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좋은 땅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이따금씩 받게 되는 '좋은 땅' 투자 권유 전화. 어차피 지킬 수 없는 내 번호지만 그들에게 전화번호가 알려진 게 일단 별로 기분 좋지 않고, 느닷없이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좀 탐탁지 않고, 욱 하고 순간 뭔가 치밀어 오르다가 갑자기 그런 좋은 땅 한 조각 없다는 현실에 난데없는 허탈함이 몰려오는 그 전화. 이른바 투기꾼들의 온상, 기획부동산 광고 전화입니다. 이들의 역사는 사유 재산 개념이 생긴 이후의 인류 역사와 맞먹을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치 없는 물건을 거짓으로 속여서 비싸게 팔고 그냥 사라지는 겁니다.
국세청이 이 기획부동산들을 조사했더니 역시나 탈세로 의심되는 건들이 줄줄이 나왔습니다. 23개 부동산 업체, 96명이 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가능성도 없는 개발정보를 흘려서 사람들 눈멀게 하고 자기들이 사들인 땅을 몇 배, 몇십 배 더 비싸게 팔아버린 사람들이 세금을 제대로 낼 생각이 어디 있기나 하겠습니까.
무슨 상황인데?
한 기획부동산 일당이 손댄 곳은 경기도 화성에 있는 땅인데 철길이 지나가는 논이었습니다. 철길 주변에 역이 들어서고, 개발이 될 거라면서 그 땅을 산 지 한 달 만에 6명에게 쪼개서 되팔았습니다. 한 달 만에 뻥튀긴 돈은 3배. 그 땅은 개발 자체가 어려운 하천부지고, 개발 계획은 당연히 될 턱이 없는 안이었습니다. 이 땅을 산 사람 중에는 일용직으로 돈을 모은 70대 할머니도 있었는데, 어렵사리 모은 수천만 원을 여기에 묻었다고 합니다. 기획부동산이 할머니를 비롯해 6명에게 쪼개서 팔았기 때문에 이 땅은 돈도 안 되고 그렇다고 마음대로 팔 수도 없는 땅이 돼 버렸습니다. 그 기획부동산은 그 땅 주변에서만 수십 명에게 같은 수법으로 땅을 팔았고, 마찬가지로 쪼개팔기로 재산권 행사도 어렵게 돼 버렸습니다.
세금은 어떻게 안 냈을까요? 가장 쉬운 건 없는 비용을 있는 것처럼 만든 겁니다. 기획부동산은 법인으로 돼 있고, 텔레마케팅이란 마케팅 영업을 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일하지도 않는 텔레마케터를 허위로 잔뜩 고용해 놓고 월급을 준 것처럼 '비용' 처리하면 세금을 손쉽게 피해 갈 수 있는 겁니다. 이제 조사에 막 들어간 단계라 정확한 숫자를 말해주진 않지만, 경기 남부권에서만 이런 기획부동산이 수백억 원의 피해를 입혔고, 피해자는 6, 7백 명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앞에서 언급했던 일용직 70대 할머니 말고도, 연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사람들까지 있다고 합니다.
좀 더 설명하면
게다가 요즘은 기획부동산들이 시골로 많이 침투했다고 합니다. 고령화되고 있는 시골에 가서 판단력이 다소 흐려진 할아버지 할머니를 속여서 돈을 뜯어먹고 있는 겁니다. 또 요즘 워낙 지역 개발 계획들이 난무하다 보니 기획부동산들이 내놓는 계획들이란 게 훨씬 더 그럴듯해 보이게 됐다고도 합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이 잘 안 되는 상황들이 많아졌다는 거죠.
개인정보까지 버젓이 드러내놓고 영업하는 게 기획부동산인데 왜 잡아가진 못하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또 어렵답니다. 우선 이 기획부동산을 잡아가려면 사기죄를 적용해야 하는데 그들이 가장 많이 쓰는 수법이 '나도 속았다'라는 겁니다. 나도 정말 그 땅이 개발되는 줄 알았고, 진실하게 그 땅이 좋은 땅이라 생각했다, 개발될 미래 가치를 생각하면 판 가격은 오히려 싸다고 봤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단속이 어렵다는 겁니다. 말만 듣고 있어도 뚜껑이 열릴 것만 같은데도 처벌은 또 법에 따라야 하니 어쩔 수 없는 거겠죠. 그리고 개발 계획을 여기저기 뿌리면서 투자자를 모은 그 광고도 사기냐 과장 광고냐 그 사이에서 정확히 구분이 안 된다는 겁니다.
한 걸음 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