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구력에서는 판결의 핵심 내용을 좀 더 세밀하게 따져보려고 합니다. 판결 당일 재판부는 판결문 내용이 길어 언론들이 제대로 판결 내용을 숙지하기 어렵다고 봤는지, 판결 결론을 요약 정리한 보도자료를 내놓았습니다. 해당 보도자료에서 재판부는, 가습기살균제를 처음 만들어 파는 과정에서 제조 수입사가 원료물질에 대한 유해성 신청 당시 환경부가 심사 및 심사결과 공표 과정에서 재량권 행사 정도를 넘어서 합리성을 잃었다는 점을 핵심 내용으로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앞으로 비슷한 가습기 살균제 국가 책임 소송과 관련해 지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죠. 구체적으로 어떻게 국가가 잘못했다는 건지, 판결문의 구조와 구성 논리를 상세히 뜯어보고자 합니다.
가습기살균제 국가책임 인정, 재판부 생각은?
1. 이 법원의 심판대상
2. 기초사실
가. 당사자들의 지위
나. PHMG와 PGH에 대한 각 유해성 심사
1) PHMG에 대한 유해성 심사
2) PGH에 대한 유해성 심사
다. 원고들의 이 사건 가습기살균제 사용 및 원인 미상 폐손상 발생
라. 질병관리본부의 조사 등
마. PHMG와 PGH에 대한 각 유해성 재심사
바.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의 제정 시행 및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 등
3. 국가배상책임의 발생
가. 원고들의 주장 요지
나. 관련 법령
다. 판단
1) 관련 법리
2) 국가배상책임의 성립
가) 의약외품 범위 지정 관련 주장에 대한 판단
나) 신속한 역학조사 관련 주장에 대한 판단
다) 안전관리 대상 품목 지정 등 관련 주장에 대한 판단
라) PHMG와 PGH의 유해성심사 관련 등 주장에 대한 판단
4. 국가배상책임의 범위
가. 당사자들의 주장
나. 관련 법리
다. 인정사실
라. 판단
1) 손익상계의 대상 등
2) 구체적 판단
마. 소결론
5. 결론
국가책임 4개 쟁점 중 인정된 건 '유해성 심사'
- 국가책임 '기각'된 건?
가) 의약외품 범위 지정 관련 주장에 대한 판단
나) 신속한 역학조사 관련 주장에 대한 판단
다) 안전관리 대상 품목 지정 등 관련 주장에 대한 판단
- 국가책임 '인용'된 건?
라) PHMG와 PGH의 유해성심사 관련 등 주장에 대한 판단
어떻게 국가책임을 인정한 건지 따져보는 글인 만큼 라) 항목을 집중해서 뜯어보겠습니다. 이 항목은 가습기살균제 최초 제조 당시 '유해성 심사' 쟁점이고요. 1,2심 내내 원,피고간 가장 핵심적인 다툼이 됐던 사안입니다.
지난번 지구력에서 설명드렸듯이 유해성 심사와 관련해서 2심 다툼 과정에서는 1심 때와 달리 원고 측의 많은 추가 증거들이 보강됐습니다. 1심 소 제기가 2014년에 이뤄졌고 기각 판결이 2016년 11월에 나왔습니다. 이때까지 국가 책임을 드러낼 상세한 자료들이 없었기 때문에 구체적 증거가 부족했습니다. 실제로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 측 주장을 입증할 증거가 대부분 보도자료나 당시 언론 기사에 그칠 뿐이라는 지적을 수차례 한 바 있습니다. 이에 비해 2심 진행 도중에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에 따라 특별조사위원회란 게 만들어졌습니다. 이 사참위가 조사한 결과 환경부 내부 문건과 검찰 수사 당시 관련자 진술 등이 확보되면서 국가책임을 드러낸 관련 자료들이 많이 발굴됐습니다.
이제 다시 라)로 돌아가보죠. 라) 첫 문단에서 재판부는 두 가지 항목으로(①,②) 나눠서 국가 책임을 묻습니다. ①에선 업체 측이 유해성 심사 당시 신청서에 기재한 용도(PHMG: 카펫항균제, PGH: 섬유제품, 음식물포장재, 농업 살균 제품에 첨가되는 항균제)로 사용되는 것을 전제로 심사했더라도, 그 결과를 대중에게 고시할 때에는 위와 같이 특정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조건으로 심사했음을 알 수 있는 아무런 기재 없이 '유독물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만 기재하고 이를 10년간 방치했다고 설명합니다.
