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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성능 개선보다 비용 절감"…메모리의 절대 강자 삼성전자는 왜 위기를 맞았나

[취재파일] "성능 개선보다 비용 절감"…메모리의 절대 강자 삼성전자는 왜 위기를 맞았나
"삼성전자는 성능 개선보다 비용 절감에 더 초점을 맞추고 이익률을 높이는 데 주력해 왔다."

지난해 SK하이닉스는 역대급 실적을 냈다. 매출액 66조 1천930억 원, 영업이익 23조 4천673억 원으로 영업이익률이 35%에 달했다. 반면, 5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매출은 111조 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15조 1천억 원에 그쳤다.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을 제친 건 작년이 처음이다.

희비는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갈렸다. SK하이닉스는 고부가가치 메모리 반도체인 HBM을 'AI 반도체'를 주도하고 있는 엔비디아에 납품하며 역대급 실적을 냈다. 반면,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 통과에 실패하며 최신 HBM을 납품하지 못하고 있다.

어디서 이런 차이가 발생한 걸까. 타이완의 글로벌 리서치 회사 트렌드포스의 메모리반도체 애널리스트인 엘리 웡은 "두 기업은 사업의 목표가 달랐다고 볼 수 있다"며, 삼성전자의 실패 원인을 글머리에 소개한 내용으로 진단했다. 삼성전자가 기술 개발에 몰두하기보다 비용 절감에 치중하면서 기술력에서 SK하이닉스에 밀렸다는 것이다. '기술의 삼성'은 옛말이 되었다는 건데, '개발자보다 재무 전문가가 삼성전자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와 맥이 닿는 내용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도체 강국 한국'?…'메모리 반도체 강국 한국'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반도체 일반에 대해 간단히 공부해 보자. 반도체는 크게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로 나뉜다. 메모리 반도체는 다시 'D램'과 '낸드'로 나뉘는데, 각각 단기 기억장치와 장기 기억장치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을 '반도체 강국'이라고 주로 이야기하는데, 정확히는 D램과 낸드에서 시장 점유율이 높은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시스템 반도체' 또는 '로직 반도체'라고도 불리는데, AP나 CPU, GPU 등이 비메모리 반도체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저장을 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연산(계산)을 하는 반도체다. 메모리 반도체가 저장고라면 비메모리 반도체는 계산기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 리서치 회사 가트너의 분석에 따르면,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지난해 기준 전체 반도체 시장의 74.8%를 차지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3배에 달한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데, 큰 강은 두고 작은 하천에서 열심히 고기를 잡고 있는 셈이다.
 

엔비디아 주도 '삼각 동맹'에 끼지 못한 삼성전자

지금까지의 분류는 반도체라는 상품 기준이다. 기업의 성격, 즉 업태를 기준으로 살펴보자. 반도체 시장, 정확히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는 반도체를 설계하는 기업과 해당 기업의 설계를 바탕으로 제품을 위탁생산하는 기업이 있다. 소위 '팹리스'라고 불리는 기업이 전자고, '파운드리'라고 불리는 기업이 후자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은 개발과 생산을 동시에 하는 셈인데, 메모리 반도체는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소위 스펙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메모리 반도체의 경쟁력은 그 스펙에 맞춰 싸게 생산하는 것이다. 물론, HBM 등이 아닌 소위 범용 반도체에만 적용되는 매우 거친 해석이다.

현재 'AI 반도체'는 설계의 엔비디아, 위탁생산의 TSMC가 이끌고 있다. 2022년 11월 챗GPT라는 생성형 AI가 전 세계에 충격을 던지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앞다퉈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는 영향이다. 이 흐름에 올라탄 게 최신 HBM을 엔비디아에 공급하고 있는 SK하이닉스다.

AI 반도체 시장은 이 삼총사가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엔비디아가 성능 좋은 계산기인 GPU를 설계하면, 그 설계를 토대로 타이완의 TSMC가 GPU를 생산하고, GPU에 계산을 위한 재료를 재빨리 공급하는 HBM을 SK하이닉스가 생산해 TSMC에 전달하면 TSMC가 이를 하나로 합쳐 완제품을 생산하는 삼각 동맹이 형성된 셈이다. 여기에 미국의 마이크론이 엔비디아에 HBM을 일부 공급하고 있다.

