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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내 집중력을 빼앗아 간 범인은 누구일까

[어쩌다] '혹시 나도?' 현대인들의 ADHD '의심' 증후군

스프 어쩌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뭔가 하나에 집중하는 일, 장편 소설을 읽는 일, 그것도 아니라면 잠시라도 휴대전화 알림에서 눈을 떼는 일이 버겁다고 느껴지는 분이 있나요? 몰입할 수 있는 에너지가 분명히 예전만 못하다고 호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주의 산만과 결핍도 과중한 업무만큼이나 괴롭다는 사실, 공감하는 분들 많으시죠?

그러다 보니 '나도 성인 ADHD가 아닐까'하는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부쩍 많습니다. 최근 여러 심리 상담 프로그램에서 전문가들이 무기력증과 집중력 저하를 호소하는 유명 연예인이나 탤런트에게 '성인 ADHD'를 진단하는 사례가 부쩍 늘면서 이런 의문이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급속도로 번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국내 주요 54개 언론사의 데이터를 모아 통계를 제공하고 있는 빅카인즈에 따르면 '성인+ADHD' 키워드 언급량은 1990년대 전무하다시피 했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두 자릿수로 늘었고 2010년대부터는 평균 100회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올해는 6월 기준으로 이미 120건 이상 언급됐습니다.
스프 어쩌다
실제로 지난 2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 진료데이터에 따르면 국내 ADHD 환자 수가 4년 새 92% 이상 급증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남성은 2017년 대비 2021년이 70.4%, 여성은 182.8% 증가한 수치입니다. 연령대별로 10대가 1.39배 증가한 데 비해 20대는 3.84배, 30대는 6.43배 증가했습니다. 40~60대 환자는 약 4배가 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과거에는 어린이를 양육하는 보호자들이 주로 관심을 가졌던 증세인 'ADHD'가 어쩌다 성인들에게까지도 주목을 끌게 되었을까요? 그동안 현대인들의 주의력과 집중력엔 정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고 있었던 걸까요?
 

주의력 빈곤의 시대? 현대인들은 어쩌다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 'ADHD'를 입력하면 360만 건의 게시물이 검색됩니다. 한국인만이 아니라 전 세계 네티즌들이 이미 수많은 밈을 제작해 유통하고 있습니다. "ADHD 환자들이 집안일을 하는 법", "ADHD 환자가 너에게 답장을 하지 않는 이유", "ADHD 환자가 일상을 보내는 법" 등.

대체로 이런 밈에서는 어느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중간에 다른 일을 하게 되거나, 마치 단기적으로 기억을 상실한 것처럼 눈에 띄는 모든 지형지물에 주의를 빼앗기는 식의 모습을 과장하며 웃음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자신도 그렇다'며 공감하는 댓글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밈이 대량 유통될 정도로 상당히 많이 알려진 ADHD의 정식 명칭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ttention Deficit / Hyperactivity Disorder)'입니다. 전문가들이 밝힌 ADHD 진단의 기준은 언뜻 보면 이런 밈에서 묘사하는 증세들과 맥락이 비슷해 보입니다.

