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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트로이 목마

지중해 문명기 4권BRBR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5장. 트로이 함락 BR 1. 트로이 목마오늘 이야기 2. 트로이 함락과 대학살 3.

-- 지중해 문명기 4권--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5장. 트로이 함락


1. 트로이 목마--오늘 이야기

2. 트로이 함락과 대학살

3. 카산드라

4. 라오콘

5. 프리아모스

6. 안드로마케, 아스티아낙스

7. 폴릭세나. 헬레노스

8. 헬레네 고향으로

9. 아가멤논의 죽음--오레스테스, 엘렉트라

10. 클리템네스트라, 아이기투스

11. 고대 그리스의 불륜

 

1. 트로이 목마

 

◆1. 영화속 목마 작전

지금까지 트로이 전쟁의 원인과 전개를 살펴봤다. 이제 트로이 전쟁의 종말을 들여다 볼 차례다. 트로이 전쟁은 목마(Troyan Horse)를 활용한 작전으로 갈무리 됐다. 전쟁의 대미(大尾), 기나긴 항해의 맨 끝 지점이 된 목마. 목마를 누구의 아이디어로, 무슨 재료를 써서 만들어 트로이 성안에 들여놓을 수 있었는지, 이어 트로이를 멸망시키게 된 과정까지 궁금한 대목이 한 둘이 아니다. 먼저, 2004년 개봉된 브래드 피트, 에릭 바나 주연의 영화 [트로이]에서 목마를 어떻게 묘사했는지 떠올려 보자. 7만 5천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했던 장쾌한 전투장면의 스펙타클. 물론 7만 5천명은 '버츄얼 스턴트맨'이었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팀이 만들어낸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외부 자극으로 인간과 똑같이 반응하는 캐릭터를 활용한 컴퓨터 그래픽 스턴트맨. 그렇다면 목마도 컴퓨터 그래픽?

 

그렇지는 않다.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크기는 건물 4층 높이로 12.2m. 트로이 전쟁 장면의 백미(白眉)를 목마전이라고 규정할 때 목마는 관객들에게 가장 큰 궁금증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손색없다. 영화 제작에서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개봉했을 때 관객들이 느낀 감동은? 혹시 감동이 없지 않았을까? 필자는 처음 좀 괴기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19c 말 독일인 하인리히 슐리만이 발굴한 트로이에 최근 설치한 조악한 형태의 목마를 넘어 뭔가 멋지고 감동적인 것을 기대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에 나온 목마는 마치 대형 화재현장에서 타다 남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것도 한번 스쳐 지나가듯이 나오고 끝이다. 트로이 전쟁의 분수령 목마작전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목마의 외관에 대한 실망이 겹쳐 영화에 매긴 점수는 크게 낮아지고 말았다. 트로이 목마를 관람객들의 상상력에 맡겨 신비감을 더욱 높이기 위한 의도라고 자위할 수도 없고...

 

트로이 목마 도자기 부조. 트로이 목마를 그린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스의 하얀마을로 유명한 에게해의 아름다운 휴양지미코노스 섬 박물관을 찾으면 도자기에 트로이 목마와 학살 과정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미코스노 박물관. ⓒ김문환

영화 제작 노트에는 아카이아 연합군이 불에 탄 선박에서 뜯어낸 목재로 12일 만에 급히 목마를 만들었다는 일부 기록을 근거로 특수 폴리스틸렌 재질을 사용해 영화용 목마를 제작했다고 적혀 있다. 또 트로이 사람들이 종교적 숭배물로 받아들여 성안으로 끌고 들어갔다는 기록이 있어 트로이 사람들이 숭배하는 이국적인 종교를 떠올릴 수 있도록 다소 괴기하게 만들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이 대목에서 영화 전체에 대한 신뢰도가 뚝 떨어지는 느낌. 섬뜩해 지기까지 한다. 우선, 목마(木馬)는 말 그대로 나무로 만들었어야 한다. 목마(木馬)에 폴리스틸렌 재료라니...

 

종교 문제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아카이아 연합군이나 트로이 연합군 모두 똑같은 종교 즉 제우스를 정점으로 하는 올림포스 12신등 같은 신앙 체계를 갖고 있었다. 아카이아와 트로이는 문화, 종교적으로 단절돼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트로이를 마치 그리스와는 동떨어진 전혀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만든 낯선 도시로 이해하는 오류를 범한 것은 아닌지. 영화가 어차피 픽션이요, 재해석을 통한 예술이라고 하지만 좀 궤를 벗어난 것은 아닌지...

