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화재가 잇따르고 있지만 원인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배터리 화재 특성상 열폭주 등으로 배터리가 남김없이 전소되기 때문에 화인을 조사할 증거를 찾기 어렵다는 게 주요 이유입니다.
환경부가 올해 9월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충 및 안전 강화 협의체를 발족했는데, 여기서도 전기차 화재 대응을 위한 충전기 이슈가 주요한 논의 안건이었습니다. 전기차 화재 가운데 큰 비중이 주차장에서 충전 중에 발생하는 사례인데, 이런 화재가 발생할 경우 피해가 커질 수 있는 만큼 개선책을 마련하겠다는 겁니다.
지하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 나면 어쩌나
협의체는 현재 충전기의 90%를 차지하는 완속 충전기의 과충전을 막는 게 화재 예방책이라고 결론 내리고, 이를 위한 개선책을 사실상 확정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실제로 대부분 충전 중 화재가 완속 충전기에서 발생하는데, 이 완속 충전기는 급속과 달리 취약점이 있습니다.
급속 충전기에는 전기차와 통신을 주고받으며 전기차내 배터리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는 통신 모뎀이 설치돼 있습니다. 배터리 잔량, 충전 전압과 전류량 등을 체크할 수 있는 만큼 과충전을 예방하고 안정적인 충전이 이뤄질 수 있는 겁니다.
실시간 차량 정보 충전기로..내년에만 사업비 8백억 원
환경부가 협의체를 통해 확정하려는 개선안은 PLC 모뎀과 같은 유선 통신 기능 혹은 OBD-2를 통한 무선 와이파이를 이용한 데이터 전송 시스템을 완속 충전기에 도입하는 방안입니다.
유선이냐 무선이냐 차이가 있긴 하지만 급속 충전기처럼 배터리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안정적인 충전 관리를 완속에도 적용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합니다. 이를 위해서 환경부는 이미 협의체 확정안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화재 예방 충전기 사업비 명목으로 8백억 원을 2024년 예산안에 신청했는데, 감액 없이 전액 국회에서 통과됐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남습니다. 내년에만 8백억 원을 쓰기로 하는 개선책을 결정한 건데, 충전 중 화재 원인 규명은 이뤄졌을까요? 제가 환경부와 협의체 위원들을 취재한 결과 그렇지 못했습니다.
전기차 화재 46건 중 40건 "충전 종료 이후에"
환경부 전기차 안전 강화 협의체는 지난 4년간 주차장 내 전기차 화재 건수를 소방 방재청 등의 자료를 통해 46건으로 도출하고, 관련 위원들의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과충전 예방'이란 대응책을 마련했습니다. 그 분석 결과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46건의 화재 가운데 40건은 전기차 충전이 끝난 이후에도 충전선이 차량에 꽂혀있는 차량에서 발생한 화재라는 겁니다.
이 40건 모두 완속 충전기에서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또 다른 1건은 급속 충전기에서 발생했고, 충전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불이 났습니다. 나머지 5건은 충전 중 혹은 충전 종료 후 여부가 드러나지 않은 미확인 사례들입니다.
완속 충전기에서 발생한 모든 화재가 충전이 종료된 이후라는 공통점이 드러난 만큼, 좀 더 정밀한 조사를 벌여 화재 원인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밝혔어야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