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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고대 그리스의 불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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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중해 문명기 4권--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12. 고대 그리스의 불륜

 

◆1. 아카이아 연합군 장군 부인들 바람나다

 

고대 그리스 신화를 보면 온통 불륜의 경연장이란 인상을 받는다. 엄숙하기만 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최고신 제우스. 그는 스페인계 베네치아 출신으로 회상록(Histoire de ma vie)을 통해 엽색행각을 널리 알렸던 카사노바(1725-1798)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비쳐진다. 아내 헤라를 두고 끊임없이 새로운 여인을 찾아 헤맨다. 여신이나 인간을 가리지 않고 숱한 여자들이 제우스의 사정권에 들었다. 대부분의 남자 신들도 대동소이하다. 반면 여자신들은 정숙한 편이어서 남성 중심 사회였음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물론 아프로디테 처럼 여신들도 분방하게 사랑을 찾아 헤맨 경우도 있어 상대적으로 이후에 생겨난 종교나 문화권보다 자유로운 가치관이었음을 보여준다.

 

알몸여인들의 치장. 에트루리아 발굴. 루브르. ⓒ김문환

아가멤논의 비극이 불륜에서 생긴 것임을 살펴봤다. 그런데, 아가멤논의 부인 클리템네스트라의 불륜에 대해 색다른 해석이 전해진다. 나우플리오스와 관련 되는데... 나우플리오스는 포세이돈이 아미노네와 정을 통해 낳은 아들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신화를 정리할 때 포세이돈의 아들을 나우플리오스 1세, 그로부터 뻗어 나온 자손 가운데 5대손을 나우플리오스 2세라고도 부른다. 트로이 전쟁에서 나우플리오스는 나우플리오스 2세를 가리킨다. 그렇다고 나우플리오스가 트로이 전쟁에 직접 참전한 것은 아니다. 당시 나우플리오스는 이미 나이가 많았고, 그의 아들 팔라메데스가 아카이아 연합군의 일원으로 전쟁에 나섰다.

 

팔라메데스는 메넬라오스와 4촌지간으로 트로이 전쟁에 적극적이었다. 아카이아 연합군을 결성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고, 그 결과 오디세우스와 아킬레스등을 전장으로 끌어내는 공도 세웠다. 아카이아 연합군에 돈 전염병도 고치고 일식(日蝕)에 불안해 하던 병사들을 안심시킨 것도 그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리스 알파벳을 만들어 낸 사람도 팔라메데스라는 설(혹은, 카드모스가 철자를 만들고 그는 순서를 정했다는 설)이 있다. 숫자를 고안하고, 천체의 운행이치를 밝히는 역법에도 무척 밝아 다양한 발명을 해냈다고 하니.... 그 활약상이란! 그러나, 많은 공적에도 불구하고 오디세우스를 참전시킨 일은 자신의 목숨을 당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인이 벌거 벗고 목욕중인 장면. 아프로디테로 추정된다. 아들 에로스가 머리감는데 물을 부어주고 있다. 알테스 박물관 ⓒ김문환

전쟁에 나서고 싶지 않았던 오디세우스는 군역을 기피하기 위해 낸 자신의 꾀를 간파하고 자신을 참전시킨 팔라메데스에 대해 앙심을 품었다. 오디세우스는 결국 팔라메데스를 트로이의 첩자로 모는데 성공했다. 뜻하지 않게 간첩으로 몰린 팔라메데스는 병사들의 돌팔매에 맞아 죽었다. 일설에는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가 그를 우물에 넣고 생매장했다고도 한다. 이소식을 전해들은 팔라메데스의 아버지 나우플리오스는 분을 삭일 수 없었다. 너무 억울했다. 아카이아 연합군을 위해 열심히 싸우고, 공도 세웠건만 동료들의 모함으로 죽다니. 분개하던 나우플리오스는 "오냐, 이놈들 두고 보자". 아들의 영전에 복수를 맹세했다.

