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양 상급학교 대수학 시간
"한반도의 전반적인 형상은 대체로 이탈리아반도를 떠올리게 한다. …한강은 테베레강으로, 제주는 시칠리아섬이라 할 수 있다."
1902년 머나먼 '이태리'(伊太利·이탈리아의 음역어)에서 온 젊은 외교관은 훗날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약 7개월간 그가 보고 느낀 '꼬레아'에 대한 인상이었습니다.
제3대 이탈리아 영사이자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와 이탈리아 지리학회 회원으로 활동했던 카를로 로세티(1876∼1948)는 한국의 자연과 풍광, 사람들의 모습을 다양한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낯선 땅에서 그가 포착한 순간은 20세기 초 한국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내일(27일) 개막하는 사진전 '모든 길은 역사로 통한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140년'에서는 '카를로 로세티' 컬렉션의 귀한 사진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당시 한양(서울)의 학교 모습을 담은 사진도 그중 하나입니다.
1902∼1903년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에는 한복에 갓을 쓴 남성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칠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칠판에 적힌 건 다름 아닌 2차 방정식, 수학 시간의 모습입니다.
이지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수업을 진행하는 인물은 호머 헐버트(1863∼1949) 박사"라며 "카를로 로세티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도왔다고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동대문 대로를 촬영한 사진에서는 당시 시대적 상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양쪽에는 기와집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백의(白衣)를 입은 사람들이 그사이를 오갑니다.
카를로 로세티는 '파리가 프랑스 그 자체인 것처럼 서울은 곧 한국'이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두 남성이 바닥에 앉아 장기를 두는 모습을 담은 사진 '어려운 행마(行馬·바둑이나 장기 등에서 말을 씀)'에서는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집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1950년대 한국과 이탈리아의 만남도 비중 있게 다룹니다.
이탈리아는 6·25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지만 국제 사회의 요청을 받아 의료부대를 파병했습니다.
이들은 전쟁에서 다친 병사뿐 아니라 민간인 수만 명을 치료하며 전쟁으로 인한 아픔을 보듬었습니다.
서울 영등포 신길동, 지금의 우신초등학교 부지에 문을 열었던 '제68 적십자병원'의 활동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 등이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됩니다.
1대 병원장이었던 루이지 코이아 대위와 그의 뒤를 이은 파비오 펜나키 소령의 모습, 부대원들이 각종 물품을 옮기는 모습 등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제68적십자병원에서 임무를 수행한 참전 용사들의 생전 인터뷰도 영상으로 공개됩니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140년 우정을 조명한 이번 전시에서는 음악, 스포츠, 패션,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함께 성장하는 두 나라의 모습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주제곡 '손에 손잡고'를 작곡한 조르지오 모로더, 2022년부터 여자 프로배구단 흥국생명을 이끄는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 등의 사진이 관람객을 맞습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피사의 사탑'을 모티브로 한 '포토존' 공간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 전시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주한이탈리아대사관, 연합뉴스, 안사(ANSA)통신, 주한이탈리아문화원 주최로 열리며, 외교통상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합니다.
전시는 오늘(26일) 오전 10시부터 온라인(www.yna.co.kr/together140)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사진=이탈리아 지리학회 제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