까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우르(Ur)의 지구라트로 밑변이 가로 62.5m 세로 43m다. 우르 1왕조때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의 모델은? 인간이 하늘에 오르기 위해 만들었다가 하느님의 벌을 받으면서 인간의 말이 달라지게 됐다는 기독교 신화 속 바벨탑은 바빌론의 지구라트를 가리키는 것으로 일부에서는 추정한다. 필자가 본 가장 완벽한 형태의 지구라트는 메소포타미아에 가까운 이란땅 수사 근처 초가잔빌(Choga zanbil)의 지구라트다. 수메르는 아니고 이란 고원의 엘람(Elam)인들이 만든 지구라트다.

 

엘람 왕국이 만든 도시 초가 잔빌은 B.C 13c 건설됐다. 엘람 왕족의 일원이 사망할 경우 묻는 왕실묘지가 이곳에 자리했다. 그만큼 성스러운 도시다. B.C 640년 경 앗시리아의 침입으로 수사와 함께 파괴된 초가 잔빌은 20c 들어 1935년 유전탐사를 하는 과정에서 발굴돼, 그 진면목을 세상에 다시 드러낼 수 있었다. 필자는 수사와 초가 잔빌을 방문하러 가는 도중에 거대한 유전탑이 검붉은 불을 토해내는 광경을 저 멀리 벌판 너머로 목격할 수 있었다. 2중 성벽으로 둘러싸인 초가 잔빌의 외벽 둘레는 약 4km다. 내벽 안쪽으로는 가로 470m, 세로 380m의 성역이 자리한다. 이곳에 지구라트 유적이 거대하게 솟아 있다. 초가 잔빌 지구라트는 맨 밑 기단의 길이가 105m다. 높이는 28m에 이른다. 5개의 단으로 구성돼 있다. 사각형 단(段)의 각 귀퉁이는 정확히 동서남북의 4방향을 가리킨다. 당시 엘람인들의 과학기술 수준을 짐작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대목이다. 1979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다.

 

◆3. 우루크의 콘 모자이크

여기서 본론으로 돌아와 우루크의 지구라트 유적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자. 우리가 탐구하는 모자이크와 관련해 그 기원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바로 이곳에 있다. 지구라트로 올라가는 계단 통로의 벽을 장식한 유물이 모자이크의 원형으로 평가된다. 이른바 콘 모자이크(Cone Mosaic). 흙을 원추형으로 길게 구워 색을 입힌 뒤 촘촘히 벽에 밖아 원하는 무늬를 만들어 내는 기법이었다. 서로 다른 색의 재료를 이용해 바닥이나 벽, 천장을 장식한 측면에서 모자이크의 기원으로 손색없다. 흙으로 구운 원추형 콘(Cone)의 길이는 10cm 정도. 마치 커다란 대못처럼 생겼다. 머리 부분의 직경은 1.5cm다. 검은 색과 흰색, 붉은 색이 많다. 이런 재료를 사용해 표현한 무늬는 삼각형(triangle)이나, 마름모(lozenge), 줄무늬(stripes), 지그재그(zigzag)가 주를 이룬다.

 

우루크 유적 발굴도와 유적에서 뜯어온 콘 모자이크. 유적 그림에서 하단부의 세로진 원기둥 모습이 콘 모자이크가있던 자리다. 페르가몬 박물관. ⓒ김문환

지구라트로 올라가는 계단 벽을 장식했던 콘 모자이크. 페르가몬 박물관. ⓒ김문환

콘 모자이크의 마름모 무늬가 선명하게 보인다. 페르가몬 박물관. ⓒ김문환

다양한 형태의 모자이크 무늬들. 페르가몬 박물관. ⓒ김문환

확대해서 본 콘 모자이크. 페르가몬 박물관. ⓒ김문환

콘의 모습. 페르가몬 박물관. ⓒ김문환

 

우루크의 역사는 B.C 4천년 전 시작되지만, 우루크 지구라트를 장식한 콘 모자이크는 한 참 후대인 B.C 2천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오래전 부터 인류는 건물 벽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기법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우루크 번영시대 말기에 시작된 콘 모자이크는 이후 우르, 에리두, 하부바 같은 메소포타미아의 다른 도시로 퍼져 나갔다. 이 도시들도 우루크와 동시대에 번영하던 터였다. 참고로, 우루크의 발굴은 호엔쫄레른 왕가 지배의 독일제국 시절인 1912년 실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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