과업을 체계화하지 못한다거나, 정상적인 일상 및 업무의 수행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를 정도의 주의력 결핍 증상이 나타난 경우. 또 충동성이 높아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가령 타인의 말을 조금도 기다리지 못하거나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는 경우, 이로 인해 사회생활에 중대한 불편함을 겪는 경우 등의 증상이 적어도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 등이 ADHD 진단 기준에 포함돼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전문가들이 진단을 내릴 때 고려하게 되는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7세 이전 유아기 때에도 이와 같은 비슷한 증상이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전 서울아산병원 정신의학과장 김창윤 원장에 따르면 통상의 성인 ADHD는 소아기 때부터 보이던 증상이 지속된 것으로 판단해 진단합니다. 물론 당시 ADHD라는 전문의의 진단을 받았거나 내원한 기록이 있으면 성인 ADHD로 진단받을 확률이 높아지지만, 병원 기록이 없는 경우에는 더 면밀한 임상 진단이 필요합니다. 자칫 다른 정신과적 질환을 ADHD로 오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우울증입니다. 우울증이라는 건 곧 의식에서 쓸 수 있는 에너지가 결여돼 있다는 뜻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무언가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건 각성 상태가 유지되면서 어떤 대상에 관심이나 흥미가 있어야 하는 건데, 우울증 환자들은 주의를 기울일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특히 본인이 우울하다는 느낌을 호소하지 않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또 기분이 좋아지는 '양극성 우울증' 등 비전형적 우울증의 경우엔 단순히 주의력 결핍 증세 하나로만 ADHD로 판단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 경우엔 ADHD 치료를 받아도 쉽게 호전되지 않습니다."

특히 더 큰 문제는 스스로를 성인 ADHD라고 믿고 우울증 치료를 받지 않을 때 병세가 급격하게 악화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김 원장은 "콘서타 같은 ADHD 치료제는 향정신성 의약품에 속해있는 약제로서, 우울할 때 집중력이 좋아지는 느낌을 줄 수 있으나 부적절하게 들뜨거나 과민해지는 조증을 유발할 수 있다. 양극성 우울증의 경우 계속 콘서타를 복용할 경우엔 조증이 생길 수도 있어 진단 역시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섣부른 자가 진단 주의…증세 악화 부작용도


스스로 ADHD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한 '자가 진단' 설문지는 일반인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한 성인용 ADHD 자기 보고 척도(ASRS v 1.1)가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설문 문항들을 보면 사실 누구든 ADHD를 피해 가기 어렵다 싶은 수준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WHO 인준 ADHD 자기 보고 척도 설문
6번까지의 항목 중 음영이 있는 부분에 체크한 항목이 총 4개 이상일 경우 성인 ADHD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7번부터 18번까지는 증상에 대한 추가적인 단서를 알아보기 위해 수행되는 설문이며, 성인 ADHD 가능성을 진단하는 데 주효한 항목은 6번까지입니다.

저의 경우엔 "골치 아픈 일은 피하거나 미루는 경우가 있습니까", "오래 앉아 있을 때 손을 만지작거리거나 발을 꼼지락거리는 경우가 있습니까"에서 "매우 자주 그렇다" 항목을 체크했는데요. 이 설문에 따르면 저도 100% ADHD입니다.

그렇다 보니 2021년 한 연구(Chanmverlain S 등, Comprehensive Psychiatry)는 이 자기 보고 척도를 사용했을 때 ADHD로 진단되는 경우가 실제 내려진 임상적 진단보다 7~10배 더 많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즉 성격, 당시의 건강 상태,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 여부, 또는 정말로 성인 ADHD인 경우까지 스스로 주의력 결핍을 느끼는 요인이 다양하기 때문에 이 자기 보고형 설문을 통해서는 쉽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현재 성인 ADHD 임상 진단의 주요 고려 요소엔 소아기의 ADHD 증세가 성인기까지 그대로 지속될 경우의 조건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2015년 미국 듀크대 연구진이 1972년-73년에 태어난 소아 1037명을 38년에 걸쳐 추적 관찰한 장기 연구에 따르면, 성인 ADHD 증세에 부합하는 이들의 90%가 소아기에 증세를 나타낸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현행 성인 ADHD의 진단 기준과 개념 자체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출처: HHS Public Access
소아 ADHD의 발병 원인과 기제 역시 명확하게 파악된 건 아닙니다. 뇌 내부의 미묘한 발달상 문제로 추측하고 있을 뿐인데, 통상 도파민 등 신경전달 물질의 균형이 깨진 것으로 판단해 이 균형을 맞추는 약제를 치료제로 쓰고 있습니다. 김 원장은 "보통 주의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일정 수준의 도파민 레벨이 유지돼야 한다고 본다. 도파민이 올라가야 의미를 부여하는 현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레벨이 너무 높거나 낮거나 두 경우 모두 주의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도파민이 높아지면 평소에 진부하게 느껴지던 것도 영감이 되는 특별한 것처럼 여겨지게 하는 효과를 주는데 이게 지나치면 조증이나 정신병적 증상으로 연결된다."고 말했습니다.