 

나우플리오스가 고안해 낸 복수 방법은? 이미 늙어 버린 자신이 전장으로 달려가 용력으로 아카이아 연합군 장군들을 벌할 수는 없는 일. 대신 좋은 수가 떠올랐다. 아들을 죽인 아카이아 연합군 장군들을 아주 지능적으로 괴롭힐 방안을 찾아냈다. 장군의 부인들을 바람나게 만들어 가정을 파탄시키는 것. 치졸하지만, 노인네가 힘 덜 들이고 취할 수 있는 보복이었다. 전쟁 기간동안 출정 장수들은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장군의 아내들은 날이 갈수록 외로움에 시달렸다. 독수공방(獨守空房)도 하루 이틀이지... 몇년째 남편 코빼기도 보지 못하니, 생각이 다른 곳에 미칠 수 있음은 인지상정이다. 그렇다고 불륜에 빠지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조건은 충족됐으렸다! 행동 개시.

 

 

은밀한 만남. 창녀와 손님으로 추정된다. 한쪽 가슴을 열고 손님을 유혹하는 장면. 알테스 박물관 ⓒ김문환

우선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부인 클리템네스트라. 아가멤논의 궁정으로 가 기회를 엿보며 클리템네스트라에게 욕정을 불러 일으킬 궁리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녀 옆에는 아가멤논이 붙여준 감시자 데모도코스가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었다. 나우플리오스는 간신히 데모도코스를 떼놓고 클리템네스트라의 외로운 마음에 불을 지피는데 성공했다. 클리템네스트라가 아이기스토스와 정분이 나도록 한 것. 나우플리오스가 쓴 방법은 이랬다. "당신 남편은 지금 트로이에서 여러 명의 여자 포로를 잡아 저녁마다 바꿔 시중들게 하고,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시녀를 데리고 귀국해 본부인을 몰아 낸다는 군. 참... 당신도 이렇게 바보짓 하지 말고 마음껏 인생을 즐겨요. 젊음이 만년 가는 줄 아시오? 나를 봐요. 이 노인을... 한살이라도 젊을 때 아름다울 때 자신을 썩히지 말고 불살라요. 잠깐 지나면 이런 기회도 없답니다."

 

다음 표적은 오디세우스와 함께 자신의 아들을 죽이는데 앞장 선 디오메데스의 아내 아이기알레였다. 디오메데스가 신혼시절 트로이 원정에 나서 신혼 주부 아이기알레는 결혼생활의 맛을 채 알기도 전에 남편과 생이별 했는데... 처음엔 정조를 지키며 정숙하게 살았다. 그러나... 혼자 참고 살기도 어려운데, 나우플리오스가 집요하게 욕정을 불어 넣으니... 어찌 그 작전에 말리지 않을 수 있으리오. 아이기알레는 좀 심하게 빠졌다. 한남자랑 정분이 난 게 아니다. 이남자 저남자를 전전했다. 부나비처럼 밤이면 욕정이라는 불빛을 찾아 헤맸던 로마시대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부인 메살리나는 그녀의 후예였나 보다. 밤을 낮삼아 밝히던 아이기알레는 마지막에 코메테스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 코메테스는 누구인가? 디오메데스가 전장으로 떠나면서 집안을 관리해 달라고 맡긴 집사였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인데... 아이기알레와 코메테스는 트로이 전장에서 돌아온 디오메데스를 내쫓고 자기들의 왕국을 만들었으니...

 

여인얼굴. 알테스 박물관. ⓒ김문환

 

나우플리오스는 이도메네우스의 아내도 꾀어 바람을 피우도록 이끌었다. 크레타왕 이도메네우스는 탈로스의 아들 레우코스를 어려서부터 기른 뒤 자신이 트로이 전쟁에 참여할 때 집안을 잘 돌봐 달라고 맡겼다. 레우코스 역시 생선가게 고양이였다. 이도메네우스의 아내 메다는 레우코스와 정분이 났다. 레우코스는 좀 저질이었다. 메다와 즐기고 말것이지, 욕심이 커져 자신이 왕국을 차지하려고 메다와 그녀의 자식들까지 죽였다. 뒤늦게 전장에서 돌아온 이도메네우스. 아킬레스 추모 장례 경기 권투부문에서 우승할 만큼 한방의 실력을 갖고 있던 이도메네우스는 레우코스를 한방에 날려 죽였다. 거꾸로 레우코스가 이도메네우스를 죽였다는 설도 있다. 이렇게 장군들 부인을 농락하던 나우플리오스. 마침내 오디세우스의 부인 페넬로페까지 유혹해 외간남자와 정분이 나도록 시도했지만, 세상 여자가 모두 유혹에 약한 것은 아니었다. 페넬로페는 끝까지 정절을 지켜 남편 오디세우스는 물론 전쟁터 나가는 남정네들 마음을 가볍게 해줬다.

