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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사람들 착각이 아니라 진짜 현실을 못 보는 것 아닐까요

[뉴스페퍼민트] '필수 노동'을 우대하지 않는 D.I.Y. 사회 (글: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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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스프 뉴스페퍼민트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미국 언론의 사명 가운데 "기계적인 정치적 중립"은 없습니다. 이번에 공화당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으니, 다음에는 민주당을 비판하는 기사를 써야 한다는 원칙 같은 건 없다는 말입니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팩트체크를 거쳐 진실을 보도하는 걸 원칙으로 삼고, 그러다 보면 어떤 사안이든 일관되고 공정한 잣대로 취재하고 분석해 보도할 수 있게 될 뿐입니다. 신문들은 아예 선거 전에 어느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하죠. 오피니언란에 올라오는 칼럼에서는 그 언론사의 논조가 아무래도 더 분명히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란에는 최근의 거시경제를 설명해 주는 글이 자주 올라옵니다. 이런 칼럼들은 대개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 성적표가 생각만큼 나쁘지 않다"는 결론으로 글을 맺곤 합니다. 구구절절 드는 이유를 읽다 보면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다가도 한편으론 주변 사람들 사는 모습은 여전히 팍팍해 보이던데 경제가 정말 잘 돌아가고 있는 게 맞나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자세히 설명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사람들이 어떤 일의 원인을 잘못 알고 있으니, 그걸 바로잡아 보려고 한 것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주류 언론 대부분이 그렇지만, 뉴욕타임스도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뉴욕타임스 칼럼 필진도 마찬가지죠. 그렇다고 이들이 바이든 행정부를 무조건 옹호하는 글을 쓰지는 않지만, 바이든 대통령과 행정부가 과도한 비판을 받는다고 여기는 부분에 관해선 정부를 변호하는 논조의 글을 자주 씁니다. 경제에 관해선 폴 크루그먼이 대표적입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 성적표가 나쁘지 않다며 짐짓 독자들을 꾸짖는 듯한 톤의 글이 올라오는 건 이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그래도 여전히 개운치 않을 때가 많습니다. 경제학자들의 친절한 설명은 일반 사람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체감 경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칼럼을 읽다 보면 종종 어딘가 허전할 때도 있고, 심지어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트리시 맥밀란 커텀이 쓴 이번 칼럼을 읽고 여기에 관한 궁금증이 상당 부분 해소됐습니다.

 

우선 이 글을 "오컴의 면도날" 원칙에 따라 이해하는 건 잘못입니다. 각종 지표와 숫자, 데이터를 동원해 지금의 경제 상황을 설명하는 게 문제일 수 있는 건 그 설명이 복잡해서가 아닙니다. 트리시 맥밀란 커텀은 단순한 설명이 가장 좋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시적인 지표에 갇혀서 복잡하고 어려운 계산을 바탕으로 한 분석과 예측을 내놓는 데 신경 쓰느라 정작 누구나 매일 같이 생활세계에서 겪는 어려움과 부침을 못 보다 보니, '반쪽짜리 설명'이 나온 건 아닌지 돌아보자는 게 칼럼의 주장입니다.

칼럼에 소개된 여러 사례에 글을 읽는 독자 대부분은 어렵잖게 공감할 수 있을 겁니다. 사소하게 불편한 것들이 의외로 일상을 지배하는 경우가 살다 보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상황을 생각해 보죠. 미국은 원래 육아휴직 제도가 법으로 보장돼 있지 않습니다. 주요 선진국 가운데 육아휴직 제도는 단연 가장 후진 나라가 미국입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비용도 믿을 수 없이 비쌉니다. 그나마 덜 비싼 곳이 없지 않지만, 이런 곳은 경쟁률이 너무 높아서 기약 없이 대기만 하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할 나이까지 자리가 안 날 때도 있습니다. 팬데믹도 끝났으니, 재택근무도 끝내자며 출근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회사에 다니는 부모가 받는 극심한 스트레스는 낮은 실업률이나 높은 임금 인상률 같은 거시경제 지표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도저히 포착하고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필수 노동'을 포착하지 못하는 지표

사회를 꾸려 가는 데 필요한 노동을 지칭하는 말은 칼럼에도 여러 가지가 등장합니다. 숨겨진 노동(hidden labor), 보이지 않는 노동(invisible labor), 그리고 사람들이 가계 단위에서 직접 알아서 하는 노동이란 뜻에서 "D.I.Y. 노동"이란 표현도 썼습니다. 가사 노동의 상당 부분은 여성이 여전히 절반 이상을 맡은 돌봄 노동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사회의 재생산(social reproduction)을 위한 노동과 제도적 지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고, 이 모든 걸 필수 노동(essential labor)이라 불러도 뜻을 전달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 성적표를 변호하는 칼럼들의 문제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경제학자와 전문가, 칼럼니스트들은 일제히 다양한 거시경제 지표를 근거로 들며 경제가 잘 굴러가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이 지표들은 필수 노동의 어려움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하지만 지표를 구하는 토대가 되는 노동과 생산, 소비 못지않게 중요한 필수 노동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체감상 불경기'가 계속되는 현상을 사람들의 비합리적인 판단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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