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란 이유로, 마이크를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의 스피커가 되는 저널리즘.
아프리카 가나 공화국, 서울에서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국제공항까지 12시간, 거기서 다시 서쪽으로 대륙을 가로질러 수도 아크라까지 6시간을 날아가야 도착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지난 9월 기후변화가 전 세계 먹거리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취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습니다. 이번 더 스피커는 '가장 책임 없는 이들이 가장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불평등한 기후변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비트코인보다 빠른 상승 폭' 기후변화에 치솟은 가격
코코아, 우리에게는 '카카오'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이 열매는 초콜릿의 원료입니다. 과육 안쪽의 씨앗을 발효시켜 볶은 뒤 높은 압력으로 갈아내면 '카카오 매스'가 되고, 여기에 우유와 설탕 등을 섞으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달콤한 초콜릿이 탄생합니다.
이 나무는 기본적으로 해발 고도 300m 이하의 적도 지방에서 자라는데, 강수량이 너무 적으면 말라버리고 반대로 너무 많으면 썩어버리는 등 까다로운 생육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때문에 코코아를 기를 수 있는 기후 조건을 갖춘 나라는 많지 않은데, 특히 서아프리카의 가나와 코트디부아르가 전 세계 생산량의 60% 이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이 지역에 식물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병명은 '검은 꼬투리병(Black Pod Disease), 코코아 열매에 치명적인 검은 곰팡이가 피는 질병입니다. 감염되면 줄기와 열매가 빠르게 썩어들어가는데, 치료법이 없어 나무째 베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초엔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적도 일대에 이상 고온과 폭우가 발생하는 '엘니뇨(El Nino)' 현상이 서아프리카를 강타했습니다. 한창 열매가 성숙해야 할 시기에 비가 쏟아지면서 습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곰팡이 포자가 급속도로 번지면서 두 나라의 코코아 생산량은 최대 절반 가까이 곤두박질쳤습니다.
공급 충격은 곧바로 전 세계로 번졌습니다. 지난해 1월 톤당 2천600달러 수준이던 코코아 가격은 올해 4월엔 1만 1천 달러로 4배 넘게 치솟았습니다. 같은 무게의 구리보다 비싼 가격이고, 같은 기간 비트코인보다 빠른 가격 상승률입니다. 이렇게 가격이 올랐으니 사실상 코코아 생산을 독점하는 농부들도 이득을 보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코코아 공화국'의 눈물
가나에선 약 80만 명이 코코아 농업에 종사하는데 대부분 한 달에 30달러, 우리 돈 4만 2천 원 이하로 생활하는 극빈층입니다. 이들은 평생 코코아를 기르지만, 그걸로 만드는 초콜릿은 먹어본 적도 없습니다. 초콜릿 가격에서 다국적 거대 기업인 제조·유통업체, 그리고 정부가 가져가는 몫을 빼면 농부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6%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검은 꼬투리병'의 확산을 막으려면 감염된 나무를 빠르게 베어내고 새 묘목을 심은 뒤 살균제를 뿌려야 하는데 이들에게 그럴 돈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결국 농부들은 그나마 소득을 내던 코코아 농사를 포기하고 금광 등 다른 산업으로 떠나게 됩니다.
조셉 아이두ㅣ가나 코코아위원회 위원장
"우리는 코코아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연간 약 5억 달러를 빌리고 있습니다. 코코아를 다시 심는 데에만 3년이 걸리고, 나무가 완전히 성숙하려면 그로부터 7년이 더 걸립니다."
"많은 농부가 문맹이고, 적절한 생활 소득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농부가 코코아 농장을 버리고 떠납니다. 이들이 떠나가면 공급망 전체에 초콜릿이 없을 것입니다."
'기후 불평등'의 민낯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