 

◆2. 고대 그리스의 불륜

 

고대 그리스 가정에서 여성들은 대개 14-15살에 결혼을 하는데, 결혼 전에는 순결을 결혼 후에는 정조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다. 그러니, 가정생활도 이런 목표에 초점이 맞춰졌다. 여자들은 철저하게 외부 세계와 격리 됐다. 집을 2층으로 마련하고 1층은 남자들의 공간, 2층은 여자들의 공간으로 갈랐다. 격리된 가운데 옷감을 짜고, 식사를 준비하는 등의 가사 교육만을 받았다. 글을 읽고 쓰는 교육은 극히 일부로 제한됐다. 바깥 출입도 테두리가 쳐졌다. 시장을 보러 가거나 우물가로 물을 뜨러 가는 일도 하녀들이 맡았기 때문에 보통 시민 가정의 여인들은 울타리 밖으로 얼굴을 내밀기가 쉽지 않았다. 한마디로 가사에 충실한 순종적인 여인을 길러 낸 것인데... 이렇다 보니 불륜은 흔한 일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성행위. 알테스 박물관 ⓒ김문환

결혼 뒤 아이가 태어나면 여자의 인생이 바뀐다. 특히 대를 잇는 개념이 강해 아들을 낳을 경우 집안의 축복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유모나 하인들의 손에 맡겨 길러지고, 남편은 바깥 일에만 몰두할 뿐이다. 여인들이 혼자 외로움을 겪게 되는 것은 정해진 순서. 그러나, 무료하고 답답한 생활에서 벗어날 기회가 있었으니... 고대 그리스에서는 장례식이나 종교의식 같은 특별한 행사에 가는 날이 그랬다. 동서고금에 예외없다. 행사를 통해 모르는 남녀도 설레임 속에 만남을 가질 수 있다. 이성이 만나는 아주 좋은 기회다. 고려시대 정월이나 2월에 열던 연등회(燃燈會), 가을에 벌인 팔관회(八關會), 사월 초파일 절에서 펼쳐지던 탑돌이 행사, 조선시대 5월 단오 행사를 떠올리면 쉽다. 이몽룡과 성춘향의 만남도 그 연장선이 아니던가!

 

불륜은 혼자 감쪽같이 치러지기 보다는 대개는 누군가를 징검다리 삼기 마련이다. 한 남자가 다른 집 아내를 유혹하려면 바깥 출입이 잦은 하녀를 통할 경우 비교적 쉽게 일이 풀렸다. 일단 만남에 성공하면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처음 시작이 중요하다. 일단 시작되면 두번째 부터는 무슨 핑계를 대든 기회를 만드는 법. 종교의식 때 외출은 물론 깊게 빠지면 집안으로 연인을 불러 들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남편이 바깥일에 바쁘고, 사업이나 기타 공무로 지방에라도 간다면 불륜객들은 쾌재를 불렀다. 헤파이스토스가 먼거리로 출장 갈 때 아프로디테가 연인 아레스를 불러들여 정사를 벌이던 장면은 단순히 신화 속에 머물지 않는다. 당시의 삶을 반영하는 한 단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녀 만남. 루브르 ⓒ김문환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벽에도 눈이 달렸고, 낮에는 새가 밤에는 쥐가 듣는다. 헬리오스가 태양을 몰고 다니며 하늘에서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낯뜨거운 만남을 보고 헤파이스토스에게 알려 줬듯이, 누군가 아내의 부정을 남편에게 알려 주기 마련이다. 다음 조치는? 헤파이스토스가 아내와 아레스의 간통을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 황금 그물로 잡듯이, 고대 그리스 남편들 역시 아내의 불륜을 밀회 현장 바로 그 자리에서 잡을 필요가 있었다. 법적인 절차를 위해서다. 순수혈통을 강조한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간통은 집안의 순수혈통이 아니라 엉뚱한 피로 집안의 대를 이어 가게 할 가능성이 커 중죄로 다스렸다. 아내와 밀회를 즐긴 남자를 남편이 죽이거나 벌주기 위해서는 확실한 증거, 즉 증인이 필요했다. 간통한 여인은 이혼당했다. 여인들을 이렇게 통제하고 살면서 남자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성매매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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