 

◆2. 목마 작전

그렇다면 트로이 전쟁에 쓰였다는 목마는 실제 어떻게 생겼단 말인가?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에 비교할 수 있을까? 난중일기(亂中日記)와 이순신의 장계(狀啓)에 1592년 5월 29일 사천해전(泗川海戰)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적혀 있는 거북선은 120cm ×40cm의 10폭 병풍식 15m짜리 [거북선 해진도(海陣圖)]등에 그 모습이 남아 있어 복원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이 있었는지 조차 불분명한 트로이 전쟁에서 목마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일 수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는 목마 얘기가 비치치도 않는다. 일리아드는 헥토르가 죽으면서 이야기가 종결되기 때문에 아직 아킬레스는 물론 파리스도 죽기 전이어서 목마 얘기가 나올 상황이 아니었다. [일리아드]의 속편 격인 [오디세이아]에는 짧지만, 회고를 통해 목마 얘기가 잠깐 언급된다. 그 모습을 대략 정리하면 재료는 나무였고, 속은 사람들이 숨을 수 있도록 텅 비었다. 비밀 통로가 있어 필요시 안에 든 사람들이 빠져 나올 수 있도록 고안됐다. 크기는? 10여명의 장수들이 들어갈 공간이었고, 성안으로 가져가기 위해 성을 일부 헐어야 할 정도로 높았지만, 땅에서 밑바닥을 창으로 찔러 볼 수 있을 정도여서 아주 높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목마에 창문을 만든 것을 볼수 있다. 그곳을 통해 숨어있는 아카이아 연합군 병사가 보인다. 오디세우스, 디오메데스, 네오프톨레모스등이 이들이다. 미코노스 박물관. ⓒ김문환

그렇다면 목마는 왜 만들었을까? 다양하게 전하는 여러 신화를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아카이아 연합군은 10년 이상 트로이 성 앞에서 트로이 군과 전쟁을 치렀다. 수많은 승리를 거뒀지만, 트로이를 함락시키지 못했다. 또, 각지에서 당도한 트로이 지원군도 상당수 있어 아카이아 연합군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곡절 끝에 트로이 연합군의 리더 헥토르를 죽였지만, 전세를 결정적으로 틀어쥐는데 실패했다. 지루한 소모전이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아카이아 연합군의 최고 용장 아킬레스가 죽어 양진영은 지도자 없이 일진일퇴하는 국면에 빠져 들었다. 이때, 아카이아 연합군의 구세주 아테나 여신이 오디세우스 앞에 나타났다. 아테나가 던진 말은 "목마를 만들라"는 아주 간결한 멘트였다. 트로이 전쟁의 역사를 바꾼 이 한마디를 오디세우스는 놓치지 않았다. 이제 일반적인 전투로는 승산이 없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즉시 명령을 내렸다. "목마를 만들라. 아테나의 명이시다."

 

오디세우스의 명을 받은 자는? 포키스에서 온 파노페우스의 아들 에페이우스. 그는 30척의 배를 이끌고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 장수였다. 용력이나 무예가 뛰어나지 않아 전투에서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러나, 끝까지 살아 남았다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는데... 바로 목마의 건조다. 목재를 훔치다시피 구해 며칠만에 대형 목마를 만들 수 있었다. 속으로 보이지 않는 비밀 출입구를 만들었다. 무장 병사들을 숨기기 위한 공간이었다. 오디세우스를 대장으로 삼아 디오메데스등 아카이아 연합군 최고의 전사들이 목마안으로 들어갔다.

 

목마 겉에는 큰 글씨로 "제우스의 따님 전쟁의 여신 아테나에게 바치는 공물"이라고 적었다. 이미 트로이 전쟁 시기에 문자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는 자료다. 신에게 바치는 공물 처럼 트로이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속임수였다. 아카이아 연합군은 한밤중에 목마를 트로이 성 앞에 몰래 갖다 놨다. 그리고는 막사를 모두 걷어 치웠다. 불사를 것은 사르고... 이어 배를 타고 트로이를 떠났다. 영원히? 아니다. 트로이에서 보이지 않는 근처 테네도스섬으로 숨어들었다. 목마라는 신의 선물을 남기고 철수한 것처럼 완벽한 위장작전을 펼쳤다. 속아 넘어 갈 것인가는 이제 전적으로 트로이 사람들 손에 달렸다.

 

셀레네가 어슴프레 여린 달빛을 안고 서산으로 지면서 언니 에오스가 상큼한 아침이슬과 함께 여명의 새벽을 동녘 하늘부터 알려올 무렵. 트로이 성 앞에는 커다란 물체 하나가 우뚝 솟아 괴물처럼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에오스가 장미빛 손으로 어둠의 흔적을 몰아낼 수록 실루엣으로 흔들거리던 정체불명의 물체는 선명한 형체로 다시 태어났다. 이윽고. 헬레오스가 태양을 몰고 달려와 세상을 밝게 비춘 순간. 거대한 목마 하나가 장엄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잠에서 막 깨 졸린 눈으로 눈부신 태양빛을 받으며 다시 지루한 전쟁의 하루를 시작하러 나온 트로이 사람들. 성 앞에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카이아 연합군과 관련된 모든 것이 완전히 사라지고 커다란 목마만 덩그렇게 놓여 있는게 아닌가. 수많은 아카이아 연합군 막사와 진지는 다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목마는 무엇인가?

