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미국의 롤링스톤스지(誌)는 한미(韓美) 합작영화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를 2023년 최고의 영화 1위로 선정하면서 이렇게 썼다.
"이 작은 규모의 걸작을 1월에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 봤을 때, 우리는 이미 올해 최고의 영화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 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감정이 남아 있다."
이 문장을 빌려 얘기하자면, 이제 2월일 뿐인데 나도 이미 올해 최고의 영화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역시 작은 영화지만 기대 이상의 수작이었다. "오키쿠와 세계"라는 일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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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20년 전 일이다. 큰 전투는 끝났지만 여전히 국지전과 테러가 횡행하던 이라크 전쟁 당시 자이툰 부대가 주둔하고 있던 이라크 북부의 아르빌에 취재 간 적이 있다. 아르빌은 세계에서 인간이 가장 오랫동안 거주한 도시로 나중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는데, 당시에 방탄모와 방탄조끼를 입고 돌아 본 도시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특히 하수도 시설이 없어서 가가호호(家家戶戶)에서 흘러나오는 더러운 오폐수와 배설물들이 골목길을 따라 졸졸 흐르다 마을의 공터에 모여서 거대한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그때 절감했다. '아, 문명이란 별 게 아니로구나. 똥오줌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이 바로 문명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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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858년, 메이지 유신 직전의 에도 시대다. 에도(지금의 도쿄)의 공동 주택에는 서민들이 산다. 그런데 큰 비가 오자 지붕에 비가 새고, 공동 변소는 똥물로 흘러 넘친다. 주민들은 뒷간에 가지 못해 "회충이 입으로 나올" 지경이고 "지릴까봐" 재채기도 참고 있다.
주민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건 '똥퍼' 청년인 야스케와 츄지다. 이들은 에도에서 인분을 퍼다가 배에 싣고 가서 교외의 농촌에 퇴비로 뿌려주면서 먹고 산다. (사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똥을 퍼가는 일은 7,80년대만 하더라도 시골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도시 곳곳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지금도 에도 곳곳에서 똥을 싸고 있어. 방귀 뀌면서 싸고 있다고. 저들 똥으로 먹고 살잖아. 그러니 감사히 받아야지."
으리으리한 사무라이 저택에서는 자신들의 똥은 서민들의 똥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면서 돈을 더 내고 가져가라고 똥차별을 하고, 인분이 똥지게에서 튀어 길에 많이 떨어졌다며 농부가 욕을 퍼부어도 똥퍼 청년 야스케와 츄지는 꿋꿋하고 밝게 세상을 살아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오키쿠의 아버지는 복수를 하러 온 사무라이들의 칼에 맞고, 단도(短刀)를 들고 아버지를 뒤따라간 오키쿠도 목을 다쳐 목소리를 잃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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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만 생각해도 이 영화는 흑백이길 잘했다. 흑백이어야만 했다. 첫 장면부터 푸지게 클로즈업된 인분은 화면이 흑백이라 그런대로 견딜만한데, 철퍼덕하며 떨어지는 오디오는 참기 힘들 정도로 극사실적이었다. 감독은 우스개 소리로 이 영화를 해외에서 상영할 때 '스릴러'라는 감상을 들었다고 전했다.
딸 오키쿠가 츄지를 좋아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겐베이는 사무라이와 결투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변을 보고 난 뒤 마침 똥 푸러 온 츄지에게 말한다.
- 자네, 세계라는 말을 아나? (이 영화의 메인 카피이기도 하다)
- 아뇨, 모릅니다. 읽고 쓸 줄도 몰라서…
- 이 하늘의 끝이 어디인지 아나? 끝 같은 건 없어. 그게 세계지. 요새 나라가 어수선한 건 이제 와서 그걸 알아서야.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야. 이보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이 세계에서 당신이 제일 좋다고 해줘.
'세계(世界)'는 제목에 들어갈 정도로 이 영화에서 중요한 단어다. 의식이 깬 관료였던 오키쿠의 아버지는 세계의 변화를 깨닫고 있었다. 영화의 배경인 에도 시대 말기(末期)는 서구 열강의 압력으로 막부의 쇄국 정책이 막을 내리면서 사무라이 시대가 가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시기다.
"언젠가 내가 세상을 뒤집을 거야. 우리가 없으면 에도는 똥 천지가 될 걸."
세 명의 청춘 남녀에게도 새 시대에 대한 공포와 희망이 공존하던 이 시기는 '순환 경제'의 시기이기도 했다. 똥은 분뇨수거업자들에 의해 퇴비가 되어 채소를 키우고 그 채소는 다시 사람들 입으로 들어가 똥거름이 됐다. 인분 실은 배에 채소를 싣는다고 츄지가 타박하자 야스케는 말한다.
"어차피 입에 넣으면 다 곤죽으로 변하잖아. 돌고 돌아 똥이나 음식이나 똑같아."
기후 변화의 시대는 지금 우리에게도 새로운 가치관과 희망을 요구한다. 순환의 세계관은 어찌보면 '오래된 미래'처럼 다시 돌아와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이 영화의 모든 세트와 의상 등을 재활용품으로 쓴 사카모토 감독은 "에도 시대에는 모든 것을 끝까지 사용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일회용품이 넘쳐나는 시대에 에도 시대의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마틴 루터의 말을 생각하면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이 영화가 말하는 또 한번의 '세계'는 영화의 막바지에 나온다.
목소리를 잃고 한동안 칩거하다 아이들과 스님의 간곡한 요청에 다시 글을 가르치러 절에 나온 오키쿠가 글자를 써서 아이들에게 들어 보인다.
'세계'(せかい).
스님은 이렇게 해설한다. "세계라고 하는 것은 저쪽을 향해서 가면 반드시 결국 이쪽에서 돌아온다. 그런 겁니다."
"끝 같은 건 없는 게 세계"라더니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세계관 속에 사는 승려가 한 말인 만큼 이 대목에서 나는 '광고 천재'로 불린 이제석씨가 세계 유수의 광고제에서 수상했던 캠페인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뿌린대로 거두리라)가 떠올랐다. 결국 순환 경제와도 연결되는 말이리라.
그리고 츄지가 오키쿠에게 "이 세계에서 당신이 제일 좋다"며 눈 내리는 골목길에 꿇어앉아 몸짓으로 말하는, 아름다운 포옹 씬이 나온다. 분뇨 냄새 나는 세상 더러운 남자를 살며시 껴안은 오키쿠. 그 씬에선 좁은 골목길의 두 남녀만으로도 '세계'는 충일(充溢)하다.
이 영화의 백미(白眉) 가운데 하나는 오키쿠 역을 맡은 쿠로키 하루의 명연(名演)이다. 멀어져가는 츄지의 발소리를 들으려 문에 귀를 기울이는 장면과 붓글씨 연습 중에 자신도 모르게 '충의'(忠義. 일본어 발음으로 '츄기')를 '츄지'라고 잘못 써 놓고 혼자 방바닥에 뒹굴며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하는 장면은 그 나이대 배우가 할 수 있는 연기를 넘어선다. 5년 전 타계한 일본의 국민 배우 키키 키린이 '일본을 짊어지고 갈 배우'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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