엔비디아 반도체

급성장 중인 중국 반도체 기업, 줄어드는 대 중국 반도체 수출

삼성전자의 지난해 실적 부진은 이 삼각 동맹이 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삼각 동맹에 SK하이닉스는 끼어 있으니 현재 '한국 반도체의 위기'는 정확히는 '삼성 반도체의 위기'라고 부르는 게 적확하다. 하지만, SK하이닉스는 마음을 놓을 수 있을까?

어느 기업이든 신제품을 출시하지만 '스테디 셀러'라고 불리는 제품이 있다. 신제품은 소위 크게 터질 수 있지만, 안정적으로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는 건 스테디 셀러다. 스테디셀러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이 있어야 신제품 개발에 돈을 투자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희비는 신제품인 HBM이 갈랐지만, 두 기업의 안정적 '캐시 카우'는 범용 메모리 반도체다. 그런데 범용 메모리 반도체를 중국 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잠식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메모리 반도체 수출액은 720억 달러로 전체 수출액의 10.5%에 달했다. 이 중 중국으로 간 것이 35.8%(홍콩 포함 시 61.3%)이다. 자동차나 휴대전화 할 것 없이 중국에서 생산되는 많은 제품에 한국 메모리 반도체가 사용된 것이다. 그런데 5년 전인 2020년에는 이 비율이 54.2%(80.3%)에 달했다. 불과 4년 만에 34%나 감소한 건데, 비중뿐만 아니라 절대 수출액도 284억 달러(2020년)에서 258억 달러(2024년)로 줄었다.
 

중국 정부의 3중 지원 등에 업은 중국 반도체

업계에선 나란히 2016년 설립된 중국의 창신메모리(CXMT)와 양쯔메모리(YMTC)가 중국 시장을 대체한 영향으로 분석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D램과 낸드 모두를 생산하는 데 비해, 창신메모리는 D램, 양쯔메모리는 낸드에 특화되어 있다. 두 기업은 중국 정부 투자로 설립됐는데, 정부 개입으로 특화 분야에 대해 교통 정리가 이뤄진 걸로 보인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현재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개 회사가 분점하고 있다. 그런데 트렌드포스 등 리서치 업체들은 올해 말 창신메모리 등 중국 기업의 메모리 시장 점유율이 많게는 10%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해 4분기 기준 D램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 39.3%, SK하이닉스 36.6%, 마이크론 22.4% 순인데, 창신메모리가 중국 내수 시장을 일정 부분 흡수하면서 글로벌 시장 구성 전체를 바꿔 놓을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 업체들의 급성장 이유는 중국 정부의 지원과 넓은 중국 내수 시장 덕분이다. 트렌드포스의 엘리 웡 애널리스트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창신메모리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고 있으며, 중국 반도체를 채택하는 기업이 있으면 연구개발 보조금도 지원된다. 이런 혜택 덕분에 시장 점유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중국 정부의 지원에 대한 조앤 치아오 트렌드포스 애널리스트의 설명은 좀 더 구체적이다. 3중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앤 치아오 애널리스트는 "중국 정부가 중국 반도체 기업이 생산 능력을 확장할 수 있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고, 샤오미 등 스마트폰 제조사에게도 보조금을 지급해 자국 반도체 사용을 유도하고 있으며, 중국 소비자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해 스마트폰 구매 등을 장려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SBS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한 가트너의 쉬리시 팬트 애널리스트는 '중국 반도체 기업의 유리한 가격 정책'을 중국 반도체 기업의 급성장 이유로 덧붙인다. 종국적으로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과 일맥상통하는 것인데, 보조금 덕택에 창신메모리 등이 반도체를 경쟁사보다 저가로 공급할 수 있어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반도체, 정부 보조금으로 낮은 수율도 극복

보조금 덕분에 중국 업체들은 기술력도 빠른 속도로 높이고 있다. 이 대목에서 기억해야 하는 게 수율이다. '수율'은 투입량 대비 정상 제품 생산량으로 거칠게 정의할 수 있다. 당연히 수율이 높아야 기업의 경제성도 높아진다. 100개의 제품을 생산했지만, 50개는 불량품이라면 기업 입장에서는 제품화하기 어렵다. 보통의 경우라면 수율을 높이기 위한 연구를 진행한 뒤, 수율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오면 제품화를 시도한다.

