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제철 본사 방문하는 강제징용 생존 피해자의 딸
'제3자 변제' 해법 수용을 거부한 일제 강제징용 소송 원고 유가족이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기 위해 일본 피고 기업을 방문했으나 문전박대당했습니다.
피해자 가족은 일본 피고 기업을 상대로 "끝까지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징용 피해자 이춘식·양금덕·정창희 씨의 유가족이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 변호인 등과 함께 징용 피고 기업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기 위해 25일 오전 도쿄 지요다구 마루노우치의 일본제철 본사를 찾았습니다.
이들은 한국 대법원에서 징용 피해 손해배상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뒤 한국 정부가 '제3자 변제' 해법에 따라 지급하려는 배상금 수령을 거부한 이들입니다.
제3자 변제 해법을 거부한 소송 원고 중 1명인 고(故) 박해옥 할머니의 자녀는 개인 사정으로 이번 방문에 불참했습니다.
일본제철 강제징용 생존 피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의 장녀 이고운 씨는 원고들을 대리한 임재성 변호사,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과 함께 일본제철 본사 건물 안으로 들어갔지만, 관계자도 만나지 못한 채 약 10분 만에 발길을 돌려 나왔습니다.
이들은 대법원 판결 결과를 받아들여 배상하라는 내용의 요청서를 들고 갔지만 일본제철은 이를 상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임 변호사는 "사전에 면담을 요청하고 갔는데도 '약속이 없어서 면담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피해자 가족이 일본제철에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요청서를 전달하고 싶으니 직접 받아 달라고 했지만, 일본제철 직원은 '시간이 없어서 만나러 내려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대답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요청서를 데스크에 접수하면 공식적인 접수로 인정해 줄 수 있냐고도 물었지만 '인정할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면담을 거부당하고 나온 이 씨는 이런 일본제철의 태도에 대해 "비겁하다. 당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며 "요청서를 받아줘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아버지는 이 회사 사원으로 있었고 이 건물(일본제철 본사)에도 아버지의 피와 땀이 들어가 있다"면서 "내가 일본제철에 사죄받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많은 비가 쏟아지는 속에서 이 씨와 함께 미쓰비시 히로시마 중공업 피해자인 고 정창희 할아버지의 장남 정종건 씨,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의 아들 박상운 씨는 부모 사진 및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글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했습니다.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등 피고 기업은 한국인 징용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고 인식하고 있다"며 "한국 대법원 판결은 협정에 반하는 것으로 매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도 지난해 말 이후 이어지는 한국 대법원의 일본 기업에 대한 배상 판결에 대해 "한일청구권협정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라면서 한국 정부에 제3자 변제 해법을 통해 해결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3월 일본 기업이 내야 할 배상금을 재단이 모금한 돈으로 대신 지급하는 제3자 변제 방식을 발표했으며,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15명 중 11명이 이를 수용했습니다.
정부는 이춘식 할아버지를 비롯한 피해자 4명이 이 방식을 거부하자, 배상금을 법원에 공탁하는 카드를 꺼냈으나 법원의 공탁 불수리 결정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제3자 변제 방식 해법을 거부하는 4명은 해당 기업의 재산 강제 매각을 통한 해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날 징용 피해자의 일본 기업 방문에는 한국과 일본 취재진 수십 명이 몰려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일본제철 경비원들은 건물에 들어가는 피해자 가족의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했습니다.
피해자 유가족은 일본제철에 이어 다른 징용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를 방문해 항의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