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지난 11월 22일, 미국 대선이 끝난 뒤 약 보름이 지난 시점에 백악관으로 돌아올 트럼프 대통령을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와 비교하며 권위주의 정치 체제의 등장을 경고한 마샤 게센의 칼럼을 소개했습니다. 그 글을 쓴 시점으로부터는 약 3개월이 지났습니다. 해가 바뀌어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는 곧 한 달이 되고, 이 글을 쓰는 17일은 마침 매년 2월 셋째 주 월요일,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생일을 기념하는 미국 연방 휴일 대통령의 날(President Day)입니다.
게센은 꾸준히 트럼프가 법치(rule of law) 대신 권위주의적 통치에 필요한 법(law of rule)을 만드는 '독재적 돌파구'에 관해 경고하는 칼럼을 썼습니다. 이번에는 오르반 총리와 헝가리 대신 본인이 나고 자란 소련과 푸틴 대통령 하의 러시아를 비교하며 제왕적 대통령의 길을 가고 있는 트럼프를 향해 미국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앞서가는 복종(anticipatory obedience)"을 우려하는 글을 썼습니다. "앞서가는 복종"은 예일대학교의 역사학자 티모시 스나이더가 쓴 표현인데, 맥락을 고려하면 '권력에 알아서 기는 상황'이라고 풀어 옮길 수 있습니다. 게센이 어떤 점을 우려하고 지적했는지 우선 칼럼을 번역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일론 머스크와 정부효율부, 그리고 강성 지지층을 앞세워 수많은 관습을 바꾸고, 제도와 규범을 고쳐 쓰고 있다는 분석은 여러 차례 전해드렸습니다. 그 가운데는 선거에서 이긴 정당과 정치인이 유권자들이 투표로 위임한 권한과 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했다고 볼 수 있는 것들도 있고,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할 뿐인 대통령으로서 소위 '선 넘은', 즉 월권을 행사한 것들도 있습니다. 대통령의 잘잘못을 두고는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제도 하의 공화국 시민에게는 권력자가 잘못하고 선을 넘을 때 이를 지적하고, 나아가 권력의 남용에 저항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권력이 총칼을 앞세워 법과 제도를 짓밟으려 할 때는 잘못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선을 넘으려는 시도가 노골적인 만큼 선과 악이 명확히 구분되곤 합니다. 그렇다고 저항하는 게 쉽다는 말은 물론 아니지만, 민주주의를 지키는 시민이라면 적어도 어느 편에 서야 할지는 분명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게센이 지적한 대로, 권력이 두려워서 억지로 복종하기보다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합리적인 판단 끝에 "앞서가는 복종" 대열에 동참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게센은 선거 전에 LA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지지 후보를 밝히던 오랜 관행을 갑자기 내다 버렸을 때, 마크 저커버그가 소셜미디어의 팩트체크 기능을 대폭 축소한다고 발표했을 때, 언론사들이 뚜렷이 잘못한 게 없는데도 정권의 겁주기용 소송에 굴해 합의에 이르렀을 때, 여러 대학과 기업들이 학생, 직원을 뽑을 때 적용하던 차별 금지 조항을 알아서 없앨 때 위기를 실감했다고 썼습니다.
게센은 알아서 복종하는 이들이 대는 '나름의 이유'를 다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그 이유는 서로 얽혀 있거나 겹치기도 하는데, "타인에 대한 책임", "더 큰 목표", "실용주의", "내가 안 해도 결국엔 이렇게 될 거야", "시대정신"이라는 제목으로 설명됩니다. 이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우리말로 풀어보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처럼, "괜히 나섰다가 남들한테까지 피해주지 말라"는 조언처럼,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통념처럼 대부분 저항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꺾는 언어들입니다.
개인의 관점에서는 합리적인 사고 끝에 내린 결정처럼 보이는 것들도 민주주의 사회를 지켜내야 할 시민의 관점에서 보면 무책임하거나 잘못된 결정일 수 있습니다. 시민들 사이에 정치적인 관점과 견해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지만, 그 다른 생각을 드러내지 못하게 가로막고 토론을 제약하려 하는 건 그 자체로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나아가 저커버그의 메타가 팩트체킹 기능을 축소하겠다고 발표한 뒤 쓴 글에서도 인용했던 한나 아렌트의 통찰을 한 번 더 인용하면, "전체주의 통치의 이상적인 주체는 신념에 찬 나치나 신념에 찬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의 구분, 참과 거짓의 구분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사실과 거짓이 토론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됩니다. 사실과 거짓마저 진영 논리에서 바라보려는 모든 시도도 단호히 배격해야 합니다.
대통령 넘어 왕이 되려면 넘어야 할 산, 수정헌법 22조
우선 수정헌법 22조의 핵심은 가장 앞부분의 "누구도 두 번 이상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없다(No person shall be elected to the office of the President more than twice)"는 구절에 있습니다. 권력의 이양에 관한 미국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언급해야 하는 인물은 대통령의 날의 주인공이기도 한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입니다. 4년씩 두 번, 총 8년 임기를 마친 워싱턴 대통령은 권력을 내려놓고 초야로 돌아갔습니다. 아직 대통령의 연임 규정에 관한 법제가 정비되지 않은 신생국 미국에 최대 두 번까지만 대통령직을 맡는다는 관행을 만든 사람이 워싱턴입니다. 이후 논란이 없지 않았지만, 세 번째 임기를 부여받은 대통령은 150년 가까이 나오지 않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