 

◆3. 시논의 정보전

잠시 커다란 충격에 빠졌던 트로이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보니 목마만 남은 게 아니었다. 적막한 바닷가를 떠도는 왠 미치광이 하나. 그는 머리를 풀어 헤치고 초점 나간 눈빛으로 해변을 뛰어 다니며 헛소리를 늘어놓는데... "트로이 만세. 프리아모스 만세. 아가멤논이여 불구덩이에 떨어져라. 비겁한 아카이아 연합군은 철수했다. 겁장이들 같으니. 나를 두고 떠났어. 이 놈들. 잘되나 보자. 아카이아 연합군이여 풍랑을 맞아 수장되거라. 바다를 움직이는 포세이돈 이시여! 아카이아 연합군에 강풍과 높은 파도를 보내 주소서. 이 웬수같은 놈들. 아 전쟁의 여신 아테나시여! 비겁한 아카이아 연합군은 당신의 은총도 잊고 밤새 줄행랑을 놨습니다. 배은망덕이지요. 벌을 내려 주세요. " 길 잃은 척 한 자리를 맴돌며 똑같은 소리를 되뇌여 외쳐대는 이 남자는 누구인가? 시논(Sinon).

 

트로이 목마 복원품. 하인리히 슐리만이 발굴한 터키 서북부 연안 트로이에 터키 정부가 만들어 놓은 목마다. 아주 조악하게 만들어 실망하기 십상이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아니 사람 숨는 목마에 웬 창문을 만들었나 '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미코노스 섬을 방문해 그곳 박물관의 도자기 그림을 보고는 출처를 이해할수 있었다. ⓒ김문환

시논은 오디세우스의 사촌이다. 오디세우스의 어머니 안티클레이아와 시논의 아버지 아이시모스가 남매간이다. 오디세우스 입장에서 보면 외삼촌의 아들이니 이종사촌이요, 시논 입장에서 보면 고모의 아들이니 고종 사촌지간. 오디세우스의 외할아버지이자 시논의 할아버지인 아우톨리코스는 원래 머리 회전이 빠르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좋게 얘기해 꾀돌이였다. 여기서 감이 잡힌다. 머리로 한몫 하는 오디세우스가 아테나 여신의 명을 받들어 목마를 만들고, 시논은 영특한 머리를 이용해 위장 전술. 즉 거짓정보를 흘려 상대를 혼란에 빠트리는 정보심리전을 펼치는 중이란 것을... 2차 대전중 독일의 나찌 괴벨스를 능가하는 선전술을 실연하고 것이다.

 

성문을 열고 나온 트로이 사람들에게 시논은 시치미를 뚝 떼고 말을 붙였다. 가증스런 아카이아 연합군 녀석들이 자신을 놓고 도망갔다면서 목마를 끌고 성안으로 들어가 잘 모시면 아테나 신의 도움으로 트로이는 번영할 것이라고. 도망간 아카이아 연합군에게는 망조가 들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마구 거짓을 늘어 놓는 시논. 그러나, 트로이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다. 아카이아 연합군의 파상적인 공격을 막아내며 10년 이상을 버틴 저력의 국민이다. 설익은 혀놀림에 속아 넘어갈 위인이 아니었다. 트로이 사람들은 시논을 수상하게 여기고 잡아 가두었다. 그리고는 프리아모스에게 보고했다. 트로이를 교란시키려는 첩자가 틀림없으니 칼로 베어 버리라는 요지의 보고서를 올렸다.

 

프리아모스가 직접 시논을 신문(訊問)했다. 좌우에 신하를 대동한 친국(親鞫). "전모를 이실직고(以實直告)하고 주동자를 대지 못할까?" 주리를 틀며 불에 지진 인두를 살에 대는 고신(拷訊)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점은 하나. 늙으면 망령 드는 법. 프리아모스는 국민들의 정당한 요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논의 거짓말만 귓전을 어른 거렸다. 망조가 들려면 충신의 말은 안중에 없고 간신과 모리배의 말만 귀에 솔깃하다는데 프리아모스가 그랬다. 시논이 풀어놓은 거짓의 전말을 들여다 보자. 시논 왈(曰). "아카이아 연합군은 전쟁이 결판 나지 않으니까 인신공양을 결정했습니다. 누구를 희생시킬 것인가? 아카이아 연합군 내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사고 죽은 팔라마데스와 친척이라는 이유로 저를 희생자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죽지 않기 위해 밤중에 진영을 탈출해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이제 프리아모스 전하 앞에 이렇게 서 있습니다."

 

시논의 입을 떠난 거짓말은 불과 1m 거리의 공기를 가르며 프리아모스의 귀로 전달되는 사이 진실로 둔갑해 있었다. 거짓은 탄력을 받은 듯 거침없이 쏟아졌다. "제가 탈출한 뒤 아카이아 연합군은 나를 내버려 두고 전쟁을 포기한 채 떠나 버렸습니다. 자비로우신 대왕께서 은총을 베풀고 트로이 백성들이 저를 받아주시지 않으면 저는 오갈 데 없는 고아신세가 되고 말 것입니다." 능청은 이제 결론을 향해 치달았다.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가십시오. 정성스럽게 제를 올리면 아테나 여신이 트로이를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 프리아모스의 마음은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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