문제는 그 기간 동안 수율이 높은 경쟁사들은 시장에서 이익을 내고, 또 그 이익을 바탕으로 신제품을 개발한다. 그 시간만큼 수율을 높이는 데 몰두한 기업은 시장에서 결국 뒤쳐진다. 반도체 산업이 '시간 싸움'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삼성전자에서 30년간 반도체 연구원으로 근무한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 석좌교수는 "중국 업체들은 보조금 덕분에 수율 문제를 극복하고 있다"고 말한다. 불량품이 많이 발생해도 보조금 덕분에 중국 업체는 계속해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기술력과 수율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기업은 수율을 높이기 위해 멈추는 시간 없이 계속해서 생산과 개발을 같이 하면서 기술력을 높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래도 아직 기술 격차는 있다. 가트너의 쉬리시 팬트 애널리스트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HBM 등 고가 제품 시장과 DDR4 등 상품화(범용화)된 (저가) 제품 시작으로 양극화되고 있다"며, "현재로선 (삼성전자 등) 주요 공급 업체의 이익에 큰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창신메모리 등 중국 업체들은 HBM과 그보다는 못하다고 하지만 역시 고부가가치 제품인 LPDDR5 등에도 투자를 하고 있다. 쉬리시 앤트 애널리스트는 "향후 3~5년간 중국 업체들의 기술 발전은 고가 제품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일부 잠식하기 시작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트렌드포스의 앨리 웡 애널리스트는 "특히 중국 시장에서는 삼성전자는 기존의 3개 주요 공급업체가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한다.
 

정해져 있는 위기 타개책…삼성은 할 수 있을까

삼성전자 3조 원 규모 자사주 소각

다시 삼성 반도체의 위기로 돌아와 보자. 지금 삼성전자는 고가 제품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범용 제품 시장에선 중국 업체들이 낀 샌드위치 신세다. 위기 타개책은 정해져 있다. 기술력을 높여 고가 제품 시장에서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범용 제품 시장에선 저가 물량 공세를 벌이고 있는 중국 업체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방향은 SK하이닉스 모델이다.

지금 삼성 반도체에 시급한 건 HBM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트렌드포스의 엘리 웡은 "삼성전자가 단기적으로는 2026년까지 (엔비디아 등의) HBM 주요 공급업체가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연구개발 투자 증가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회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인다. 바꿔 말해 삼성전자가 HBM 등 고가 제품에 대해 투자, 즉 기술 개발에 소극적이었다는 의미다.

신제품에만 공을 들이다 보면 스테디셀러에 소홀할 우려도 있다.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를 놓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삼성전자의 D램 경쟁력도 예전만 못하다는 게 중론이다"는 김용석 가천대 이야기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HBM도 결국 D램을 쌓아서 만드는 것인데, D램 품질이 떨어진다면 HBM도 성공하기 어렵다. 아무리 좋은 집을 짓겠다고 해도 원자재가 좋지 않다면 결국 부실 건축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삼성전자에게 필요한 건 시장을 읽는 눈이다. 어쩌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AI 시대가 이렇게 빨리 도래할지, 그리고 AI 시대에 GPU가 각광받을지, GPU 호황과 더불어 HBM이 중요해질지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몰랐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이 현재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성패를 갈랐다.

현직 반도체 연구원은 두 회사의 희비가 갈린 데 대해 "임원진들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SK하이닉스는 (HBM이)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을 해서 (연구를) 계속 유지시켰던 것이고, 삼성전자는 거의 중단시켰던 게 컸다"고 진단한다. 업계 관계자의 표현을 빌면, "HBM이 돈이 되면 삼성전자는 들어오려고 했는데, 이제는 이미 늦어 돈이 돼버렸는데도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AI 시대에 저전력 반도체 등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시기가 갑자기 돈이 되는 때가 되어 지금 바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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