이어서 ②에선 PHMG에 대해 추가로 판단을 내립니다. 불충분한 과학지식에 근거해 고분자 물질이라는 이유만으로 독성시험을 면제하면서 물에 잘 녹는지 여부 등도 확인하지 않은 채 용도 제한 없이 '유독물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공표한 건 유해성 심사가 환경부 재량에 맡겨져 있더라도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거나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해 위법하며, 소속 공무원의 과실도 인정된다는 겁니다. 조금 어려우신가요. 아래에서 좀 더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재판부는 이어서 (1)~(9)까지 번호를 달아 구체적인 판시를 하는데요. 이렇습니다. (1)항은 당시 관련 법령인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에 대해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화학물질 규제는 고도로 전문적이고 기술적 내용이 많아 유해성심사 제도 전반에 환경부 장관 등에 광범위한 재량을 부여했다고 지적합니다. 유해성 검사 신청자에게 필요한 기타 관계자료 제출을 요구하거나 명할 수 있다(제8조 제2항), 심사 마친 후 그 결과 고시하는 방법은 모두 환경부령으로 정하도록 돼 있다(제8조 3항, 제10조) 이런 게 재량권이라는 겁니다.
(2)항은 한 발 더 들어가 위 법령에 따른 유해성심사 제도를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이 제도의 틀을 종합해 보면) 유해성심사 신청서에 기재된 용도로 한정하지 않고 누구든지 그 물질을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전제로 유해성을 파악한 다음 이를 고려해 유해성을 판단 고시했어야 한다고 설시 합니다. 또는 현실적인 문제로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최소한 심사결과를 고시할 때, 특정 용도를 전제로 유해성심사가 이뤄진 것임을 명시함으로써 다른 용도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아무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고, 나아가 다른 용도로 제조 수입하려는 자는 추가로 유해성심사를 받도록 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PGH 유해성 심사, 재판부 판단은?
재판부는 이러한 불충분한 심사와 성급한 고시 발표 등이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의 목적 등에 비춰 보면 현저히 합리성을 잃어 위법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합니다.
(4)항에서 재판부는 (3)항에서 밝힌 불충분한 심사와 성급한 고시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제조사인 세퓨 대표의 진술 등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세퓨 대표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검찰 조사시 "심사 결과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와서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을 했다"라는 겁니다. 자신으로선 제품 판매시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는 주장인 거죠. 판결문은 "불충분한 유해성 심사결과를 고시함으로써 그 안전성을 보장한 것과 같은 오인을 유발"했다고 지적합니다.
(5)항에서는 이에 대한 환경부 측 항변과 이에 대한 재판부 판단이 나옵니다. 환경부는 사용 용도를 제한해 심사결과를 고시하거나, 심사 이후 다른 용도로 사용시 신고하도록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구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 유해성심사 방법, 심사결과 고시 방법 등에 대해 환경부 장관에서 상당한 재량을 부여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해당 법에는 특정 용도하에서 사용되는 것을 전제로 판단해야 한다는 등 심사 방법에 관한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없다는 겁니다. 재량권에 따라 심사가 이뤄진다는 거죠. 그런데도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신청서 기재 용도를 전제로 심사할 재량이 있었다면 이와 마찬가지로 용도를 병기하는 등 심사 내용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방법으로 고시할 재량권도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별도의 사례를 제시합니다. 1992년 이뤄진 또 다른 화학물질의(헥사클로로) 유해성 심사 이후 고시를 보면, '유독물에 해당 안됨. 페인트 제조용에 한해 사용할 것' 이렇게 스스로 용도를 제한하는 내용을 병기한 적도 있다는 겁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또 하나의 판단도 내놓습니다. 환경부 주장대로 용도를 제한해 심사 결과를 고시할 권한이 없었다면 이에 맞춰서 심사 과정에서도 당해 화학물질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것을 전제로 자료 제출 권한을 행사하는 등의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했어야 한다는 겁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