즉 ADHD 치료제의 부작용과 오진으로 인한 병세 악화를 막기 위해 임상 경력이 많은 전문의의 병력 청취가 필수적이라는 의견입니다. 성인 ADHD로 여겨지는 일상 속 불편함은 어쩌면 우울증, 과도한 스트레스, 타고난 성격, 몸의 피로, 생활 습관, 과로로 인한 번아웃 등 여러 가지가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집중력을 도둑맞았다면, 도둑은 누구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집중력의 한계와 주의력 결핍을 호소하고 있는 건 분명한 '현상'입니다. 현대인들에게 만연한 집중력 한계 증상을 단순히 '성인 ADHD'라고 일반화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디서 이 현상을 이해하고 또 해결할 수 있을까요? 시의적절하게 출간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 요한 하리가 쓴 『도둑맞은 집중력(원제: Stolen Focus, 2023)』가 그 실마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도(道)를 찾아 수행하는 구도자처럼 전 세계 각국에 있는 석학을 만나 자신이 겪는 집중력 위기의 해답을 찾고자 합니다. 하루에 수십 번씩 트위터와 이메일을 확인하는 동안 수도 없이 집중이 깨졌고, 다시 원래 일로 돌아오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걸 발견합니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곳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아날로그 생활에 몸을 적응시키는 개인 차원의 노력을 병행해 봤지만 '연결 중독'은 더 강력한 금단현상으로 저자를 괴롭게 합니다. 그리고 이내 이른바 '디지털 디톡스'에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걸 곧 깨닫습니다.
"일주일에 이틀씩 바깥에서 방독면을 쓰는 노력이 환경오염의 해결책이 아니다."

책 안에 소개된 『나의 빛을 가리지 말라(원제: Stand out of Our Light, 2018)』의 저자 제임스 윌리엄스의 말입니다. 제임스 윌리엄스는 구글 본사에서 10년 동안 전략가로 일하면서 기술 윤리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윤리 자문으로 자신의 이력을 바꿨습니다. 그에 따르면 그간 자신을 비롯한 많은 IT기술 설계자들의 성과 달성 목표(KPI)는 '사람들의 주의력을 되도록 더 많이 빼앗는 것'이었고, 그 결과 일상적으로 현대인들의 집중력이 낮아지는 '디지털 주의력 경제'가 탄생했다는 겁니다.
스프 어쩌다
그에 따르면 디지털 주의력 경제 구조하에서는 악의 없이, 전 세계 유수의 엘리트 집단들이 경쟁적으로 주의 분산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고, 이 흐름에 맞서 자신의 삶을 아날로그로 되돌리려는 개인의 노력은 반드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즉 하루에도 수십 번 울리는 알람 소리 속에 갇혀 사는 현대인들에게 '스스로 왜 스위치를 끄지 않았느냐'는 비판은 타당하지 않다는 겁니다.

실제로 『도둑맞은 집중력』에서는 알 만한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을 세운 엔지니어 출신 창업가들이 그들이 수학한 공과대학에서부터 인간을 어떻게 설득하며 원하는 대로 행동을 하게 만들 수 있는지, 즉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주의 집중력을 이끌 수 있는지에 대한 심리학 수업을 수강하는 과정이 세밀하게 묘사돼 있습니다. 두 저자와 같이 이 구조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이들은 지금의 디지털 경제 구조를 뒷받침하고 있는 설계자와 사용자 모두가 '문제성'을 우선 각성해야 하며, 적극적으로 '주의 분산 시스템'에 반기를 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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